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 유망 바이오테크(Biotech) 기업으로 꼽히는 임프리메드 임성원 대표(CEO)의 원래 꿈은 '스타트업 창업자'가 아니었다. KAIST 생명화학공학과 3학년 땐 환자를 살리는 외과 의사에 매력을 느껴 수능 도전을 심각하게 고민했다. 더 어릴 땐 컴퓨터 프로그래머를 꿈꿨다.
은사 이상엽 KAIST 생명화학공학과 교수(현 연구부총장)의 조언이 인생의 나침반이 됐다. "의사는 평생 살릴 수 있는 환자가 정해져 있지만 생명공학을 공부하고 창업해 신약을 개발하면 수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다." 임 대표를 움직인 한 마디였다.
마음을 잡았지만 창업의 여정은 고단했다. KAIST 석사를 마치고 바이로메드(현 헬릭스미스)에서 4년이나 일했지만, 미국 유학 땐 한국 경력을 인정 받지 못했다. 석사부터 다시 시작해 약 6년 반이 지나 스탠퍼드 박사학위를 받는 과정에선 '번아웃'도 찾아왔다. 2017년 창업 이후 7개월 만에 회사 통장 잔고가 3000달러(약 355만원)까지 떨어졌고 미국 정부에서 지급하는 지원금에 기대 연명할 정도였다.
버팀목이 된 건 '더 많은 사람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는 임 대표의 가치관과 '생명을 살리고 싶다'는 의지였다. 임프리메드의 주력 사업은 '환자 맞춤형 암 치료제'를 찾아주는 서비스다. 창업 초기 암 환자 대상 사업이 난관에 봉착하자 반려견 쪽으로 방향을 틀었고 이는 '묘수'가 됐다.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매출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벤처캐피털 등도 임 대표를 믿고 투자를 결정했다.
임 대표와 임프리메드는 최근 한국에서 다시 '암 환자' 대상 연구를 시작했다. 미국에서 성과를 내고 있는 반려견 대상 사업이 밑거름이 됐다. 한국에서 성과를 내고 미국에서 사람 대상 서비스를 시작할 계획도 갖고 있다. 실리콘밸리 임프리메드 본사에서 임 대표를 만나 그의 도전과 포부에 대해 들어봤다.
바이오테크와 AI 결합해 '최적의 맞춤형 암 치료제' 찾아준다
▶현재 임프리메드는 어떤 사업을 하고 있습니까."혈액암에 걸린 강아지와 고양이 대상으로 수의사분들에게 개별 동물에 적합한 암 치료제를 찾아주 사업을 합니다. 한마디로 '펫 테크(pet tech)' 회사입니다."
▶어릴 때부터 바이오·헬스케어에 관심이 컸습니까.
"1983년 청주에서 태어났고 다섯살 때 서울로 왔습니다. 컴퓨터를 좋아해서 초등학교 5학년때 1년간 주말마다 H그룹 대리님한테 컴퓨터 과외를 받았어요. 다른 과외는 안 했지만 컴퓨터에 대해선 관심이 컸기 때문이죠. 한 때는 꿈이 '컴퓨터 게임 프로그래머'였어요."
▶그런데 컴퓨터 쪽을 전공하지 않았네요.
"네. KAIST는 2학년 때 전공을 결정할 수 있었습니다. 처음엔 로봇축구동아리도 하고 전공으론 전산과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전산과 전공 수업을 들었는데, 학문으로 들어가니까 어렵더라고요. '소화 안 되는 음식을 먹는 것처럼' 받아들여지지 않더라고요."
▶생명화학공학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요.
"당시에 우연히 ‘영혼이 있는 승부’라는 책을 읽었는데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선 영속적인 가치관이 중요하다'고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그 전엔 가치관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이 없었거든요. 제가 뭘 하면서 무엇을 이루고 싶은지에 대해 고민을 했고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 그리고 ‘다른 연구자들과 함께 키워갈 수 있는 핵심기술을 개발하자’라는 가치관을 정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나니, 생명을 살리는 일을 하고 싶어졌습니다."
