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시절 완화한 자동차 연비 규정을 다시 강화했다. 2026년까지 평균 연비를 40% 가까이 개선하도록 하고 같은 기간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30%가량 줄이도록 했다. 5년 뒤에는 신차의 30%를 친환경차로 채울 방침이다.
미 환경보호청(EPA)은 2023년형 차량부터 연비를 단계적으로 높여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배기가스 강화 기준을 20일(현지시간) 발표했다. EPA는 올해 갤런당 40마일(64.4㎞)인 자동차 평균 연비를 2026년 평균 55마일(88.5㎞)로 상향 조정했다. 지난해 4월 트럼프 전 대통령이 2026년 평균 연비 기준을 갤런당 40.4마일로 낮춘 것을 대폭 끌어올린 것이다. 앞으로 미국에서 차를 판매하는 기업들은 5년간 연비를 38% 개선해 2026년엔 L당 23.4㎞의 연비 규정을 충족해야 한다.
자동차 배기가스 규정도 강화했다. EPA는 올해 마일당 230g 수준인 차량(승용차+트럭) 평균 배기가스양을 2026년 161g으로 30% 줄이도록 했다. 완성차 회사별로 이 기준에 부합해야 한다. 승용차 배기가스는 내년에 마일당 181g으로 줄인 뒤 2026년까지 마일당 132g으로 감축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2026년 자동차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2022년보다 28.3% 줄어들게 된다고 EPA는 설명했다. 운송 부문에서 가장 많은 이산화탄소를 배출하고 있다.
마이클 리건 EPA 청장은 “환경오염을 적극적으로 줄이기 위해 강력하고 엄격한 기준을 정했다”고 말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 내놓은 기후변화 관련 대책 중 가장 강도 높은 것이라고 평가했다.
EPA는 친환경차 비중도 크게 늘리도록 했다. 완성차 회사별로 2026년까지 전기차와 하이브리드카 비중이 전체 신차의 29% 이상 되도록 했다. 차량별 비중은 전기차 및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카가 17%, 전기 모터로만 움직일 수 있는 스트롱 하이브리드카가 7%다. 전기 모터와 엔진 힘으로 구동하는 소프트 하이브리드카 비중은 2%로 정했다.
EPA는 연비 규정 강화로 2050년까지 미국 전체 운전자가 연료비를 2100억달러(250조원)에서 4200억달러 정도 절약할 것으로 추산했다. 하지만 월스트리트저널은 이번 조치로 친환경차 생산 비용이 늘어 정부 보조금이 나오지 않으면 차량 가격이 올라가는 등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바이든 행정부의 역점 사업인 2조달러 규모의 사회복지예산 법안(더 나은 미국 재건 법안)이 연내 의회를 통과하기 어려워진 게 이번 조치가 나온 이유라고 전했다.
전날 조 맨친 민주당 상원의원은 “연방정부 부채가 늘고 인플레이션을 심화로 지역민들에게 사회복지예산안의 정당성을 설명할 수 없다”며 반대 의사를 밝혔다. 민주당과 공화당이 50석씩 나눠 갖고 있는 상원에서 이 법안이 통과되려면 민주당 의원 모두가 찬성해야 한다. 이 때문에 바이든 대통령과 민주당 지도부는 맨친 의원 설득에 주력해왔다. 사회복지예산 처리가 암초에 부딪힌 상태에서 법 대신 행정 조치로 기후변화에 대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WP는 지적했다. 미국 자동차혁신연합은 “연방정부의 지원 없이는 연비 기준을 달성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워싱턴=정인설 특파원 surisur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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