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중국 정부는 한 권의 책을 금서 조치했다. 현직 언론인이 쓴 《중국 문명을 반성하다》라는 책이었다. 이 책은 고대부터 민국 시대까지 중국 문명의 흐름을 깊고 신랄하게 성찰하고 있었다.
특히 눈에 띄는 대목은 송나라와 명나라 시대다. 송 태조 조광윤은 가장 먼저 문(文)을 세우고 무(武)를 해체시켰다. 그리고 검소하게 왕실을 운영했다. 북송 시기 송나라의 인구는 1억 명을 넘어섰고, 상업문명이 번성했다. 철광업이 발달했고 대형 회사와 은행도 생길 정도였다. 세금도 적었고 관료들에 대한 견제장치도 훌륭했다. 사람들은 윤택한 생활을 했으며 이는 귀족뿐만 아니라 일반 백성에게까지 고루 미쳤다. 심지어 사회보장제도까지 갖추고 있었다. “천하가 근심하기에 앞서 근심하고 천하가 다 기뻐한 후에 즐거워한다(先天下之憂而憂, 後天下之樂而樂)”는 위대한 정서를 송나라 사람들은 갖고 있었다.
하지만 송나라의 문치주의는 국방의 약화를 불러왔고, 산업의 발전 또한 과학혁명을 통한 한 단계 도약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그렇게 송나라는 외침으로 무너졌고, 이어서 원나라와 명나라가 연이어 중국 대륙을 다스렸다.
몽골의 원나라는 점령하는 곳마다 인명 살상을 일삼았다. 인류 역사상 이보다 더 야만적인 몰살 정치가 있을까 싶을 만큼 몽골은 가는 곳마다 공포로 통치했다. 송나라가 구축한 문명은 금세 시들었다. 인구는 절반 이하로 줄었다. 다행히 원나라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았고 명나라가 들어섰다. 그러나 명 태조 주원장은 권력욕의 화신이었다. 그의 치하에서는 상소를 올리는 일조차 용납되지 않았다. 금의위라는 비밀경찰이 전국에 퍼져서 국민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했다. 술 한 잔 하고 시를 읊으며 귀가하던 관리가 이튿날 조정회의에서 황제에게 시구가 부적절했다는 지적을 받을 정도였다. 권력의 사유화는 황제들을 궁궐 깊숙한 곳으로 밀어 넣어 조회조차 나오지 않게 만들었다. 무역을 마비시킨 해금정책은 급기야 백성이 바다로 나갈까봐 우려해 어로활동마저 금지시켰다. 모든 게 권력 보위의 논리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망해갔다.
이 과정을 읽어가다 장탄식이 나왔다. 어째서 인류는 저토록 위대한 문명을 만들어놓고도 그것을 지키지 못하고 바닥까지 추락하는 역사를 되풀이해왔을까. 민주화된 시대 우리는 과연 저런 일을 반복하지 않을 자신이 있을까. 관건은 권력의 집중이다. 황제 제도는 권력이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한곳에 응집된 권력은 그것을 중심으로 하여 극도의 불안과 공포를 만들어낸다. 불안은 권력자가 느끼는 것이고 공포는 그 불안을 해소하는 과정에서 피통치자들이 느끼는 것이다. 불안과 공포의 연쇄적인 소용돌이 속에서 사회는 핸들을 놓쳐버리고 비이성적인 과열로 폭주한다.
요즘 시진핑의 중국은 연일 세상을 향해 공포 메시지를 내놓고 있다. 과연 지금의 중국은 명나라와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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