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경제·외교 분야 장관들이 “외교를 부활시켜야 한다”며 문재인 정부의 외교정책에 대해 쓴소리를 쏟아냈다. 첨예해진 미·중 갈등 속에 ‘전략적 모호성’을 버리고 대중(對中) 외교에서 입장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는 조언도 나왔다.
정덕구 니어재단 이사장(전 산업자원부 장관)은 15일 서울 세종대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새로 그리는 다음 10년, 한국의 외교·안보전략 지도 세미나’에서 “외교를 국내 정치의 하위 개념이 아닌, 국정의 양 축으로 세워 ‘외교의 부활’ 시대를 열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공개한 저서 《외교의 부활》에서는 “한국 외교가 지나치게 대북 외교, 한반도 평화 외교에 편향돼 결과적으로 중국 접근적 행태를 보여왔다”며 “명분론과 실리론의 분열적 논쟁에 빠져 미·중 사이에서 내부적으로 지리멸렬하다 보면 우리 주권과 생존권이 강대국의 선택에 이끌려 갈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진보·보수 정권을 망라한 전직 외교수장들은 한목소리로 원칙 있는 대중 외교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기조연설에 나선 윤병세 전 외교부 장관(박근혜 정부)은 “지난 4년여간 한·미 간 신뢰 약화와 다양한 갈등, 중국의 한국 무시와 강압적 외교, 수차례의 정상 간 합의에도 불구하고 남북 관계가 답보한 것이 현실”이라며 “중국은 과거 우호적인 한·중 관계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던 얘기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윤영관 전 외교통상부 장관(노무현 정부)은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중국 고위층 인사들이 외교 관계를 무시하며 수시로 결례를 범해도 우리는 명확한 입장 표명이나 항의를 하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며 “싱가포르와 호주의 사례에 주목해 상호주의와 호혜성의 원칙을 고수해야 한다”고 말했다.
책 집필에 참여한 전문가들은 한목소리로 한·미 동맹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윤영관 전 장관은 “미국은 주변 4강 중 유일하게 한국에 영토적 야심을 갖고 있지 않은 국가”라며 “한국의 국가 이익을 최대로 반영하기 위해 대미 외교를 지금보다 훨씬 더 강화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윤병세 전 장관은 “현재의 동북아시아 역학관계 속에서 남북이 국제 관계를 견인하기는 어렵지만 거꾸로는 가능하다”며 “호주가 동맹과 자강의 좋은 사례”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차기 정부가 외교의 중요성을 깨달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송민순 전 외교부 장관은 “다른 나라와 달리 한국은 분단국가로서 현상 유지와 발전은 물론 현상 변경에까지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경제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외교”라며 “미·중 관계가 심상치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기 때문에 외교 관계에서 능동적으로 대처할 방안을 도출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송영찬 기자 0ful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