▶생물이랑 화학을 좋아하셨나요.
"아니요. 수학이랑 물리를 좋아했습니다. 꿈을 위해 생물이랑 화학에 대해서 공부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니까 싫지 않더라고요. 생명화학공학을 공부해보니까 그 안에서도 인풋, 아웃풋이 있고 사람들에게 적용이 되면 도움이 되는 게 많았습니다. 그 때부터 재밌어졌습니다. 그렇다고 기초생물학과를 가면 제가 좋아하는 물리랑 수학을 많이 못 하게 되니까 생명화학공학과를 갔습니다."
"사람 더 많이 살릴 수 있는 건 신약개발"
▶전공 선택 과정에서 평생의 은사를 만나셨다고요."네. 현재 카이스트 연구부총장으로 계신 이상엽 교수님입니다. 신입생들을 대상으로 한 학과 설명회 때 어떤 질문에 답을 하시는데 호랑이 같은 음성을 내시고 목소리에서 힘이 느껴지더라고요. 답변도 마음을 울렸고요. 그래서 이메일을 드리고 찾아 뵈었더니, 교수님께서 실험실 투어도 시켜주시고 읽어볼 것들도 알려주셨습니다. 교수님 밑에서 석사까지 하면서 정말 많은 것들을 배웠습니다."
▶한 때 의사도 생각하셨다고요.
"대학교 3학년 때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생명공학 기술로 질병을 예방하거나 치료했는데 교통사고가 나서 피흘리고 들어오면 위급한 상황에서 그 환자의 생명을 살리는 건 응급실에서 일하는 외과 의사가 아닐까’ 그래서 외과선생님들 책을 많이 읽었어요. 삶은 힘들지만 그만큼 보람이 있다는 걸 느꼈죠. 힘든 삶이라도 나는 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이 교수님을 찾아가서 '의대를 가서 사람을 직접 살리는 일을 하고 싶다'고 말씀을 드렸죠."
▶교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시던가요.
"'스크라테스적인 생각으로 의대를 가는 건 정말 좋다'고 말씀하셨어요. 그런데 그 다음 하신 말씀이 제 마음을 사로 잡았죠. '의사는 평생 살릴 수 있는 환자수가 정해져 있는데 생명공학자가 되어 새로운 기술이나 신약을 개발하면 전세계적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살릴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정말 멋있는 말씀이셨고, 그 때 빛이 '쫙'하고 내려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 다음부터는 교수님 실험실에서 여러 프로젝트들을 진행하면서 많이 배웠습니다."
▶이상엽 교수 연구실에선 주로 어떤 것을 하셨나요.
"이 교수님께선 합성생물학(Synthetic Biology) 및 대사공학(Metabolic Engineering) 분야의 세계 최고 권위자이십니다. 미생물이 아미노산, 숙신산 등 사람들에게 필요한 성분을 많이 생산할 수 있도록 '유전자 조작'을 하는 게 '대사공학'인데요. 저는 숙신산을 맡았었죠.
▶그 때 연구실의 구조를 회사에 벤치마킹했다고요.
"이 교수님의 실험실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연구실의 과학자들, 그리고 '인 실리코랩' 이라고 오피스에 앉아서 모델을 만들고 컴퓨터로 시뮬레이션하는 팀으로 둘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그 때 경쟁력이 굉장히 강력하다는 걸 느꼈습니다. 제 석사졸업논문도 시뮬레이션하는 팀과 함께 했습니다. 창업하면 이런 구조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죠. 지금 임프리메드도 두 팀간에 서로 밸런스가 잘 맞춰져 있습니다."
▶생명공학과 컴퓨터의 밸런스에 대해 좀 더 말씀을 해주신다면요.
