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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핀테크기업 누뱅크가 미국 증시에 데뷔한 첫날 500억달러(약 58조원)에 육박하는 시가총액을 기록했다.
9일(현지시간) 뉴욕증권거래소(NYSE)에 신규 상장한 누뱅크는 10.33달러로 마감했다. 첫날 종가는 공모가(9달러)보다 14.78% 상승했다. 종가를 기준으로 한 누뱅크 시총은 476억달러다. 브라질 은행 이타우우니방쿠(시총 370억달러)를 단숨에 제치고 남미에서 가장 몸값이 높은 금융기업이 됐다. 브라질 기업 중에서는 정유기업 페트로브라스와 광산기업 발레에 이어 시총 3위에 올랐다.
로이터통신은 “은행의 후진적인 시스템과 고금리로 악명이 높은 남미에서 누뱅크와 같은 핀테크기업이 기존 대형 은행들의 아성에 도전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CNBC는 “앞서 미 증시에 입성한 로빈후드, 소파이 등 다른 핀테크기업보다 누뱅크의 기업가치가 더 높게 평가됐다”며 “‘제2의 로빈후드’로 불리며 내년 상반기 상장 예정인 차임의 예상 기업가치도 가뿐히 압도하는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투자자들이 누뱅크의 기업가치를 높이 평가한 이유는 남미에서의 확장 가능성에 있다. 누뱅크가 설립된 2013년 당시 브라질의 금융 생태계는 비효율적이고 일반인의 접근성도 낮다는 평가를 받았다. 브라질의 5개 은행이 전체 예금 자산의 84%를 차지할 정도로 과점 상태였으며 신용카드의 연간 금리는 300%였다. 은행 지점이 있는 도시는 브라질 전체의 60%에 불과했으며 그 결과 인구 중 3분의 1은 은행 계좌조차 없었다.
브라질 금융시장에 뛰어든 누뱅크는 이자율을 대폭 낮추고 수수료가 없는 신용카드를 출시하는 등 공격적인 영업에 나섰다. 누뱅크는 신용카드로 시작해 예금과 대출, 투자플랫폼, 보험 등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지난 9월 말 기준 약 510만 명의 브라질 국민이 누뱅크를 통해 처음으로 신용카드를 사용하기 시작했거나 은행 계좌를 개설한 것으로 추산됐다. 현재 브라질 콜롬비아 멕시코 등 중남미 여러 국가에서 4800만 명의 이용자를 보유하고 있다. 누뱅크는 모바일 플랫폼에서도 거래 수수료를 일절 부과하지 않고 있다. 누뱅크가 수수료를 받지 않은 덕에 소비자는 20억달러 이상의 비용을 절감할 수 있었다.
콜롬비아 태생인 다비드 벨레스 누뱅크 공동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는 “누뱅크는 설립 이후 급격히 성장하긴 했지만 디지털뱅킹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에 시달리기도 했다”고 소회를 밝혔다. 그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기존 은행의 오프라인 지점들이 문을 닫기 시작하자 누뱅크의 디지털뱅킹 수요가 급증했다”며 “60대 이상 고령층의 유입 속도가 빠른 점이 고무적”이라고 덧붙였다.
누뱅크의 가능성과 확장세를 눈여겨본 투자자들은 일찌감치 투자에 나섰다. 올해 초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 회장이 이끄는 벅셔해서웨이가 누뱅크의 기업가치를 300억달러로 평가하고 5억달러를 투자했다. 이외에도 글로벌 벤처캐피털(VC) 세쿼이아캐피털, 글로벌 헤지펀드 운용사 타이거글로벌매니지먼트, 일본 투자사 소프트뱅크 등과 중국 텐센트가 누뱅크가 상장하기 전 투자자로 참여했다.
누뱅크는 기업공개(IPO)를 통해 26억달러를 조달했다. 올해 미 증시에서 진행된 IPO 중 스팩(기업인수목적회사)을 제외하고는 다섯 번째로 큰 규모다. 브라질 상파울루증시에도 이중 상장했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누뱅크의 올해 예상 매출은 10억달러다. 지난해 5억3500만달러의 두 배 수준이다. 그동안 적자를 이어오다 올 상반기에 흑자 전환했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