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경 ㈜신세계 총괄사장이 최근 독자경영에 속도를 내고 있다. 자신이 관할하는 백화점 부문 전략을 담당하는 최고 책임자를 부사장에서 사장급으로 격상시키고, 임원도 1명에서 7명으로 대폭 충원했다. 독자적인 미래전략 수립 기능을 강화하려는 의도라는 분석이다. 위상이 강화된 백화점 부문의 전략 조직은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이 관할하는 그룹전략실과 별도로 움직인다는 의미에서 신세계 내부에선 ‘소(小)전략실’로 불린다. 정 총괄사장이 인수합병(M&A)과 플랫폼 등 디지털 전략에서 이마트 등을 총괄하는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과 다른 길을 걸을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전략 기능 대폭 강화…미래사업 준비
정 총괄사장이 경영하는 신세계백화점은 올해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한 해’를 보내고 있다. 지난 3분기 백화점 업계 시장 점유율이 26%로 역대 최고치를 찍었다. 13개 점포의 상당수가 지역 내 매출 1등을 기록 중이다. 하지만 내부에선 위기감이 작지 않다. 주가는 10년 전 수준에 머물러 있다. 미래 청사진이 뚜렷하지 않다는 말도 나온다. 정 총괄사장이 최근 백화점만의 전략 기능을 대폭 강화하고, 이마트 부문과의 협업 외에 ‘독자 노선’도 강화하고 있는 배경이다.신세계는 지난 10월 임원 인사에서 백화점 부문을 대폭 강화했다. 사장 자리에 정 총괄사장의 ‘오른팔’로 불리는 차정호 신세계백화점 대표를 선임했다. 사장급 조직으로 위상을 올린 데 이어 파격적인 후속 인사도 최근 단행했다. 삼성전자 등에서 경력을 쌓은 2명을 임원으로 영입했다. 각각 M&A와 디지털에 전문성을 갖춘 40대 임원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 총괄사장의 이 같은 행보는 미래 사업을 체계적으로 준비하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신세계 관계자는 “이마트가 쓱닷컴 강화, 이베이코리아 인수 등 전자상거래 플랫폼 구축을 위해 일관되게 밀고 나가는 데 비해 백화점 쪽은 ‘전 지역 1위 점포’ 외에 눈에 띄는 전략이나 사업이 부족한 편”이라며 “M&A와 디지털을 키워드 삼아 새로운 사업전략을 마련하려는 게 정 총괄사장의 의도”라고 설명했다.
이마트와는 ‘따로 또 같이’
㈜신세계가 신사업 발굴에 나서지 않았던 건 아니다. 지난해 7월 벤처캐피털인 시그나이트파트너스를 설립했고, 앞서 4월엔 콘텐츠 제작 및 미디어커머스 사업을 위해 마인드마크라는 계열사도 신설했다.하지만 수백억원이 들어간 주요 신규 투자는 대부분 이마트와의 협업 측면에서 진행됐다. 올해 단행한 CJ그룹 및 네이버와의 지분 교환, W컨셉 인수 등이 대표적이다. 투자은행(IB)업계 관계자는 “네이버와 명품 플랫폼을 만들거나 CJ대한통운과 물류회사를 신설하는 등 ㈜신세계 차원에서 몇 가지 아이디어가 나왔지만 논의만 하고 대부분 종결됐다”며 “별도 법인인 이마트와는 물론이고 타사와의 협업으로는 빠른 성과를 내기 어렵다고 판단한 게 독자경영 강화의 한 배경”이라고 말했다.
정 총괄사장은 독자적인 온라인 플랫폼 전략을 고민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쓱닷컴에 백화점의 특화 콘텐츠인 명품, 패션, 뷰티를 공급하는 것 외에 독자적인 플랫폼을 출범시킬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업계에서는 내년 상반기 쓱닷컴 상장이 성공한 이후 겸업 금지 조항이 풀리는 시기를 주목하고 있다. ㈜신세계(26.9%)는 이마트(50.1%)와 함께 쓱닷컴의 주요 주주다. 쓱닷컴은 글로벌 사모펀드인 어피너티에쿼티파트너스를 투자자로 유치하면서 신세계백화점이 별도 전자상거래 플랫폼을 만들지 않겠다는 약속을 명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이 이끄는 이마트 부문에 이어 정 총괄사장도 사실상 독립 경영에 나서면서 이명희 회장 관할에 있는 그룹전략실 기능은 조정될 전망이다. 이 회장은 지난해 초 이마트와 신세계 지분 8.22%씩을 각각 정 부회장과 정 총괄사장에게 증여하면서 두 기업의 최대주주 지위를 자녀들에게 넘겨줬다. 정 부회장은 일찌감치 소(小)전략실을 가동해왔다. 이베이코리아 인수를 비롯해 미국 유통망 확장, 대체육 등 신규 사업 투자 등이 정 부회장의 미래 구상 아래 진행 중이다. 이마트 부문 전략실장은 강희석 대표다. 이마트와 쓱닷컴 대표를 겸직한 데다 이베이코리아와의 PMI(인수 후 합병)까지 진두지휘하고 있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