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부동산세에 대한) 우려가 있지만 국민의 98%에게는 고지서가 발송되지 않는다.”
“국민 90%는 (국토보유세 도입으로) 내는 것보다 받는 것이 많다.”
첫 번째 발언은 19일 이억원 기획재정부 1차관이 다음주 종부세 고지서 발송과 관련해 한 말이다. 두 번째 발언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지난 15일 국토보유세 도입을 주장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정통 경제 관료와 정치인이 했다는 차이는 있지만 세금에 대한 인식에서 두 발언은 쌍둥이처럼 닮았다. 논란이 되는 세제와 관련해 세금 부담이 특정 계층에 집중되는 만큼 국민 대다수는 신경 쓸 필요가 없고, 세수 증가에 따른 혜택만 누리면 된다는 것이다. 표를 얻기 위한 정치인의 논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이 차관의 조세관, 더 나아가 문재인 정부의 조세정책이 얼마나 정치에 오염돼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정부는 올해부터 소득세 최고세율을 42%에서 45%로 인상했다. 벌어들인 돈의 절반 가까이를 떼가면서 고소득자 1만6000여 명의 세 부담은 1인당 2480만원씩 늘었다. 지난 6월부터는 다주택자에 대한 양도소득세 중과가 시작됐다. 3주택자는 지방세를 포함해 양도차익의 82.5%를 국가에 내야 한다. 종부세 최고세율은 올해부터 3.2%에서 6%로 인상됐다. 농어촌특별세까지 포함한 실효세율은 7.2%로 10년이면 갖고 있는 집을 통째로 내놔야 하는 수준이다.
이런 가운데 “국민 98%는 종부세와 무관하다”는 이 차관의 발언은 세금의 가장 중요한 원칙인 공평성을 훼손한다는 지적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경쟁력 있는 조세제도’의 첫 번째 원칙으로 공평을 제시하며 “조세가 공평하다고 받아들여야 납세 순응도가 높아진다”고 밝혔다. 공평성을 상실한 세제는 조세 저항을 부르고 세금 징수 비용을 높인다는 의미다. 소득이 높거나 자산이 많다는 이유로 올해 1년간 특정 계층에 세 부담을 집중시킨 정부의 조세정책은 이 같은 공평성을 심각하게 침해한다. 하지만 이 차관은 공평성을 침해당한 계층의 반발은 무시해도 되는 것인 양 여론을 부추기고 있다.
박형수 전 한국조세재정연구원장은 “정부가 표를 얻기 위해 조세정책을 정치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고소득자에게 더 많은 세금을 걷어 중산층 이하에 뿌리며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세금 부과는 국민의 소득 및 재산의 일부를 정부가 가져간다는 점에서 가장 엄정해야 할 행정 행위다. 그런 조세제도의 신뢰성이 이 차관의 말 한마디에 흔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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