"모든 암종이 다 해당되는 것은 아니지만, 저는 이제 암은 상당 부분 엔지니어링의 문제로 풀 수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암이란 질병은 기원전 3000년경부터 있었고, 임상에서, 연구실에서, 회사에서 쌓아온 정보가 많습니다. 이제 그 방대한 양의 정보를 선택적으로 취합하고 환자들의 암을 분석해서 '맞춤형' 치료제를 찾아내어 처방하는 게 중요해졌죠. 이게 맞춤형 의학(personalized medicine)이고, 여기에 인공지능(AI)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가야하는 방향이고요."
▶석사 후엔 바이로메드에서도 근무하셨다고요.
"네. 이상엽 교수님 밑에서 유전자 조작 기술을 배워서 지금은 헬릭스미스로 사명을 바꾼 바이로메드에서 4년 간 일했습니다. 당시 막연하게 창업을 하고 싶었는데, 제가 '스타트업'에 맞는 사람인지 확인하고 미리 경험하고 싶었습니다. 그 선택이 저한테 정말 큰 도움이 됐습니다. 입사 때 50명이었던 직원이 120명까지 늘었죠. 그때 함께 일했던 분들이 훌륭하셨습니다. 저는 유방암 환자들을 대상으로 유전자치료제를 개발하는 '신약개발팀'에 있었습니다. 회사와 함께 성장하면서 여러 프로젝트들을 경험해 볼 수 있었고, 생명공학 분야의 비즈니스에 대한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이 때 창업을 결심하게 된 계기가 있었다고요.
"네. 당시 바이로메드에서 말초혈관들이 막혀 발이 괴사되고 있는 '족부궤양' 환자들에게 혈관을 생성해주는 유전자를 넣은 치료제를 개발했어요. 임상시험을 진행하면서 이 신약물질을 투여한 환자들의 발에 발톱이 다시 나고 피부색이 돌아오는 게 확인이 됐습니다. 그걸 보고서 '내가 실험실에서 개발하고 있는 것들이 밖에 나가서 환자들에게 정말로 도움을 줄 수 있구나'라고 느꼈습니다. 그 때 '회사를 창업해야겠다'는 마음이 굳어졌습니다. 확신을 갖게 된 것입니다."
유학 생활 때 찾아온 '번아웃'...김연아의 노력에 감명 받고 힘 찾아
▶유학은 어떻게 결심하셨나요."창업을 하고 전문가분들과 협업을 하고 의사 분들을 설득하고 훌륭한 인재를 회사에 모시려면 저도 '박사' 학위를 따서 전문성을 높여야한다고 생각했어요. 일종의 '자격증' 처럼요. 그리고 생명공학 관련 회사에 가서 3년 정도 일하고 마음 맞는 사람과 창업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유학을 결심했습니다."
▶왜 미국이었죠.
"바이로메드에 다닐 때 한 학회를 갔었습니다. 정부에서 나오신 분이 '국내 1~10위 제약사 매출을 합치고 10을 곱해야 그 당시에 미국 제약사의 블록버스터 신약 하나 매출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한국과 미국의 시장 차이가 너무 크다는 걸 느꼈고, 바이오 신약 개발사를 만들려면 미국에 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입학은 쉬웠나요.
"전혀요. 14개 학교를 지원했는데 다 떨어졌습니다. 제 경력과 학교에서 원하는 게 맞지 않았던 겁니다. 에세이가 중요한데, 한국에서 공부하며 몸에 밴 '겸손한 자세'로 제 성과들을 나열식으로 썼더니 떨어진 거 같기도 합니다. 여러 경험들을 하나로 잇는 ‘스토리’가 중요한데 말이죠. UC버클리와 스탠퍼드에선 '석사로 지원하면 어떻겠냐'고 답이 왔는데, 제가 석사를 한국에서 이미 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무시했죠."
▶그러면 어떻게 미국에 오신 건가요.
