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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르트벵글러의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인류임을 잊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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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6년에 태어나서 1954년에 사망했으니 빌헬름 푸르트벵글러가 세상을 떠난 지 70년이 다 돼 간다. 지금까지도 그의 이름이 ‘최고의 지휘자’에서 빛을 잃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다른 무엇도 아닌 그가 들려준 음악 그 자체에 있다고 생각한다. 베토벤 교향곡 5번(1947)과 9번(1951), 브람스 교향곡 1번(1952)과 4번(1948), 슈베르트 교향곡 9번(1951), 슈만 교향곡 4번(1953) 등 그의 대표적인 음반을 들으면 그냥 포로가 돼버리고 만다.

아무런 선입견 없이 열악한 음질의 방해 공작을 넘어 펼쳐진 유장한 드라마는 뇌리에 각인돼 쉽사리 잊히지 않는다. 미국 음악평론가 헨리 포겔의 말대로 푸르트벵글러는 음악적 구조와 건축물을 꿰뚫는 명료한 이념으로 즉흥연주와 환상적 성격을 결합하는 센스를 보여줬다. 악보를 넘어 연주가 이뤄지는 시대와 분위기가 녹아든다. 불꽃 튀는 갈등의 양상이 치열하게 흘러나온다. 사흘간 같은 곡을 연주해도 모두 다른 연주가 나온다. 푸르트벵글러의 연주에 대해 영국 음악평론가 네빌 카두스는 “음악의 휴지부에서조차 음악적인 잔영이 지속되고 있다”고 평했다. 푸르트벵글러는 듣는 이를 침묵 속에 빠뜨렸다가 거기서 꺼냈다가 하며 긴장을 지속시켰다.

20세기 최고의 지휘자 푸르트벵글러의 음반 가운데서도 가장 앞에 놓아야 할 최고의 유산이 바로 이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 음반이다. 소프라노 엘리자베트 슈바르츠코프와 콘트랄토 엘리자베트 횡엔, 테너 한스 호프, 베이스 오토 에델만, 바이로이트축제 합창단과 오케스트라는 도취적 연주를 들려준다. 우리가 인류임을 잊지 말라고 부르짖는 것처럼 들리는 초명연이다.

1951년 7월 29일 바이로이트 페스티벌 재개관 실황이다. 당시 바이에른 방송, 뮌헨 방송, 스웨덴 방송에서 생중계했다고 전해진다. HMV 음반의 3악장을 바이에른 방송 실황 테이프와 비교하면 차이가 있다. HMV음원은 전설적인 프로듀서 월터 레그(소프라노 슈바르츠코프의 남편)가 리허설 녹음을 중심으로 편집한 ‘짜깁기’임이 알려졌지만 그 편집의 예술도 인정받는다.

베토벤 교향곡 9번은 고전과 낭만을 잇는 다리이며 인간이란 존재가 만들어낼 수 있는 불굴의 금자탑이다. 베토벤의 난청은 40대 들어 더 악화됐다. 말년의 10년은 거의 들을 수 없는 상태였다. 신경성 복통에 시달렸고 말썽을 일삼는 조카의 후견인으로 고생하며 교향곡 9번 ‘합창’이나 ‘장엄미사’, 후기 피아노 소나타와 현악 4중주로 예술혼의 높은 경지를 드러냈다.

위에 언급한 바이에른 방송 버전이 오르페오 레이블에서 나온 데 이어 비스(BIS) 레이블에서 스웨덴 방송 녹음이 SACD로 발매됐다. 히스토리컬 전문 타라 레이블 대표 르네 트레민이 음원의 존재를 알렸고, 비스에서 70년 동안 스웨덴 방송국에 잠들어 있던 음원을 찾아냈다. 독일어, 프랑스어, 영어, 스웨덴어로 차례로 방송됐으며 거장의 입장, 혼신의 지휘, 긴 인터벌을 두고 마지막 2분 반 이상에 걸친 대함성과 우레 같은 박수, 프로그램 종료까지 85분 동안(푸르트벵글러 워너 전집은 77분) 그날 밤의 모든 소리를 하이브리드 SACD에 수록했다.

푸르트벵글러 팬들의 음반장은 나날이 풍성해지지만 월터 레그가 매만진 EMI(워너)반은 여전히 CD플레이어와 턴테이블에 오르내릴 것이다. 음악에 대한 불감증에 걸릴 수도 있는 이 21세기에 현과 관, 타악기와 목소리가 어떻게 사람을 감동시키는지에 대한 교과서인 동시에 마법책이다.

류태형 음악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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