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소비자물가뿐만 아니라 각종 물가지표 상승세가 심상치 않다. 특히 일부 품목의 수급 사정에 따른 결과로 보기 어려울 정도로, 대부분 품목의 가격이 전방위적으로 상승하고 있다. 따라서 기준금리 인상을 통해 시중에 유통되는 화폐량을 전체적으로 줄일 수 있는 통화정책의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반면 한쪽에서는 전 국민에게 재난지원금을 지급하는 것처럼 사실상 시중 유통 화폐량을 증가시키는 것과 비슷한 정책도 시행되고 있다.
정부의 재정지출은 돈을 사용해도 세금으로 시중 화폐를 흡수하기에 중앙은행이 새롭게 화폐를 찍어내는 통화정책과는 구분된다. 하지만 국채 발행에 의존한 지출이거나 전 국민 재난지원금처럼 광범위하게 돈을 뿌리는 경우는 시중의 유통 화폐량을 전반적으로 늘리는 것과 비슷한 효과가 있고, 그 결과 물가를 자극할 수 있다. 중앙은행에서 직접 찍어내는 돈을 본원통화라고 하는데, 본원통화의 양도 중요하지만 결국 물가 결정에 핵심적인 것은 시중에 유통되고 돌아다니는 화폐의 양이기 때문이다. 결국 본원통화의 발행액은 같아도 시중에 유통되는 화폐량이 증가하면 물가를 자극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기준금리를 정하는 방식으로 통화정책이 수행된다. 기준금리를 높인다는 것은 통화 공급을 줄인다는 뜻이다. 물론 글로벌 금융위기나 코로나 상황에서 미국을 비롯한 일부 국가의 중앙은행에서 기준금리 인하로 제로금리에 도달한 후에 금리 조절이 아니라 양적완화처럼 비전통적인 통화정책을 수행한 적도 있다. 하지만 미국 중앙은행(Fed) 역시 근본적으로는 기준금리를 정하는 방식으로 화폐의 공급량을 결정하며 통화정책을 시행한다.
그렇다고 해서 기준금리 조정만이 통화정책을 수행하는 유일한 방식은 아니다. 과거에는 기준금리를 정하는 것이 아니라 물가에 가장 핵심적으로 영향을 주는 통화의 공급량을 아예 직접 정하는 방식으로 통화정책을 수행했던 때도 있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폴 볼커가 미국 Fed 의장으로 통화정책을 주도하던 1980년대다. 당시 볼커 의장은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밀턴 프리드먼 시카고대 교수의 아이디어에 기반해 ‘물가는 화폐적 현상이다’란 관점에서 실물 활동에 비해 많은 화폐를 뿌려 통화공급을 증가시키면 물가가 오르는 인플레이션이 발생한다고 봤다. 흔히 이 이론은 ‘프리드먼 준칙’이란 이름으로 통화공급량 변화에 정책 초점을 두고 통화량의 증가 속도를 줄여 물가를 제어하는 정책으로 이어진다. 결과적으로 볼커가 Fed 의장으로 취임한 직후인 1979년 월별 최고 물가상승률은 15%대에 육박했으나, 그가 재선임된 1983년에는 3% 아래로 떨어져 미국은 ‘거대 인플레이션(the great inflation)’에서 벗어난다. 결국 물가 안정의 핵심에는 통화 공급을 줄이고 화폐 또는 유동성을 회수하는 작업이 있었다.
우리나라도 글로벌 생산 네트워크 교란과 국제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공급 여건은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서 코로나 사태에 따른 금리 인하와 함께 풀린 유동성이 물가 상승 압력을 높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국채 발행에 의한 정부 지출이나 일반 국민 대상의 지원금 유포는 시중 통화량을 증대시키는 것과 비슷한 효과로 인플레이션 부담을 더욱 키울 수 있다.
1970년대 인플레이션은 석유파동에 따른 유가 인상으로 가속화되지만, 거대 인플레이션은 이미 석유파동 이전인 1965년부터 시작됐다. 여기에는 베트남 전쟁의 전비 지출뿐만 아니라 1964년부터 시작된 존슨 행정부의 ‘위대한 사회’ 의제에 따른 빈곤 퇴치 등 각종 복지 프로그램에 대한 재정 지출도 역할을 했다.
현재와 같이 높은 물가상승률로 국민의 생활고가 깊어져 긴축적 통화정책이 필요한 상황에서, 효과가 높지 않은 재정지출 증대를 통해 오히려 유동성 확대와 비슷한 정책을 수행한다면 자칫 거대 인플레이션에 시달리는 상황을 만들 수 있는 측면에 주목해야 한다. 그렇다고 재정정책이 필요한데도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다만 인플레이션을 막으려면 통화정책을 안정적으로 운영하는 것은 물론이고, 단순 유동성 확대 효과가 큰 대규모 정부지출 프로그램보다는 꼭 필요한 계층에 초점을 둔 보다 효과적인 재정정책 설계가 함께 필요하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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