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코로나19 확진자 비율과 사망률 모두 미국보다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코로나19 신규 확진자가 이틀에 100만 명씩 발생하면서 누적 사망자가 150만 명을 넘어선 유럽에는 방역 비상이 걸렸다. 설상가상으로 남아프리카에서 델타 변이보다 전염력이 강한 것으로 추정되는 ‘뉴’(Nu·B.1.1.529) 변이 바이러스가 등장하면서 코로나19 재확산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서둘러 백신 접종 대상을 확대하고 방역 고삐를 조이는 국가가 늘어나고 있다.
사망자 10만 명 넘어선 독일
25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지난 한 달간 유럽연합(EU) 내 27개국의 인구 100만 명당 하루 코로나 확진자 수는 500명 이상이다. 100만 명당 290명 수준인 미국의 코로나19 확진자 비율을 크게 웃돈다. 하루 코로나19 사망자 비율도 100만 명당 3.8명으로 미국(3.4명)보다 높다. 미국보다 먼저 ‘위드 코로나’(단계적 일상회복)에 들어간 유럽이지만 겨울이 다가오면서 코로나19가 걷잡을 수 없이 재확산하고 있다는 분석이다.AFP통신에 따르면 이날 독일의 코로나19 누적 사망자는 10만 명을 넘어섰다. 하루 신규 확진자 수는 7만5961명으로 처음 7만 명을 웃돌았다. 유럽에서 코로나19 누적 사망자가 10만 명 이상으로 집계된 국가는 영국 이탈리아 프랑스에 이어 독일이 네 번째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10만 명의 코로나19 희생자를 애도해야 하는 매우 슬픈 날”이라고 했다.
영국에선 코로나19 대유행이 시작된 이래 누적 확진자가 1000만 명을 넘었다. 이날 신규 확진자는 4만7240명으로 집계됐다. 네덜란드의 경우 코로나19 중환자 병상이 포화상태에 달해 일부 종합병원은 장기 이식마저 중단하는 처지에 놓였다.
다시 강화되는 방역 조치
코로나19 확산세가 심각해지자 유럽연합질병통제센터(ECDC)는 18세 이상 모든 성인에 대한 부스터샷(추가 접종)을 권고했다. 유럽의약품청(EMA)도 5~11세 아동에 대한 화이자 백신 접종을 승인했다. EU집행위원회는 역내에서 통용되는 코로나19 백신 접종 증명서의 유효 기간을 접종 완료 뒤 9개월까지로 하자고 제안했다.각국 정부는 서둘러 백신 접종 확대에 나서고 있다. 프랑스는 이번 주말부터 초기 접종 후 5개월이 지난 모든 성인에 대해 부스터샷을 시행하기로 했다. 현재 부스터샷 대상은 65세 이상이다. 5∼11세 아동에 대한 백신 접종도 검토 중이다. 덴마크 보건당국도 18세 이상 모든 성인에게 부스터샷을 접종한다고 발표했다. 폴란드 헝가리 체코 등은 EU집행위의 최종 결정이 나오면 어린이 접종을 시작한다는 방침이다.
사회적 거리두기도 강화되고 있다. 체코는 30일간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술집과 클럽의 영업시간을 오후 10시까지로 제한했다. 포르투갈은 다음달부터 다시 실내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한다. 최근 오스트리아는 3주간의 ‘록다운’(봉쇄)에 들어갔다. 벨기에는 1주일에 네 번은 재택근무를 하도록 강제하고 있다. 이탈리아는 다음달 6일부터 백신 미접종자가 실내 음식점 및 주점 박물관 미술관 극장 영화관 헬스장 등을 이용하지 못하도록 했다.
확산하는 변이 공포
유럽 각국은 지난 11일 남아프리카에서 발견된 코로나19 변이 ‘뉴’에 주목하고 있다. 뉴 변이 바이러스 표면에 있는 스파이크 단백질은 32개에 달하는 돌연변이를 보유하고 있다. 전염력이 강한 델타 변이도 스파이크 단백질 돌연변이가 16개에 불과했다.돌연변이가 많을수록 백신을 무력화할 확률이 커진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영국 BBC는 이날 기준 남아공에서 77건, 보츠와나에서 4건, 홍콩에서 2건 등 모두 83건의 뉴 변이가 보고됐다고 전했다. 벨기에에서도 26일 뉴 변이에 감염된 사례가 1건 보고됐다. AFP통신은 이는 유럽에서 새 변이 감염이 확인된 첫 사례라고 보도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뉴 변이의 심각성을 논의하기 위해 26일 긴급회의를 소집했다.
뉴 변이의 유입을 막기 위해 빗장을 걸어잠그는 국가도 늘고 있다. 영국은 남아공 나미비아 보츠와나 짐바브웨 레소토 에스와티니 등 아프리카 6개국으로의 항공편 운항을 중단하기로 했다. 오스트리아에선 다음달 13일까지 업무 학업 가족과 관련된 사유 없이 관광객 입국이 허용되지 않는다.
박상용 기자 yourpenc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