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이 상장 가능성이 큰 사업 부문의 물적분할을 추진할 때 주가가 하락하는 상황을 종종 관찰할 수 있다. 이른바 '지주사 디스카운트' 현상이다. 디스카운트에 대한 타당성 논란은 있다. 하지만 이 현상은 거의 대부분의 사례에서 나타나고 있다.
디스카운트의 배경에는 투자 성과가 희석될 것을 우려하는 상당수 투자자들의 불안 심리가 짙게 깔려 있다. 성장사업을 보고 투자했는데 이 사업 부문이 별도의 자회사로 분리돼 기업공개(IPO)를 추진하면 해당 사업의 성장성을 자회사의 신규 주주들과 나눠 갖게 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배당에 의존하는 지주사는 분리된 자회사의 지분 가치에 걸맞은 수익성을 달성하기도 어렵다.
이 외에도 디스카운트의 원인은 다양하다. 지주사는 새로운 성장동력을 발굴하면서 전망이 불확실한 사업에 투자하거나 부실 자회사를 지원할 가능성도 있다. 주식 수급 측면에서도 특정 사업에 대한 투자를 선호하는 투자자가 많아 불리하다.
신용평가 관점에서도 지주사의 신용등급은 핵심 자회사 대비 낮은 경우가 많다. 구조적 후순위성 논리인데, 쉽게 말하면 자회사가 자신의 채권자에게 우선적으로 원리금을 지급한 뒤 여윳돈이 있으면 지주사에 배당금을 지급해 지주사 채권자가 그제서야 원리금을 회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디스카운트를 둘러싼 지주사 주주와 채권자의 이해관계가 일치하지는 않는다. 단적으로 채권자는 연결 관점에서 대규모 자금이 유입되는 자회사 IPO를 마다하지 않는다. 선호하는 분할 방식도 다르다. 주주는 인적분할을 통해 성장사업에 직접 투자하길 원한다. 채권자는 분할 시점에 신설 및 존속회사의 연대보증이 있어 민감하진 않지만 지분관계 안에서 자산 유출이 없는 물적분할을 선호한다.
지주사 주주와 채권자 모두의 디스카운트를 해결하기 위해선 이해관계의 공통점부터 찾아야 한다. 다행히 배당, 로열티 등을 통해 충분한 현금흐름을 창출하거나 계열 위험의 전이가능성이 낮아지는 등 파이가 커지는 것은 모두에게 반가운 일이다. 지주사의 파이를 키우는 지점부터 고민하면 주주와 채권자 공통의 관점에서 지주사 디스카운트를 완화할 수 있는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디스카운트 완화, 출발점은 지주사 거버넌스 개선
결론부터 말하면 지주사 거버넌스 개선이 디스카운트 완화의 출발점이다. 투자성과 희석에 대한 우려, 지분가치 대비 낮은 수익성, 부실 자회사 지원 가능성 등 앞서 말한 지주사 디스카운트 원인의 본질은 지주사 의사결정 구조에 대한 불신일 수 있다.
지주사에는 상대적으로 수많은 이해관계가 충돌하고 있어 지주사만을 위해 의사결정을 내리기 어렵다. 기본적인 이해관계자만 해도 지주사의 주주 및 채권자, 자회사의 주주 및 채권자가 있다. 지배주주와 소액주주의 이해관계도 엇갈리고 자회사가 많으면 이해관계는 더욱 복잡해진다.
이해관계자가 많으면 그룹 차원의 배당 의사결정부터 까다롭다. 자회사가 지급하는 배당은 지주사 주주와 채권자에게는 매우 중요한 수익원이다. 반면, 자회사 채권자 입장에서는 과배당 우려가 있다. 지주사 주주 입장에서는 성장 기회가 훼손되지 않는 한 배당이 많을수록 좋을 것이다.
그럼에도 지주사의 거버넌스가 투명해지면 배당 의사결정, 신사업 투자, 자회사 지원 등과 관련해 조금이라도 지주사의 파이가 더 커지고 자원 배분의 효율성이 높아지는 방향으로 의사결정이 이뤄질 것이다.
