MBC '옷소매 붉은 끝동' 속 성덕임이 환생한다면 배우 이세영이 아닐까.
'옷소매 붉은 끝동'은 '왕은 궁녀를 사랑했다. 궁녀도 왕을 사랑했을까'라는 질문으로 시작하는 작품이다. 궁녀였던 의빈 성씨와 정조의 로맨스를 섬세하게 그려내며 그동안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던 궁녀들의 현실을 보여주며 시청자들의 지지를 이끌어냈다.
마지막회 시청률은 17.4%(닐슨코리아 집계 기준), 순간 최고 시청률은 19.4%까지 치솟았다. MBC에서 그동안 시청률 10%를 넘긴 드라마가 3년 동안 없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기록적인 행보라는 평가다.
이세영이 연기한 성덕임은 어린 나이에 궁에 입궁해 정조의 유일한 승은 후궁인 의빈이 된 인물. 정조의 후궁 제안을 3번이나 거절한 사실이 역사에 기록돼 여러 작품을 통해 그들의 로맨스가 그려지기도 했다.
지난 7개월 동안 성덕임으로 살아왔던 이세영은 "생각시 시절 덕임의 모습은 저와 싱크로율 95% 정도"라며 인터뷰 내내 발랄한 매력을 뽐냈다. 앞서 예능프로그램을 통해 가장 늦게까지 퇴근하고, 사무실 곳곳을 챙기며 '이 과장'으로 불리기도 했던 이세영은 이날 화상으로 진행된 인터뷰에서 "입사 8년 만에 팀장으로 진급했다"며 "이 모든게 '옷소매 붉은 끝동' 덕분"이라고 명함을 공개해 웃음을 자아내기도.
지난 16회, 17회에서 감정을 폭발시키며 시청자들의 눈물샘을 자극했다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밝은 에너지를 뽐내던 이세영은 "연기대상감이었다"는 반응에 부끄러워하며 "아직 멀었다"며 "부족하다고 생각한다"면서 겸손함을 드러냈다. 그러면서도 "저 역시 아직 작품의 여운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며 "여운 굳이 벗어나려 하지 않고 이 순간을 즐기고 있다"면서 각별한 애정을 드러냈다.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았던 궁녀의 마음을 담았다는 게 신선한 충격이었어요. '왕은 궁녀를 사랑했다. 궁녀도 왕을 사랑했을까'라는 문구가 시놉시스에도 적혀 있었는데, 아무도 궁금해하는 궁녀의 마음을 들여다본 거잖아요. 극 중 홍덕로(강훈)과 덕임의 대화에도 비슷한 말이 나오는데, 원작을 읽었을 때에도 해석의 여지도 있고, 궁금해하며 보는 재미가 있는거 같더라고요."
'옷소매 붉은 끝동'은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이세영은 원작 소설의 가상캐스팅 단계부터 성덕임 역할 1순위로 불렸던 배우다. 이미 이미지로도 '찰떡'이라는 평을 받았지만, 이세영은 뼛속까지 성덕임이 되기 위해 고민했다.
"저라면 덕임이처럼 용기를 내 행동하지 못할 거 같더라고요. 덕임은 자신의 선택으로 오라버니를 뒷바라지하며 그가 무관이 되는 모습을 보고싶어했고, 동료 궁녀들과 끈끈한 의리를 지키며 주체적인 삶을 살려고 했는데, 후궁이 되면 그 모든 걸 포기해야 하니 그것들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 거 같아요. 그래서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긍지를 드러내고, 열심히 사는 모습을 표현하려 했어요."
많은 로맨스 작품들이 남녀 주인공 두 사람이 커플로 맺어진 후 행복하게 살았다는 결말로 끝을 맺는다. 하지만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한 '옷소매 붉은 끝동'은 시작부터 비극이 암시된 작품이었다.
이는 드라마에서도 드러났다. 10년이 넘는 기다림 끝에 정조는 덕임을 후궁으로 맞이했지만, 이후 자신이 낳은 아이를 중전의 자식으로 입적해야 하고, 후궁이 된 후엔 동료 궁녀들과 외출조차 허락되지 않는 잔인한 현실을 보여주며 마지막까지 안타깝고 절절한 감정을 이끌었다.
