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가 터진 후 마음 속 응어리가 진 분들이 많아졌습니다. 오감이 통제되는 나날이 계속된 까닭입니다. 마스크 탓에 향기를 느끼기도 쉽지 않고, 손에 소독제를 바르는 통에 촉각을 느끼기도 어렵습니다. 유일하게 자유로운 감각은 청각. 이제 음악은 취미가 아니라 정신건강을 위한 생필품처럼 여겨집니다.
'명곡 한잔'은 귀로 탐닉하는 예술을 담아냅니다. 마스크를 벗기 망설여지는 시간 속에서 커피 한잔처럼 여유를 주고, 소주 한잔 같이 위로가 되어주는 명곡들을 소개합니다.
낙엽이 비처럼 쏟아지는 한 주 속에서 가을이 멀어져가는 시기에 딱 맞는 노래가 있습니다. 'Autumn Leaves(고엽)'입니다. TV나 영화관, 카페마다 늦가을에 흘러나오는 작품으로 클래식, 팝, 재즈 연주자 가리지 않고 한 번씩 다뤘습니다.
재즈를 배우는 분들이라면 한 번씩은 꼭 연주해보는 재즈 스탠다드(표준곡)입니다. 서정적인 선율로 시대를 초월해 사랑받은 노래입니다. 오늘날까지 무려 1400여개 버전으로 편곡됐습니다.
재즈의 원류인 미국에서 쓰이지 않았는데도 금새 세계에 퍼졌습니다. 원곡은 프랑스에서 쓰여졌습니다. 헝가리 출신 프랑스 작곡가 조셉 코르마(1905~1969)가 프랑스 시인 자크 프레베르와 함께 'Les Feuilles mortes'를 썼습니다. 1946년 개봉할 영화 '밤의 문' 배경에 입히려 만든 노래입니다.
프랑스를 벗어나 미국으로 알려지며 세계로 뻗어나갔습니다. 가수 이브 몽탕이 미국 작곡가 조니 머서와 함께 편곡했습니다. 1950년 음반제작사 '캐피톨'의 음악출판을 담당하던 마이클 골드슨이 머서에게 곡을 바꿔 써주기를 부탁했습니다.
머서는 수락했지만 약속을 깜빡 잊었다고 합니다. 골드슨은 "몇 달을 기다렸는데도 소식이 없었다. 악보 발간을 몇 주 앞두고 머서가 '뉴욕으로 가는 기차 안에서 작업할게'라는 답이 왔다. 완성된 가사를 읽었는데 눈물 날 정도로 아름다웠다"라고 회상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미국에 퍼지고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1955년에는 미국의 피아니스트 로져 윌리엄스가 가사없이 기악곡으로 편곡한 노래가 빌보드차트 1위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머서는 훗날 골드슨에게 "내가 쓴 어떤 곡보다 많은 수익을 안겨준 작품"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지금까지 여러 버전이 나왔지만 가장 유명한 건 살아있는 전설 에릭 클랩튼이 2010년 스무 번째 스튜디오 앨범 'Clapton'에 실은 곡입니다. 다른 음악가들과 달리 블루스한 느낌을 잘 살려 불렀습니다. 2010년에 나온 뒤로 지금까지 유튜브에서만 조회 수가 2192만회에 달합니다. 클랩튼의 기타 연주와 중후한 보컬도 묘한 매력을 전해줍니다.
'재즈계의 쇼팽'이라 불리는 피아니스트 빌 에반스도 1959년 'Autumn Leaves'를 자기 입맛에 맞춰 바꿨 연주했습니다. 이지러지는 피아노 선율을 베이스가 중후하게 뒷받침해줍니다. 여기에 잔잔하게 울려 퍼지는 드럼 소리가 곡을 세련되게 꾸며줍니다. 빌 에반스 특유의 몽환성이 잘 드러나는 편곡입니다.
에디 히긴스 트리오도 2002년 음반 'betwiched'를 내며 이 곡을 편곡했습니다. 국내에서 가장 잘 알려진 버전입니다. 재즈 피아니스트 에디 히긴스와 베이시스트 제이 레온하르트, 드러머 조 아쉬오네로 이뤄진 에디 히긴스 트리오는 풍부한 서정성을 담아냈습니다. 지루하지 않게 끌고가는 베이스의 다이나믹과 깔끔한 피아노 연주, 둘 사이를 이어주는 드럼까지. 이 곡의 생명력을 오늘날까지 이어주는 가교 역할을 해줬습니다.
이밖에도 쳇 베이커, 스탠 게츠, 냇 킹 콜 등 수많은 재즈 전설들이 곡을 썼습니다. 가을이 떠나가기 전에 연주자 별로 다른 매력을 감상하시길 바랍니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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