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대통령선거 사상 가장 희망과 기대가 없는 우울한 대선이다.”(박성민 정치컨설팅 민 대표) 정치가 그들만의 진영 간 ‘응징’과 ‘생존’의 난장판이 되고 말았다. 국민도 없고 미래에 대한 어떤 비전도 없는 정치라면 사망선고가 내려졌다고 봐야 한다.
코로나 사태가 당초 전망과 달리 길어질 조짐이다. 이미 겪은 경제·사회적 충격의 규모와 깊이만으로도 다시는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불가역적 변화’에 힘이 실리고 있다. 새로운 경제·사회적 질서가 나타나면 국가 거버넌스에도 동시적 변화가 일어나야 하는 게 상식이다. 이게 공진화(共進化·coevolution)다. 불행히도 국가 거버넌스, 특히 정치엔 그 어떤 변화도 엿보이지 않는다는 게 한국의 최대 리스크로 고착화되고 있다.
경제적 격차 확대를 비집고 들어오는 포퓰리즘은 여야 간 차이가 없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서유럽에서 복지국가론이 등장할 때와는 환경이 다른데도 국가가 모든 것을 다 해줄 것처럼 재정 개입만 부르짖는다. 누가 세금을 부담할지, 어떻게 사회적 동의를 구할지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무조건 돈을 퍼붓고 보자는 식이다. 심지어 새로운 경제·사회적 질서와 동행해야 할 노동개혁에서는 여야가 ‘거꾸로 가기’ 경쟁을 벌이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오직 퇴행을 거듭하고 있는 분야는 딱 하나, 바로 정치다. 민주화 시대 이후에도 모든 정권이 산업화 시대 박정희와 경쟁하는, 이른바 ‘박정희 패러다임’에 갇혀 있다. 자칭 보수·진보 할 것 없이 들어서는 정권마다 ‘설계사’ ‘해결사’를 자처하는 ‘국가 주도 발전모델’을 부르짖고 있는 게 그렇다. 한국이 도약할 새로운 동력은 ‘개인’과 ‘기업’에 있는데도 정치 거버넌스는 이 흐름을 따라갈 생각조차 없다. 오히려 역량이 커진 개인과 기업을 무슨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통제할 궁리만 하는 게 기득권 정치세력이다. 박근혜 정부, 문재인 정부에 이어 다음 정부까지 뒤흔들 게 분명한 소위 ‘경제 민주화론’도 그 맥락에서 등장했다고 보면 딱 맞는다.
규제개혁이 실패로 돌아가는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다. ‘국가 주도’와 ‘강한 규제’는 동전의 양면이다. ‘규제’가 곧 ‘권력’이다. ‘규제개혁’은 ‘권력이동’이어서 기득권 정치세력이 그냥 받아줄 리 없다. 그래서 나오는 게 산업혁명은 정치혁명과 같이 가야 한다는 주장이다. 1차 산업혁명이 던진 역사적 메시지도 이것이다.
다음 정부는 다를까. 어느 당이, 누가 잡더라도 중앙집중 체제에서 달라질 가능성을 찾기 어려운 형국이다. 오히려 권위주의 체제, 제왕적 대통령제가 그대로이거나 더 심해질 공산이 크다. 쏟아지는 공약은 국가는 전지전능하다는 통치모델에서 한 치의 어긋남이 없다. 앞뒤 1년을 빼면 3년 남짓한 정권 유효기간이다. 이 기간에 국가 장기과제를 모두 해결하겠다는 약속은 또 한번 ‘잃어버린 5년’ 드라마를 쓰겠다는 선언처럼 들린다. 오로지 청와대로 옮겨갈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는, 폐쇄적이고 동질적인 캠프는 그들만의 정치, 내로남불식 ‘청와대 정부’를 예고한다.
개인과 기업으로 치면 어느 선진국 못지않은 눈높이를 가진 한국이다. “어쩌다 평범한 나보다 못한 사람들이 대통령이 되겠다고 설치는 나라가 됐나” 하는 개탄이 곳곳에서 터져나온다. 지금의 대통령제를 감당할 권위와 역량, 리더십을 갖춘 후보자를 더는 찾기 어렵다는 현실을 이젠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희망과 기대를 접어야 한다면 최소한 개인과 기업의 발전에 해를 끼칠 위험한 인물의 등장을 막을 정치적 장치 마련이 시급하다. 포퓰리즘에 취약한 미디어 정치와 여론조사의 동거가 언제 ‘체제 위기’를 몰고 올 인물을 조작해낼지 모르기 때문이다.
강원택 서울대 교수는 독점적 양당 구조와 제왕적 대통령제를 두고 새로운 국가 거버넌스를 위한 정치혁신이 가능하겠느냐고 반문한다. 지긋지긋한 정치 리스크의 악순환을 끝낼 때도 됐다. 서로 다르다는 점을 인정하는 ‘다원주의’ 없이 개인과 기업으로부터 성장동력을 끌어낼 수 없다. 한국공학한림원은 차기 정부를 위한 정책총서에서 “새로운 100년 산업혁명, ‘추월의 시대’로 가자”고 주문했다. 자세히 읽어보면 정치가 국가를 추락의 길로 내몰고 있다는 강한 위기감이 깔려 있다. 정치혁명 없이는 산업혁명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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