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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 개발 속도내려면…정책·독립기관·전문인력 '3박자' 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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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제약·바이오업계가 미국 머크(MSD)의 코로나19 경구용 치료제 ‘몰누피라비르’에 놀란 건 MSD의 높은 기술력 때문이 아니었다. 이들의 눈이 휘둥그레진 건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허가가 나기도 전에 미국 정부가 한 명당 치료비로 700달러(약 83만원)씩 모두 12억달러(약 1조4184억원)어치를 사주기로 한 대목이었다. 화이자와 모더나가 코로나19 백신을 개발할 때도 미국 정부는 연구개발(R&D)비를 전폭 지원했고, 엄청난 예산을 들여 선구매했다. “코로나19 백신 및 치료제 개발 경쟁에서 미국이 승리할 수 있었던 배경에 ‘성공에 대한 확실한 보상’이 있다”는 얘기가 업계에서 나오는 이유다.
○혁신신약 가치 인정해야
국내 바이오 기업의 파이프라인은 대부분 개발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 우리 손으로 개발해 세계에서 처방되고 있는 글로벌 신약은 찾아보기 힘들다. 전문가들은 한국에서 신약 개발이 더딘 이유 중 하나로 국내 건강보험 시스템이 의약품의 적정 가치를 반영하지 못하는 점을 꼽는다. 신약을 개발하려면 평균 48억달러(약 5조6000억원)의 돈과 10~15년이란 시간을 들여야 한다. 그런다고 다 성공하는 것도 아니다. 신약 개발 성공 확률은 1만분의 1에 불과하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다.

이형기 서울대 임상약리학과 교수는 “성공 확률이 매우 낮기 때문에 적절한 약가를 책정해야 기업이 지속적으로 R&D에 투자할 수 있다”며 “이런 선순환 생태계를 구축하려면 혁신신약에 한해 ‘선등재-후평가’ 등 파격적인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선등재-후평가는 허가와 동시에 임시가격으로 먼저 등재한 뒤 이후 비용효과성평가와 약가협상 등 후평가를 통해 최종 건강보험 적용 약가를 정하는 방식다. 최종가격이 정해진 뒤 임시가격과의 차액을 정산하는 방식이다. 올해 국내에서 수억원에 달하는 초고가약이 허가를 받으며 학계와 업계에서 선등재-후평가의 필요성이 본격적으로 논의되고 있다.

올해 3월 국내에서 처음으로 허가받은 CAR-T 치료제인 노바티스의 ‘킴리아’는 치료비가 5억원이다. 더 이상 치료가 어려운 혈액암 환자들의 생존률을 높여줄 수 있는 치료제지만 가격이 너무 비싸 환자 접근성이 떨어진다. 5월 허가받은 척수성근위축증 치료제 ‘졸겐스마’는 치료비용이 25억원에 달한다. 한 전문가는 “선등재-후평가 같은 제도가 없으면 어떤 기업이 한국에서 희귀질환 치료제를 개발하겠느냐”며 “기업이 혁신신약을 개발하려면 동기 부여가 될 만한 제도가 뒷받침돼야 한다“고 했다.
○신약 개발 총괄할 독립기관 필요
전문가 사이에서는 신약 개발을 총괄할 독립적인 조직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인재 양성부터 R&D, 임상, 허가까지 모든 과정을 총괄할 수 있는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국은 보건복지부, 식품의약품안전처,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업통상자원부 등 여러 기관이 나눠 관리하다 보니 연속성이 없다는 한계점이 있다. 이 교수는 “제약산업을 비즈니스 생태계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근본적인 변화와 개선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비즈니스 생태계란 다양한 주체가 서로 협력해 하나의 가치를 창출하는 경제적인 공동체로서 산업을 바라보는 개념이다. 제약산업은 R&D, 임상, 생산, 허가, 급여 결정, 유통, 처방에 이르기까지 여러 이해관계자가 밀접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이 때문에 비즈니스 생태계 관점에서 정부, 산업계, 학계 등 모든 이해당사자를 아우를 수 있는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

최영현 한국신약개발연구조합 혁신정책연구센터 회장은 “미국 영국 일본은 1개 정부기관에서 관련 전략을 총괄한다”며 “우리도 신약 개발 장기 정책을 수립할 기구를 상설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약 개발 관련 전문 인력도 양성해야 한다. 임상, 개발 등 각각의 단계에 전문성을 지닌 인력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최 회장은 “첨단 바이오헬스 융복합 분야의 민·관·학 합동 교육과정을 설립해야 한다”며 “1조원 규모의 신약 개발 특화 펀드를 조성해 국내 기업이 자체 수행할 수 있는 자본과 역량을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지원 기자 jwcho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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