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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친 화폭·따스한 情…'국민 화가'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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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근(1914~1965)은 굴곡 많은 한국 근현대사의 희생자였다. 어린 시절부터 화가를 꿈꿨지만 지독한 가난 때문에 미술을 배우지 못했다. 독학으로 화가가 돼 결혼하고 자리를 잡은 뒤엔 6·25 전쟁이 터져 피란민 신세가 됐다. 미군 PX에서 초상화가로 일하며 겨우 생계를 이었고, 파벌주의가 판을 치는 화단의 냉대 속에 작품 활동을 이어가다 간경변으로 세상을 떠났다. 작품은 작고한 뒤에야 빛을 봤다. 여기까지가 우리가 잘 아는 ‘박수근 이야기’다.

하지만 그 수많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박수근의 삶은 당당했다. 전쟁통에도 그림으로 생계를 이으며 가족을 지켜냈다. 가정은 화목했고, 평소 화려한 색을 절제했지만 ‘독서’ 등 자신의 어린 아들과 딸을 그린 그림에서는 아낌없이 어여쁜 색을 쓰는 ‘자식 바보’였다. 살아서 부와 명예를 누리지는 못했지만 세태에 휩쓸리지 않고 그렸던 독창적인 화풍의 작품들은 한국 미술사의 영원한 걸작으로 남았다.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열리고 있는 ‘봄을 기다리는 나목’전은 국민 화가 박수근의 작품 세계와 일생을 입체적으로 조명하는 전시다. 유화와 수채화, 드로잉 등 174점의 작품과 박수근이 직접 모은 스크랩북, 엽서 등 자료 100여 점이 전시장에 나왔다.

이번 전시는 국립현대미술관 개관 이래 첫 박수근 개인전이자 역대 박수근 전시 중 최대 규모다.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은 “작가 초기부터 만년까지 시대·소재·기법별로 다양한 작품을 총망라했다”며 “이번 박수근 회고전은 아마 일생에 두 번 다시 보기 어려운 전시라고 자부한다”고 말했다.

전시 1부에서는 박수근의 초기작과 수집품을 만날 수 있다. 12세 때 책에서 본 밀레의 ‘만종’에 감동해 직접 만든 ‘밀레 화집’, 인상주의 화풍을 시도한 ‘철쭉’(1933)과 ‘겨울 풍경’(1934) 등이 나왔다. 1964~1965년 한국전력공사 사보에 실린 삽화 등 생계형 삽화와 표지화도 함께 걸려 있다.

미군 PX에서 초상화를 그려 모은 돈으로 1953년 서울 창신동 집을 마련하고 나서 그의 전성기가 시작된다. 좌절하는 실업자들의 모습을 그린 ‘실직’(1961), 소설가 박완서(1931~2011)가 박수근의 삶을 모티브로 쓴 《나목》(1970) 후기는 그의 성실함을 짐작하게 한다. “1·4후퇴 후의 암담한 불안의 시기를 텅 빈 최전방 도시인 서울에서 미치지도, 환장하지도, 술에 취하지도 않고, 화필도 놓지 않고, 가족 부양도 포기하지 않고 어떻게 살았나, 생각하기 따라서는 지극히 예술가답지 않다.”

전시 2~3부에서는 ‘나무와 두 여인’ ‘노인들의 대화’(1962) 등 그의 대표작들이 관객을 맞는다. ‘판잣집’(1956) 등 창신동 풍경을 그린 그림, ‘소년(장남 박성남)’ 등 가족과 ‘아기 업은 소녀’(1960년대 전반) 등 주위 인물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본 작품도 있다. 서구에서 추상미술이 급격히 유입되면서 국내 화단을 풍미하던 시대였지만, 그는 단순하면서도 한국적 정서가 담긴 자신의 화풍을 고집했다.

전성기는 길지 않았다. 1963년 소송에 휘말려 창신동 집을 잃은 뒤 과음으로 인해 신장과 몸이 부었고, 왼쪽 눈은 백내장에 걸려 실명했다. 성치 않은 눈으로도 그는 혼신의 힘을 다해 작업했다. 4부에서는 ‘나무와 여인’(1964) 등 이 시기의 그림을 살펴볼 수 있다.

전시작 중 유화 7점과 삽화 원화 12점 등 19점은 대중에게 처음 공개되는 작품이다. ‘마을풍경’ ‘산’ ‘세 여인’ 등 3점은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기증품이고, 노인들의 대화는 조지프 리 미국 미시간대 교수가 1962년 대학원생들과 함께 방한했을 때 사 갔던 작품이다. 전시는 내년 3월 1일까지.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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