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유진 9단(23)은 한국기원이 최근 발표한 ‘2021년 바둑계 10대 뉴스’에 이름을 올렸다. ‘바둑 여제’ 최정 9단(25)을 최근 2개 대회에서 내리 꺾으면서다. 지난달 열린 제26기 하림배 프로여자국수전에서 2-1로 우승했고, 곧이어 치러진 한국제지 여자기성전에선 2-0으로 완승을 거뒀다. 23일 서울 홍익동 한국기원에서 열린 하림배 시상식에서 우승 트로피를 손에 쥔 오유진은 “(최정은) 가장 넘기 힘든 산이었다. 그러나 이제 겨우 한고비를 넘겼을 뿐”이라며 “최정 선수가 워낙 독보적이었다”고 말했다.
두 살 터울이지만 오유진은 평소 최정과 둘도 없는 ‘절친’처럼 지낸다. 두 사람이 여자바둑 ‘2강’ 체제를 공고히 하며 선의의 경쟁을 이어왔지만 승부는 일방적이었다. 이번 여자국수전 이전까지 상대 전적은 2승 25패로 최정이 압도했다. 오유진은 최정에게 15연패를 당한 적도 있다. 최근 2위가 1위를 상대로 겨우 2연승을 거뒀을 뿐인데도 ‘충격적인 결과’로 받아들여진 이유다. 오유진은 “최정 선수가 여전히 압도적이긴 하지만 여자바둑계가 점점 상향평준화되고 있는 것 같다”며 “저와 최정 선수 외에도 우승하는 새 얼굴들이 앞으로 많이 등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오유진은 최정을 만나면 우세한 바둑을 두고도 역전패하는 경우가 많았다. 인공지능(AI) 예측 승률이 경기 후반에만 가면 널뛰다가 최정의 손을 들어주는 식이었다. 하지만 올해 여자국수전 결승 3국에선 빈틈을 허용하지 않았다. 초반 공세를 펼친 뒤 우변 패 싸움에서도 물러서지 않고 맞섰다. 오유진은 “제가 침착하고 균형을 맞춰가며 바둑을 두는 스타일이라면 최정 선수는 기풍이 저보다 공격적”이라며 “최근에는 저도 물러서지 않고 공격적으로 바둑을 뒀다. 자주 붙어서인지 기풍이 점점 닮아가는 것 같다”고 털어놓았다.
최종국에서 211수 만에 백기를 받아낸 오유진은 “대국 내내 모든 순간이 승부처였다”고 했다. “우변 쪽에 백이 침투하면서 전투가 시작됐고 그 이후로 한 번도 싸움이 멈춘 적이 없었어요. AI는 제가 우세하다고 예상했지만 아니었습니다. 여러 전투에서 방심하지 않고 막아낸 덕분에 우승할 수 있었죠.”
호랑이 띠인 오유진은 임인년(壬寅年)을 맞아 멈춰 있던 세계대회 우승 시계를 다시 가동할 계획이다. 오유진은 “내년은 저의 해인 만큼 호랑이 기운을 받아 세계대회에서 우승하는 것이 목표”라며 “내년 오청원배 세계대회와 2022 중국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우승을 노려보겠다”고 다짐했다.
여자국수전 5연패에 도전했던 최정은 준우승 상금 1000만원을 가져갔다. 최정은 “이번 패배가 앞으로 바둑 인생에서 좋은 자극이 될 것”이라며 “아시안게임에선 오유진 선수와 함께 한 팀으로 출전할 것 같은데 같이 노력해서 시너지를 내보겠다”고 말했다.
조희찬 기자 etwood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