지주사 거버넌스 개선 방향, 이사회의 독립성 확보
경영 의사결정에 대한 불신의 원인을 보면 지주사 거버넌스 개선 방향의 그림을 그려볼 수 있다. 불신은 국내 지배구조의 특징과 맞닿아 있다. 오너의 과감한 의사결정을 전문 경영인이 특별한 견제 없이 빠르게 실행함으로써 기업들이 큰 성공을 거둔 사례도 있다. 하지만 일반 주주들은 오너와 경영진에 대한 견제를 통해 소수주주의 권리가 보호될 수 있도록 의사결정의 투명성 확보를 요구하고 있다.
결국 지주사 거버넌스 개선의 초점은 경영진에 대한 견제와 감독을 담당하는 이사회 본연의 기능 회복에 모아진다. 그리고 이사회가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선 독립성부터 갖춰야 한다.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케이(K)-환경·사회·지배구조(ESG) 가이드라인'에서도 이사회의 독립성을 강조하면서 '사외이사 비율', '대표이사와 이사회 의장 분리' 등을 진단항목으로 제시하고 있다.
국내 주요 기업들의 이사회 독립성 수준은 전반적으로 상법 등의 사외이사 선임기준 등을 충족하는 선에 머물러 있다. ESG 지표상 독립성 수준은 충분하지 않다. 삼일회계법인에 따르면 주요 기업들 중 이사회 의장과 대표이사를 분리하고 있는 비율은 30% 내외에 불과하다. 60% 수준으로 알려진 S&P 500 기업들과 차이가 크다. 대표이사가 이사회 의장과 동일한 70% 내외는 'K-ESG 가이드라인'상에서도 '대표이사와 이사회 의장 분리' 항목에서 하위 단계로 평가된다.
이사회의 실질적인 독립성 수준은 더욱 우려된다. 2020년 대기업집단 지배구조 현황을 보면, 지주전환집단 18개 지주사의 이사회 원안 가결률은 모두 100%였다. 외견상 사외이사가 중심이 돼 사외이사 후보를 추천하고 사외이사가 이사회 의장을 맡아도, 결과적으로 독립성이나 전문성이 결여된 '거수기' 역할의 인사가 사외이사로 선임된다면 형식적 요건 구비는 'ESG 워싱'에 그칠 수 있다.
다만, 지배구조에 대한 도식화된 모범답안은 없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최근에는 단순한 ESG 평가지표를 넘어선 기업들의 자율적 노력도 나오고 있다. SK그룹은 지난 10월에 이사회가 대표이사 후보 추천 단계부터 평가나 보수 적정성 검토까지 맡도록 하는 '거버넌스 스토리'를 발표했다. SK그룹의 변화가 실험적 시도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경영성과 개선과 시장 신뢰의 회복으로 이어질지 여부를 지켜보는 것도 한국식 지배구조의 답안을 찾는 관점에서 흥미로운 일이다.
거버넌스 리스크, 지주사 디스카운트 확대로 작용할 수도
"알려진 리스크는 리스크가 아니다"라는 격언이 있다. 그러나 현실적인 대처 방안이 뚜렷하지 않고 리스크가 현실화되는 속도를 예측할 수 없다면, 알려진 리스크라도 여전히 위험하다.
경험이 풍부한 투자자 중에서도 최근에 탄소중립 등 ESG 이슈가 전개되는 양상을 사전적으로 예측한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각종 변수들이 추가되고 있어 거버넌스 리스크도 생각보다 빨리 표면화될 수 있다. 국민연금은 기업들의 주요 사업부 분할에 반대표를 던지고 있고, 물적분할에서 소액주주의 권리를 강화하겠다는 대선공약도 나오고 있다.
미리 대비하지 않으면 기업들은 소액주주 등과 이해충돌로 인해 소송비용이 증가하거나 경영의사결정이 지연되면서 경영성과가 저하될 수 있다. 당연히 부진한 경영성과는 투자자들에게도 손해다. 특히 상대적으로 이해관계가 복잡한 지주사 투자자는 더 큰 디스카운트를 경험할 수 있다. 기업과 투자자 모두 의사결정 과정에서 거버넌스 리스크를 예전보다 더 고민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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