"'궁녀들이 외출 나가는데 바라본다'까지가 대본에 있던 장면이었고, 그들 사이에 과거의 덕임이가 들어가 함께 나가는 장면이 현장에서 추가로 촬영된 부분이었어요. 덕임의 마음이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장면이라 저도 눈물이 나왔어요. 대본에 나와 있는 장면들을 살려서 현장에서 함께 논의하고, 자유롭게 만들어가는 분위기였어요. 만둣국 에피소드는 에드리브로 그렇게 길게 나갈지 몰랐는데,(웃음) 달달하고 행복한 순간을 보여드리기 위해 그렇게 된 거 같아요."
'옷소매 붉은 끝동'은 스킨십이 없는 로맨스 드라마로도 유명했다. 13회에야 키스신이 등장했을 정도. 이미 너무 친해진 이세영, 이준호가 키스신을 앞두고 어색해하는 모습이 메이킹 영상에 담기기도 했다.
이세영은 "6개월 터치나 스킨십이 없다가 (키스신을) 하려니 좀 어색했다"며 "너무 부끄럽고 창피했다"면서 웃음을 보였다. 7개월 촬영 동안 6개월 동안 스킨십 없이 지내다 키스신을 찍게 됐다는 것.
이어 막바지에야 공개된 합방 장면에 대해 "19금이다"고 예고한 부분에 대해서도 "낚시였다"고 사과해 폭소케 했다. 이세영은 "정말 승은을 입는 장면이 19금이었다고 생각하냐"는 질문에 "당연히 아니다. 전체관람가"라고 답하면서 "앞으로 신뢰를 잃으면 어쩌나 걱정도 되지만, 사극에서는 그 이상 보여드리기 힘들지 않겠냐"면서 보조개 미소를 보였다.
"원래 대본에는 덕임의 등에 세긴 '명'자 문신에 키스를 하는 장면이 있었어요. 옷고름을 푸는데 부끄러워서 몸을 돌리는데, 그 부분을 붙잡고 키스를 한다는 설정이었죠. 찍으면서 '과열됐다'는 우려가 나왔고, 아침에 일어나 키스를 하는 게 어떻겠냐는 의견이 나왔어요. 충분히 아름다울 거 같아서 동의했죠."
드라마의 인기 만큼이나 시청률 공약 이행 여부에 대해서도 이목이 쏠린다. 앞서 시청률 10% 돌파 공약으로 MBC 라디오 '정오의 희망곡' 일일 DJ에 이준호와 함께 나섰던 이세영은 15% 돌파시 '진또배기' 무대를 보여주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덕임이가 품바춤을 추는 거냐"면서 우려감을 드러냈다.
이세영은 "주변에서 친구들도 말리고, 왕실의 체통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면서 "요즘 '우리집' 안무 연습을 열심히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진또배기' 대신 이산의 '속적삼 '노바디 엘스'(Nobody else)를 밀어본다"고 전해 기대감을 고조시켰다.
자신들 뿐 아니라 박성제 MBC 사장의 공약 이행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박 사장은 앞서 "시청률 15%를 넘으면 전 배우 스태프 해외여행 포상 휴가"를 공언했고, 마지막회 방송 후 "훌륭한 드라마를 시청자들께 선보일 수 있어서 사장으로서 너무 감사하다"라며 "현재 해외여행은 힘드니 국내여행으로 돌리거나 나중에라도 갈 수 있도록 여행 상품권 같은 옵션을 붙여 시청률 공약 이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제작발표회를 마치고 사장님께 '15% 공약으로 여행 가나요?'라고 했더니, '갑니다'라고 하시더라고요. '해외?'라고 하니 '해외!'라고 해서 약속을 받았어요.(웃음) 그곳에 많은 증인이 계셨습니다. 그땐 코로나가 이렇게 심해질지 모르던 때라 해외에 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죠."
"제가 보여주고 싶은 모습에 대한 생각보다는 보고 싶은 배우가 되고 싶다"는 이세영이다. 아역으로 시작해 어느덧 30대에 접어든 이세영의 보다 단단해진 모습에 응원이 이어지고 있다.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