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 치료를 이유로 회사 숙소에서 짐을 뺀 근로자가 "다음 기회가 되면 찾아뵙겠다"고 말했을 뿐, 계속 근로를 요구하는 등 명확한 입장 표명이 없었다면 사직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서울고등법원 6-2행정부(판사 홍기만)는 지난 1일 근로자 A가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청구한 부당해고 구제재심판정 취소 소송에서 이 같이 판단하고 회사 측의 손을 들어줬다.
◆"그동안 감사했어요" 사직으로 볼 수 있어
A는 세종시의 한 외식업체에서 조리사로 일하던 2019년 4월 경 무릎 부상을 당한 후 서울에 가서 치료를 받고 수술을 하기로 했다. 업체에서 제공하는 숙소에서 생활하던 A는 4월 말 사업장에는 별다른 설명 없이 기숙사 동료에게만 "퇴원하면 인사하러 들르겠다"는 쪽지를 남기고 짐을 챙겨 서울로 향했다. 이후 수술을 마치고 퇴원한 A는 매니저에게 "그동안 걱정 끼쳐 죄송합니다. 대표님께 고맙다고 안부전해주세요. 다음기회가 되면 찾아뵙고 멋진 모습으로 도와드릴게요"라는 취지의 문자를 보냈다. 이후 업체는 '개인사정으로 인한 자진퇴사'를 이유로 A의 4대보험 자격 상실신고를 했고 A는 그 이후로 출근하지 않았다.
그런데 A는 회사를 상대로 부당해고를 주장하며 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을 했고, 중노위에서 이를 받아들이지 않자 행정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법원은 부당해고라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병원에 입원하는 등 현실적으로 근로를 제공하지 못하고 향후 근무하기 어려운 객관적 사정이 발생했음에도, 회사와 병가나 휴직에 관한 논의를 하지 않았고 계속 근로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하지도 않았다"며 "다음기회가 되면 찾아뵙겠다는 발언도 인사차 방문할 수 있다는 취지일 뿐, 복귀시기를 특정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계속 근로하겠다는 의사라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어 "4대보험 자격상실신고가 이뤄졌음에도 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할 때까지 한번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은 것도 근로계약 종료를 수용한 것으로 보인다"며 "회사가 4대보험 자격상실신고를 했을 때 A의 사직의사표시를 수리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시했다.
◆사직의사, 내심 아닌 겉으로 드러난 행위가 중요
실무에서는 근로자의 행동이 사직의 의사표시인지 명확하지 않은 경우 종종 분쟁으로 번진다. 사직서가 있다면 가장 명확하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이럴 때는 이메일, 카카오톡 등 대화 내용은 물론 직원들과의 작별인사를 했는지, 신분증 등 개인 물품을 정리하고 반납 했는지, 해고가 부당하다고 이의제기를 했는지, 무단으로 출근거부를 한 것은 아닌지 등 종합적인 정황을 통해 사직 여부를 파악한다. 대법원도 "의사표시 해석에서는 당사자의 내심이 아니라 외부로 표시된 행위를 바탕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본인의 속마음과 상관 없이 객관적인 해석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런 법원의 판단 기준이 드러난 사례로는 제빵업체 부당해고 사건이 있다. 제빵업체 사장이 직원에게 "거짓말을 하면 같이 일을 못한다"고 질책하자 직원이 "그만두면 되지 않느냐"고 반발하며 자리를 떠났다. 그 다음에도 직원이 제빵실에 들어가 계속 근무하자 사장이 "여기서 왜 일을 하고 있냐"며 나가라고 했고, 다음날부터 직원이 출근하지 않은 케이스다. 부당해고가 문제된 이 사건에서 지난해 10월 서울행정법원은 근로자 측의 손을 들어준 바 있다. 직원이 반발했지만 다시 제빵실로 가서 근무를 했기 때문에, 앞서 말한 '그만두면 되지 않냐'는 의사표시는 진정한 사직의 의사표시로 볼 수 없다는 판단이다.
만약 사직서를 이미 제출한 경우라고 해도, 근로자의 마음이 바뀌었다면 사용자가 이를 승낙하고 그 승낙 의사표시가 근로자에게 도달하기 전까지는 철회를 하는 게 가능하다. 회사 내부에서 사직에 대한 결재가 진행됐더라도, 해당 직원에게 직접 사직서가 수리됐다는 통보를 하지 않은 경우에는 철회를 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물론 사용자의 강요로 사직한 경우라면 부당해고는 물론 사용자에게 형법상 강요죄 등이 성립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