"미국 서부에서 유학 중인 친구들이 '무조건 오라'고 설득을 하더군요. 끈질기게요. 그래서 마음을 다시 다잡고 석사과정이라도 지원하려고 UC버클리와 스탠퍼드 이메일들을 다시 열어봤습니다. 스탠퍼드는 지원 기간이 이틀 전에 끝났고 UC버클리는 하루 남았더라고요. 그렇게 지원했고, 버클리에서 석사를 한 번 더 하게 됐습니다."
▶UC버클리에선 짧은 기간 동안 석사를 마치고 스탠퍼드로 옮기셨다고요.
"네. 알고 보니 정말 운이 좋게도 제가 합격한 석사과정은 그 해 버클리에 처음 생긴 프로그램이었고, UC 샌프란시스코 의대와도 연결된 프로그램이었습니다. 1년 또는 2년 과정 중 선택할 수 있었어요. 1년 과정을 선택했는데 그해 8월에 수업이 시작됐고, 그 다음 해 박사 지원은 곧바로 12월부터 시작됐습니다. 빡빡한 수업들을 힘들게 들으면서, 제가 관심있었던 교수님들께 이메일을 써서 '추천서 써주실 만큼 열심히 하겠다', '박사지원하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아침 6시부터 새벽 2시까지 수업 듣고, 공부하고, 실험실 프로젝트 하면서 잠은 2-3시간씩밖에 못 잤어요. '딱 한 번 만 더 해보자'는 마음이었습니다. 그렇게 2010년 8월부터 2011년 4월까지 정신없이 지냈고 결국 3개 명문대 박사과정들에 합격했습니다. 그 중에 스탠퍼드를 선택하게 됐습니다. 생명공학 스타트업 창업을 생각했기 때문에 비즈니스스쿨과 의대가 잘 갖춰져 있는 점도 고려사항이었고, 모든 교수님들이 학생들을 정말 아낀다는 걸 인터뷰 때 느꼈습니다."
▶스탠퍼드에서는 어떤 부분을 중점적으로 연구하셨나요.
"버클리에선 '나노파티클'이란 물질을 써서 항암치료제 개발하는 걸 연구했었고, 스탠퍼드에선 항체치료제 개념으로 단백질 기반 항암치료제를 연구했습니다. 4년 만에 졸업하는 게 목표였는데 결국 학과 평균인 '5년 반' 동안 다니게 되더군요."
▶슬럼프는 없었나요.
"박사 3년차에서 4년차 넘어갈 때 랩에 나가기도 싫을 정도로 슬럼프가 찾아왔습니다. 그 때 김연아 선수가 벤쿠버 동계올림픽에서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후 4년 후 소치 동계올림픽에서도 눈부신 활약을 하는 것을 보고 극복을 했습니다. 김 선수가 어린 나이에 저 자리까지 가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보이면서 '나는 아직 이룬 것도 없이 뭐하고 있는 건가'란 생각이 절로 들더군요. 그리고 서울대학교 김난도 교수님이 슬럼프에 빠진 학생에게 쓰신 유명한 편지글도 도움이 됐습니다."
