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를 대표하는 대문호 표도르 도스토옙스키(1821~1881) 탄생 200주년(11월 11일)을 맞아 이를 기념하는 책 출간과 행사가 이어지고 있다. 그의 소설은 일제 강점기인 20세기 초부터 한국에 소개돼 지금까지도 한국 독자들에게 가장 인기있는 고전으로 꼽힌다.
2000년 도스토옙스키 전집(전 25권)을 최초로 발행한 열린책들은 작가의 4대 장편소설인 《죄와 벌》 《백치》 《악령》 《카라마조프 씨네 형제들》을 재교열해 새로운 장정의 기념판 세트를 두 종류 내놨다. ‘도스토옙스키 탄생 200주년 기념판’(전 8권)은 주목받는 신예 화가 김윤섭이 그린 현대적인 표지와 고급스러운 천 장정을 썼다. 인터넷 서점 알라딘과 협업해 낸 ‘도스토옙스키 컬렉션’(전 11권)은 《가난한 사람》을 추가한 보급판이다.
새 전집은 이 출판사가 1986년 창사 이후 고수해온 전통적인 러시아어 표기를 포기하고, 국립국어원이 제정한 표준 표기에 따라 모든 인명과 지명을 수정했다. ‘라스꼴리니꼬프’를 ‘라스콜니코프’로, ‘뻬쩨르부르그’를 ‘페테르부르크’로 바꾸는 식이다. 원서 및 유명한 외국어판과 대조해 사소한 오류까지 모두 바로잡았고, 읽기 편하게 줄 간격을 넓혔다. 여성을 낮추는 듯한 단어와 어법도 고쳤다. 《죄와 벌》에서 라스콜니코프와 소냐가 서로 존대를 하는 식이다.
한국노어노문학회장을 지내고, 러시아 소설을 다수 번역한 석영중 고려대 교수의 기념 도서 두 권도 열린책들에서 나왔다. 《도스토옙스키 깊이 읽기》는 저자의 20년간의 도스토옙스키 연구 성과를 모았다. 이 책에서 석 교수는 ‘종교’와 ‘과학’이라는 코드로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을 파고든다. 《도스토옙스키의 명장면 200》은 도스토옙스키 작품에서 핵심적인 장면 또는 어록을 모아 해설한 책이다.
프랑스 만화가 바스티앙 루키아가 그래픽노블(그림 소설)로 작업한 《죄와 벌》도 열린책들의 예술전문 자회사 미메시스를 통해 출간됐다. 루키아는 1000쪽에 이르는 원전을 170여 쪽으로 압축했다. 이 소설이 그래픽노블로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문학동네는 세계문학전집 통권 205~207권째로 도스토옙스키의 《백치 1·2》와 《백야》를 출간할 계획이다. 이 출판사가 도스토옙스키 소설을 펴낸 것은 2018년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과 2020년 《죄와 벌》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다.
《백야》에는 표제작인 ‘백야’ 외에 ‘약한 마음’ ‘정직한 도둑’ ‘보보크’ ‘온순한 여인’ 등 다른 곳에서 찾아보기 힘든 도스토옙스키 중·단편을 한 권의 책에 담았다.
기념 전시와 강연도 열린다. 경기 파주에 있는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에서는 책과 예술을 잇는 시리즈 전시 ‘BOOK+IMAGE 10: 도스토옙스키, 영혼의 탐험가’를 다음달 19일까지 선보인다. 열린책들이 그간 펴낸 도스토옙스키 전집, 관련 도서, 표지 원화를 중심으로 도스토옙스키의 생애와 작품 세계를 살펴보도록 구성했다.
교보문고와 대산문화재단은 박종소 서울대 노어노문학과 교수를 초청해 교보인문학석강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읽기: 질병의 시대를 향한 예언’을 마련했다.
오는 17일 오후 3시에 온라인으로 생중계된다. 사전 신청자들에게 행사 당일 생중계 주소를 안내한다. 신청 방법은 대산문화재단과 교보문고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강연 영상은 추후 대산문화재단 유튜브 채널에도 공개할 예정이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