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성남시장 시절인 2017년 1월 21일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구속과 관련해 성명문을 냈다. “사필귀정이다. 재벌 해체의 시작으로 삼아야 한다. 권력과 결탁한 재벌 체제는 더욱 공고해졌고 권력은 재벌의 이익을 지키는 데 앞장섰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구속 영장 재청구도 반드시 해내야 한다.”
앞서 2016년 12월 6일엔 ‘이재용 삼성 부회장을 위해 움직이는 나라. 반드시 엄벌하고 재벌 체제 해체해야’라는 제목으로 자신의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에 이런 글을 올렸다. “이 부회장의 기업 합병 방식 경영 승계에 온 나라가 동원되고…. 촛불 광장 국민들도 ‘재벌 해체’를 외치고 있습니다.” 2017년 대선 땐 “극단적인 조치를 통해 재벌 기업을 재벌 가문으로부터 분리시켜 지배권을 박탈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 이 후보는 12월 3일 삼성경제연구소를 방문해 “삼성이나 이런 데서 기본소득을 얘기해 보는 게 어떻겠나. 사실 제가 이 부회장에게도 그 얘기를 했다”고 말했다. 또 “제가 친노동 인사인 것은 맞는데 친기업과 친노동이 양립 불가능한 게 아니다”고 했다. 지난 11월 29일엔 “전환적 공정 성장으로 기회 총량을 획기적으로 늘리겠다. 세계 시장에서 무한 경쟁하고 있는 기업을 힘껏 지원하겠다”고 했다. ‘재벌 해체론’을 펴며 이 부회장을 비판한 것과는 확연히 다르다.
이 후보가 이전의 자신의 주장과 발언을 뒤집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특히 그의 ‘트레이드마크’화된 정책들을 손바닥 뒤집듯 하면서 혼란도 주고 있다. 재산 규모와 소득, 취업 여부와 상관 없이 모든 국민에게 일정 금액을 지급하자는 기본소득도 그렇다. 그는 성남시장 시절부터 기본소득을 주장해 왔다. 하지만 지난 7월 당 경선에서 다른 후보의 집중 공격을 받자 “기본소득은 제1의 공약이 아니다”며 한 발 뺐다. 그러다가 지지층의 반발이 있자 임기 내 전 국민에게 연 100만원, 청년에게는 연 200만원 지급 목표를 제시했다. 이 후보는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1인당 연 100만원 정도는 우리 재정이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고 했다.
이재용 부회장 구속·재벌해체 주장하더니 ‘친기업’하지만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기본소득에 대해 “국민이 반대해 제 임기 안에 동의받지 못한다면 추진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공론화한 뒤에도 국민이 동의하지 않는다면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 민주주의”라고 했다. 그랬다가 이 부회장에겐 기본소득을 얘기해 달라고 한 사실을 공개했다. 이 후보 측에선 기본소득을 철회하자는 것은 아니고 국민의 뜻을 존중하겠다는 말 그대로 믿어 달라고 하지만 결이 다른 말에 국민은 헷갈릴 수밖에 없다.
또 다른 그의 대표 공약인 국토보유세 관련 발언도 마찬가지다. 그는 2017년 대선 때 국토보유세를 신설해 마련하는 재원 15조원을 기본소득의 재원으로 삼아 전 국민에게 연간 30만원씩 주겠다고 약속했었다. 국토보유세는 모든 토지를 과세 대상으로 삼아 집을 가진 사람은 주택에 딸린 토지에 대해 토지 값의 최대 1%를 세금으로 내도록 하는 것이다.
이를 기본소득으로 국민에게 나눠 준다는 구상이다. 이 후보가 국토보유세를 토지 이익 배당으로 부르는 이유다. 종합부동산세, 토지분 재산세와 겹쳐 이중 과세 논란이 있지만 이 부분에 대해 이 후보 측에선 뚜렷하게 정리된 안을 보이지 않는다.
그는 국토보유세에 대해 “토지 보유 상위 10%에 못 들면서 반대하는 것은 악성 언론과 부패 정치 세력에 놀아나는 바보 짓”이라고까지 했다. 하지만 최근엔 “국민이 반대하면 할 수 없는 것”이라고 했다. 여론 조사에서 절반 이상이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고 과도한 사유재산권 침해라는 비판이 거세자 이렇게 달라진 것이다. 논란이 일자 “철회한 일이 없다. 기본적 원리를 말한 것”이라고 했다.