암 환자 대상 치료제 추천에 난관...반려견으로 틀어 '돌파'
▶'암' 치료제 관련 스타트업을 창업하게 된 이유는요."내가 개발한 신약물질로 실험실 쥐에서 자기 몸 만한 커다란 암이 없어지는 걸 보면 정말 연구자 입장에선 말로 못할 흥분이 되거든요. 사람한테까지 적용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어요. 하지만 제가 KAIST 석사를 마치고 바이로메드에서 경험한 건 '신약개발은 돈과 시간이 엄청나게 많이 들고 성공하기 쉽지 않다'는 것이었어요. 이 분야에서 공부를 하면 할수록 지금 당장 치료를 필요로 하는 수많은 암 환자들이 눈에 보였습니다.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약들로 이 환자들을 최대한 도울 수 있는 길은 무엇일까’를 계속해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2012년 스탠포드에서 열린 의대 세미나에서 “혼합화학치료요법이 단일화학치료요법보다 효과가 있다. 하지만 새로운 혼합요법이 한 환자에게 효과가 있었다고 해도 다른 환자에게 잘 드는 것이 아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아, 이것이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이후엔 어떻게 했나요
"환자 샘플을 받아서 약들을 테스트한 다음에 '어떤 약이 환자의 암세포를 잘 죽이는지를 정밀하게 분석하면 그 환자에게 맞는 항암치료제 또는 약물조합을 찾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죠. 첫번째 난관은 '암세포를 몸 밖에서 배양해서 약물들을 테스트하는 것'이었죠. 두번째는 선택 가능한 약물들의 수가 많기 때문에 어떻게 테스트를 빠르게 할지였어요. 고민 끝에 프린터 카트리지에 잉크 대신 약을 넣고 포토샵 같은 프로그램으로 약 농도를 조절해서 프린트 해보자고 했죠. 해봤는데 되더라고요. 다른 약물과 혼합하는 것도 가능했습니다. 이후로 팀원들을 모아서 아이디어 경진대회에 나갔는데 '파이널7'에 들었습니다. 그리고 졸업 후 바로 창업을 했죠."
▶처음엔 사람(암 환자) 대상 사업을 시도했었다고 들었습니다.
"네 맞습니다. AI를 통한 예측 모델을 개발하려면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모아야 하고 검증하려면 실제 치료 사례가 많아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의 암 샘플을 구하는 게 너무 어려웠습니다. 병원체가 대학 실험실 밖으로 나가는 것은 굉장히 많은 절차가 필요합니다. 살아 있는 암세포를 대상으로 약을 실험해야 하는데, 혈액암세포의 경우 사람 몸 밖으로 나오면 3~4일 만에 죽습니다. 저희는 혈액암세포들을 체외에서도 살아 있게 유지하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었지만 샘플을 받는 데 6개월 이상 걸린다고 하더라고요. 2017년 5월 창업을 했는데 7개월 동안 샘플을 하나도 못 받았었습니다. 당시 회사 통장에 잔고가 3000달러 밖에 안 남았었죠. 이 난관을 어떻게 극복해야 하나 커다란 고민에 빠졌습니다."
▶돌파구는 어떻게 찾았나요.
"저희 회사가 인큐베이터에 함께 참여했던 스타트업 16개 중에 한 곳이 '동물병원'에 들어가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했어요. 그 업체를 통해서 'SAGE'라는 대형 동물병원을 소개 받았습니다. 실리콘밸리에서 가장 큰 2차 동물병원 체인입니다. SAGE 동물병원의 종양학 전문 수의사 한 분이 큰 관심을 갖더라고요. 한 달 안에 혈액암에 걸린 강아지의 샘플 20개를 받았습니다. 이를 계기로 암에 걸린 개와 고양이를 대상으로 각 환자별 최적의 항암치료제를 찾아 수의사선생님들의 암치료 효과를 높이는 사업에 뛰어들게 된 거죠."
인공지능(AI) 결합...인간의 논리로 파악하지 못한 것 깨닫기도
▶현재 사업에 대해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신다면요."개와 고양이는 혈액암 발병 빈도가 굉장히 높습니다. 암에 걸린 강아지와 고양이의 20-30%가 혈액암의 일종인 림프종이에요. 수의사 선생님들이 강아지 보호자의 허락을 받고 종양부위에 주사기 바늘을 찔러서 샘플을 채취하고요, 암세포 일부를 보내줍니다. 그걸 받아서 환자의 암세포들을 7일간 살아있게 유지하는 상태에서 여러 세포 정보 분석 및 약물 테스트를 합니다. 그 테스트 데이터를 저희가 개발한 인공지능 모델에 넣어서 나오는 약물 효능 랭킹 정보를 수의사 선생님들께 보내드리는 거죠.
▶데이터가 쌓이면 인공지능이 큰 역할을 하겠네요.
