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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대위 걷어찬 이준석…황우여의 '57일 호남장정' 돌아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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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대 대선을 두 달여 앞둔 2012년 10월 22일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중앙선거대책회의. 황우여 당시 새누리당 대표가 “당분간 대표실을 여의도에서 광주시당으로 옮기려고 한다”고 발표하자 좌중이 술렁였다. 중앙선대위와 사전 상의를 하지 않은 깜짝 발표였다. 다음날 ‘호남행 기차’를 탄 박근혜 당시 대선 후보에 앞서 당대표가 바닥 민심을 챙기러 지방으로 내려간 것이다.

황 대표는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16대 대선 당시 이회창 후보의 호남 지지율은 3%, 17대 대선 당시 이명박 후보는 6% 안팎에 불과했다”며 “당 대표가 솔선수범하고 사지로 내려가야 다른 중진들도 지방 선거를 도울 수 있다고 판단했다”고 회상했다. 당초 열흘 일정으로 시작했던 황 대표의 ‘호남 현장 방문’은 장장 57일 동안 이어졌다. 뒤에서 황 대표를 비웃던 민주당 중진들이 심상치 않은 지역 민심에 놀라 뒤늦게 유세장에 몰려들면서 지역 언론엔 “대선 시즌에도 광주에 배지(국회의원)들이 득실거린다”는 헤드라인 뉴스가 나오기도 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지난 21일 선대위 회의 도중 격분을 이기지 못하고 회의장을 뛰쳐나갔다. 이어 긴급 기자회견을 열더니 “모든 선대위 직책에서 물러나겠다”는 폭탄선언을 했다. 9년 전과 마찬가지로 당의 대선 후보(윤석열)가 호남에 내려가기 하루 전날이었다. 하지만 황우여와 이준석, 당대표로서 두 사람의 상황 인식, 문제 대응 방식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이 대표가 선대위 직책을 모두 내려놓겠다고 한 이유를 들어보면 일견 타당한 구석이 있다. 선대위 공식 회의에서 공보단장인 조수진 의원이 이 대표의 지시를 깔아뭉개면서 “나는 후보 말만 듣는다”고 한 것은 비상식적이었다. 윤 후보의 부인 김건희 씨의 경력 부풀리기에 대한 기존 대응 전략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그의 지적도 귀 기울일 만하다.

하지만 야당 지지자들의 마음은 착잡하다. 당대표가 갖는 무게감이나 책임감을 고려할 때 이렇게까지 극단적 행동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아쉬워하는 사람이 많다. “정권 교체에 한마음으로 나서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판에 당대표가 자기 정치에만 골몰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다. 당대표의 돌발 행동으로 대선 후보에게 쏠려야 할 여론의 관심이 당내 분란에 집중된 것도 날아간 표로 따지면 어마어마한 타격이다.

이 대표의 당무 거부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달 초에도 윤 후보 캠프 측과 충돌하면서 나흘간 중앙당 사무를 거부했다. 윤 후보는 지방으로 떠돌던 이 대표를 만나기 위해 울산의 한 음식점을 찾아가 이 대표 측 요구를 거의 다 들어줬다. 당시 두 사람이 발표한 합의문엔 “후보는 선거에서 필요한 사무에 관해 당대표에게 요청하고, 당대표는 후보자의 의사를 존중해 따르기로 했다”는 내용까지 들어 있다. 당무우선권은 대선 후보에게 있다는 당헌·당규에도 불구하고 당대표 체면을 확실히 세워준 것이다.

이 대표 측은 조수진 단장과의 이번 갈등이 불거진 뒤 윤 후보가 “갈등이 있는 것 자체가 민주주의”라며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은 것에 실망한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이 대표는 “당대표라는 직책을 갖고 왜 적극적으로 갈등을 풀어 나가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냐”는 물음에 먼저 답해야 한다. 이 대표는 윤 후보와 전화, 면담 등의 노력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 이럴 거면 합의문은 왜 작성하고, 외부에 공개한 것인지 알 수 없다.

현재 황 대표를 기억하는 유권자는 많지 않지만 당시 박근혜 후보가 호남 지역에서 거둔 두 자릿수 득표율(10.5%)은 야당에 전설처럼 전해져 내려온다. 황 대표는 이 대표에게 이런 조언을 남겼다. “젊은 당대표로 고충은 이해하지만 대의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한 사람의 2030을 끌어들이기 위해 선거 현장을 누비고 다녀라.”

이 대표가 장차 큰 정치인이 되려면 이번 대선을 승리로 이끄는 데 기여해야 한다. 지금처럼 토라진 모양새로 빠져 버리면 이겨도 움직일 공간이 없고, 지면 역적으로 남는다. 역사는 승자만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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