전 국민 재난지원금에 대해 여당은 이 후보의 뜻을 뒷받침하기 위해 반대하는 기획재정부를 향해 국정 조사, 기획재정부 해체까지 주장하며 압박했다. 초유의 ‘납부 유예’ 꼼수까지 동원하려고 했다. 그러다가 이 역시 반대 여론이 찬성보다 두 배 이상 높게 나오자 슬그머니 꼬리를 내렸다.
이 후보가 ‘조국 사태’에 대해 사과한 것도 표변한 한 사례다. 그는 12월 2일 방송기자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조국 사태가 민주당이 국민으로부터 비판받는 문제의 근원 중 하나라고 지적하며 “제가 할 수 있는 범위에서, 아주 낮은 자세로 진지하게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과거 그는 “비이성의 극치인 마녀사냥에 가깝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선택적 정의를 행사했고 조 전 장관은 선택적 정의에 당한 것”이라며 조 전 장관을 옹호했다. 그랬다가 갑자기 사과한다고 하니 진정성에 의문 부호를 찍을 수밖에 없다.
이 후보는 대학 안 가는 청년들에게 세계여행비 1000만원 지원, 한 지역에서 개업할 수 있는 음식점의 총량을 제한하는 ‘음식점 허가 총량제’, ‘주4일 근무제’도 불쑥 꺼냈다가 비판 여론이 거세자 이 역시 ‘아이디어 차원’이라며 ‘없던 일’로 했다.
이 후보가 자신의 주요 공약이나 과거 발언을 이렇게 손바닥 뒤집듯 하는 것은 선거 전략의 일환임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이 후보의 한 핵심 참모는 “이 후보에 대해 그간 독주와 강경 이미지가 강하게 덧씌워져 있었다”며 “반대 의견에도 귀를 기울이는 실용적 면모와 유연함도 가지고 있다는 점을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고 했다. ‘국민이 반대한다면…’이란 것을 빌미로 여론 지지도가 낮은 공약을 바꿔 역으로 지지율을 올리려는 차원이다.
지지율 박스권 갇히자 중도층 유인 위해 ‘변신’자신의 공약에 부정적인 시각이 적지 않은 중도층을 겨냥한 것이기도 하다. 이 후보는 지지율 30%대의 박스권에 갖혀 좀체 치고 올라가지 못하고 있다. 지지율이 40% 대로 뻗어나가기 위해선 전통적 민주당 지지층 이외에 중도층의 지지를 흡수할 필요가 있다. 겉으론 실용주의로 포장하지만 그러기 위한 유인책이 ‘변신’이란 것이다.
하지만 비판과 함께 그 위험성도 제기된다. 지지층의 비판은 감수할 수 있다고 해도 정치인으로서 신뢰성을 잃을 수 있다는 것이다. 포퓰리즘은 돈 퍼 주기만이 아니다. 주관적 견해도 대중이라는 이름을 팔아 쉽게 바꾼다면 이 역시 또 다른 포퓰리즘이라는 것이다. 국민 여론을 존중하는 것은 물론 필요하지만 표에 따라 왔다갔다 하는 부박한 모습을 보여준다면 당선되면 또 어떻게 달라질지 모른다는 인식을 심어 줄 수 있다.
유권자들은 국가를 이끌어 갈 후보들의 철학과 공약을 보고 표를 준다. 물론 잘못된 공약을 끝까지 고집하지도 말아야겠지만 보다 면밀한 점검도 없이 단순히 표 때문에 표변한다면 정치인의 생명인 신뢰를 저버리게 되는 것이기도 하다. 모호한 화법으로 “한다”, “안 한다”를 오가는 양다리 걸치는 전략을 펴면서 ‘아니면 말고식’이라는 정치인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나.
노동이사제와 공무원 타임오프제(노조 전임자 일부 활동을 노동 시간으로 인정해 임금을 지급하는 제도) 도입을 위해 연내 입법을 여당 지도부에 주문하면서 내놓은 강경 발언은 또 다른 논란거리다. 야당이 반대하면 국회 신속 처리 안건(패스트 트랙)을 통해서라도 처리하라고 했다. 이견이 있더라도 타협의 정신을 발휘해 접점을 찾아가는 것이 의회주의인데, 이 후보의 발언은 이를 부정하는 것이다. 국민의 뜻이란 이름으로 자신의 대표 공약까지 철회할 수 있다고 한 것과 야당의 반대를 뚫고 나가라는 것 중 어느 게 진짜 이 후보의 모습일까.
홍영식 논설위원 겸 한경비즈니스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