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식장에 쓰이는 조화(弔花)의 99%는 중국산이다. 올 3분기까지 수입액은 3050만달러. 국내시장 점유율은 98.9%(무역협회, 관세청 자료)다. 인천항으로 들어오는 냉장 컨테이너의 일부는 중국 남부 지역에서 재배된 국화송이들로 가득차 있다. 전국 장례식장에 놓이는 근조 화환에 원산지 표기를 한다면 ‘메이드 인 차이나’가 될 것이다. 국산의 절반도 안 되는 가격이니 시장 잠식은 피할 수 없다.
올 하반기 벌어진 요소수 대란은 2019년 일본의 수출규제로 벌어졌던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사태와는 전혀 다른 게임의 양상을 보여줬다. 이른바 ‘로테크(low tech)의 습격’이다. ‘트웰브 나인’으로 불리는 사실상 100%의 불화수소가 문제가 아니라 중국산 조화처럼 값싼 제품이 더 치명적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요소수는 고비를 넘겼지만 중국이 ‘수도꼭지’를 잠그면 언제든지 한국 제조현장과 물류는 멈출 수 있다. 차세대 먹거리로 불리는 배터리(2차전지)의 경우 중국산 소재 공급이 끊기면 산업 생태계 자체가 붕괴될 수 있다. 최근 한 달 새 리튬, 코발트, 니켈 등 배터리의 핵심 원재료 가격이 30% 가까이 오르며 역대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해당 기업들은 “요소수 파동에서 ‘차이나 파워’를 확인한 중국업체들의 ‘물량 조이기’가 원인”이라고 입을 모았다. 전 세계 광물 가공시장의 90% 이상을 장악한 중국이 한국의 취약한 공급망을 언제든지 공격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결정적으로 공급망 문제는 미·중 간 경제 패권전쟁의 핵심 이슈로 그 한가운데 한국이 놓여 있다. 최태원 SK 회장은 “과거에는 전 세계가 공급망을 같이 썼지만, 이제는 진영별로 쪼개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미국과 중국 모두 반도체 등 필수산업재를 안보 전략물자로 관리하는 이유다. 미국은 삼성전자에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공장 건설을 압박했고, 중국은 SK하이닉스의 인텔 낸드플래시 사업부 인수를 승인하면서 “중국 업체에 안정적으로 물량을 공급한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세계 반도체 전쟁에서 탈락한 일본은 돈이라는 ‘당근’을 내밀었다. 투자비의 절반에 해당하는 4000억엔(약 4조원)을 주는 물량공세를 내세워 대만 TSMC가 자국에 반도체 공장을 짓도록 했다. 조건은 일본 자동차업체에 차량용 반도체를 우선 공급한다는 게 전부다.
내년에도 글로벌 경제패권을 둘러싼 각국의 대립은 심화할 것이다. 중국이 최근 전기자동차 핵심 소재인 희토류 생산 기업들을 통합시킨 것도 미국에 대한 수출통제를 예고한 ‘선전포고’와 다름없다. 이미 약 30년 전인 1992년 덩샤오핑은 “중동에 석유가 있다면, 우리에겐 희토류가 있다”고 말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2019년 덩샤오핑이 찾은 중국 남부 장시성의 희토류 공장을 방문했다. 전 세계가 희토류를 중국에 의존하고 있음을 상기시켜 주기 위한 전략적 행보였다. 중국 언론은 “미국의 제재에 맞서기 위한 비장의 무역 카드를 뽑았다”고 제목을 달았다.
기업들의 시선은 불안하다. 청와대는 “경제 안보 핵심품목 200여 개 중 20개 우선관리 품목들을 공급망 태스크포스(TF)에서 면밀하게 모니터링하고 있다”고 했지만 매번 ‘사후약방문’식 대응을 지켜본 기업들은 못 미더워하는 분위기다. 기업들이 공급망 전략에 ‘중국+1’이라는 컨틴전시플랜을 포함하는 이유다.
한 대기업 고위 임원은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70%를 한국이 장악하고 있지만, 칼자루가 아니라 칼날을 잡고 있다는 현실이 한국 기업이 처한 상황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라고 말했다. 소규모 개방경제 구조의 한국은 언제든지 글로벌 패권전쟁의 ‘희생양’이 될 수 있다는 우려다. 그때는 장례식장에서 중국산 조화가 사라지는 수준에서 끝나지 않을 것이다. 글로벌 경제전쟁에서 우군은 없다. 세계 10위 경제대국의 지위를 지켰다고 자화자찬할 때가 아니다. 코로나 3년차, 내년에도 위기는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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