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문자는 자음과 모음을 다 갖춘 자모(子母)문자 중 가장 긴 역사를 갖고 있다. 페니키아인들이 사용하던 자음문자에 모음을 추가해 지금의 24글자를 완성했다. 영어 단어 ‘알파벳(alphabet)’은 그리스 문자의 첫 두 글자 ‘알파’와 ‘베타’에서 따 왔다. 첫 글자와 마지막 글자를 합친 관용어 ‘알파와 오메가(처음과 나중·완전함)’도 여기에서 유래했다.
그리스 문자는 그리스 숫자와 원주율(π) 같은 수학 기호, 물리학의 입자 이름 등 다양한 용도로 쓰인다. 천문학에서도 가장 밝은 별을 ‘알파(α)성’, 그다음 밝은 별을 ‘베타(β)성’ 등으로 부른다. 몇 가지 예외는 있지만, 센타우루스자리의 가장 밝은 별을 ‘센타우루스자리 알파(α)’ 식으로 표기한다.
첨단 정보기술과 디지털 분야에도 그리스 문자가 널리 활용되고 있다. 요즘 유행하는 메타버스(metaverse) 또한 그중 하나다. 가상과 현실을 넘나들며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세상을 뜻하는 이 말은 ‘초월, 그 이상’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메타(meta)와 ‘세상 또는 우주’라는 유니버스(universe)의 합성어다.
올 들어서는 코로나19 변이 바이러스 때문에 더 큰 관심을 모으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지난 5월부터 변이 바이러스에 그리스 문자를 순서대로 붙여 이름을 짓고 있다. 처음엔 발생지역에 따라 영국 변이, 남아프리카공화국 변이, 브라질 변이, 인도 변이로 부르다가 특정 국가의 ‘낙인’을 피하기 위해 알파(영국), 베타(남아공), 감마(브라질), 델타(인도) 변이로 바꿨다.
그동안의 12번째 ‘뮤(μ)’ 변이에 이어 지난 26일 남아공에서 새로운 변이가 확인됐다. 그런데 WHO는 13번째 ‘뉴(ν)’와 14번째 ‘크시(ξ)’를 건너뛰고 15번째 글자인 ‘오미크론(ο)’으로 명명했다. 영어로 ‘새롭다’는 뜻의 ‘뉴(new)’와 혼동할 수 있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성을 영문(Xi)으로 표기한 것과 겹치기 때문이라는 등의 해석이 분분하다.
오미크론의 갑작스런 출현으로 세계 증시가 급락하고, 각국이 여행 봉쇄령을 잇달아 내리는 등 글로벌 경제가 요동치고 있다. 그나마 오미크론을 처음 보고한 남아공 의사협회장이 “확진자 절반이 백신 미접종자이고 증상은 가볍다”고 말했다니 다행이다. 부디 다음 이름 ‘파이(π)’까지 호명되지 않고 바이러스 변이가 여기에서 끝나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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