"네 맞습니다. 저희 데이터사이언스팀이 현재까지 14가지의 인공 지능 모델들을 개발해 놓았고 계속해서 새로운 약물 모델들을 만들고 있습니다. 이 때 가장 중요한 것이 인공지능모델을 훈련시킬 실제 임상 결과들인데요, 저희가 효능이 좋을 꺼라고 예측한 약의 실제 반응이 어땠는지 동물 병원과 환자 보호자의 허가를 받고 환자 의료 기록들을 받습니다. 지난 3년 반 동안 혈액암에 걸린 2500마리 이상의 반려견들의 데이터가 모였습니다. 강아지의 암은 사람보다 빠르게 진행되고 항암치료제에 대한 반응도 훨씬 빨리 나타난다는 점도 인공지능모델들을 개발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AI모델들을 개발하면서 인간의 논리적인 접근으로는 생각하지도 못했던 요소들이 중요하다는 걸 데이터를 통해서 깨닫기도 합니다."
▶동물 관련 사업을 확대할 계획도 있으십니까.
"네. 지금은 반려견 혈액암 중심이지만 고형암으로 확장하는 연구를 시작했고, 반려묘 암환자들에 대한 서비스도 개발하고 있습니다."
올초 약 800만달러 조달하고 서비스 유료화 성공...투자금 투자 유치 계획
▶올해 수익화에 성공하셨다고요."처음 3년동안은 무료로 서비스를 제공하며 데이터 확보 및 병원 네트워크 확장에 힘을 기울였는데 올해 초 유료로 전환했습니다. 기존 고객의 45%가 유료 전환에도 남아 주셨습니다. 유료서비스 런칭 후 맞이한 새로운 고객들에게는 첫번째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하는데, 유료전환율이 60% 가까이 됩니다. 종합하면 지난 3분기 기준으로 기존 고객 수의 48% 정도를 유료 고객으로 확보한 겁니다."
▶상당한 성과네요.
"네, 무료일 때 열심히 사용하시던 의사선생님들 중 유료 전환 후 안 쓰시는 분들이 계셔서 처음엔 실망하기도 했는데 저희 투자자분들께서 '높은 전환율', '상당한 성과'라고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올해 초엔 약 800만달러 정도의 투자금을 '프리 시리즈 A' 단계로 유치했습니다."
▶추가 자금조달도 생각 중이십니까.
"네. 매출도 나오고 있고 해서요, 내년 상반기에 시리즈 A 투자유치를 계획 중입니다."
▶앞으로의 사업 확장 계획은요.
"미국에서의 동물 암환자 대상 서비스 개발 성공 경험이 발판이 되고 있습니다. 현재 미국, 한국, 일본에 랩을 만들었고요, 한국에서는 구자민 이사(임프리메드 공동창업자, 현 홍익대학교 화학공학과 교수)의 리더십 아래 ‘사람’ 림프종, 백혈병 등 혈액암 환자들을 대상으로 최적의 항암치료제를 찾아주는 서비스를 개발하고 있습니다. 정부 과제에도 선정이 됐고요. 서울성모병원의 박성수 교수님, 박실비아 교수님 팀과, 강릉아산병원의 이종철 교수님 팀과 함께 긴밀하게 협력 연구들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사업을 하시면서도 대학생 때 꿈꿨던 '사람을 살리는 일'을 포기하지 않은 거네요.
"네, 목표는 뚜렷합니다. 강아지 먼저 살리고 강아지 보호자(인간)까지 살리는 거죠. 강아지 암치료 쪽에서 시장에 서비스를 내놓을 정도까지 검증이 됐기 때문에 앞으로는 한국에서 사람 암환자 대상 서비스 개발의 속도를 높일 겁니다. 한국에서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고 있는 병원들과 좋은 결과들을 논문으로 발표할 것이고요, 이를 통해서 사람 쪽도 미국시장으로 사업을 확장할 계획입니다."
실리콘밸리=황정수 특파원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