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오전 10시께 서울 반포동 신세계백화점 강남점 2층 명품관. 백화점 개장 30분 전인데도 70여 명이 뱀이 똬리를 튼 모양으로 긴 줄을 이뤘다. 샤넬 ‘오픈런’(백화점 문이 열리자마자 쇼핑하기 위해 달려가는 것)에 나선 사람들이다. 선착순으로 번호표를 나눠줬다. 기자는 61번을 배정받았고, 오후 1시께 매장에 ‘입성’할 수 있었다. 직원에게 인기 제품인 ‘클래식 플랩백 미디엄’을 살 수 있는지 물었다. “오늘은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보이백 코코핸들 등 다른 인기 제품은 재고가 일부 있었지만 비인기 색상뿐이었다.
명품 열기가 식을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사람이 명품을 고르는 게 아니라 명품이 주인을 고른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백화점에서 발길을 돌린 수요는 상품을 사서 되파는 리셀 시장으로 몰리고 있다. 리셀 시장에서 인기 명품에 수백만~수천만원의 프리미엄(웃돈)이 붙는 이유다.
VIP 고객에만 따로 구매할 기회 준다
오픈런 열기가 가장 뜨거운 명품 브랜드로는 롤렉스와 샤넬이 꼽힌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리셀 시장에서 롤렉스 제품에는 대부분 프리미엄이 붙었다. 공식 매장에서 1700만원대에 판매되고 있는 서브마리너 데이트 콤비 모델은 리셀가가 2300만~2700만원에 형성돼 있다. 3년 전 매장가 약 1500만원, 리셀가 1200만원에 거래되던 제품이다. 이른바 ‘헐크’로 불리는 서브마리너 그린 모델은 단종 이후 프리미엄이 치솟고 있다. 2017년 리셀가 900만원대에 판매됐는데, 현재 2000만원대 중후반에 매물이 나와 있다.이렇게 프리미엄이 붙는 이유는 롤렉스의 독특한 영업 방식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롤렉스는 일정 금액 이상을 구매한 VIP 소비자에게 우선적으로 인기 제품을 구매할 ‘기회’를 주는 것으로 알려졌다. 리셀 시장에서 약 3000만원의 프리미엄이 붙은 데이토나 모델을 예로 들어보자. 리셀업계는 롤렉스가 2억~3억원짜리 시계를 구매한 고객에게 이 제품을 판매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인기 제품을 사려면 그만큼 많은 돈을 써야 하다 보니 자연스레 리셀 시장에서는 프리미엄이 붙는다. 예컨대 2억원을 쓰고 4000만원짜리 시계를 사느니, 리셀 시장에서 프리미엄을 주고 7000만원에 구입하는 게 낫다고 보는 것이다.
명품도 명품 나름…비인기 제품, 가격 방어 안돼
샤넬에 프리미엄이 붙은 이유는 롤렉스와 조금 다르다. 공격적인 가격 인상 전략 때문이라는 게 업계 분석이다. 이 회사는 매년 두 차례 정도 제품 가격을 3~5%가량 올려왔지만, 올 들어 인상 횟수가 네 번으로 늘었고 인상폭도 10%대를 웃돌며 커졌다. 작년 초 백화점 매장에서 632만원에 판매된 클래식 플랩백 스몰은 약 66% 가격이 올라 1052만원이 됐다. 2000년대 후반에는 200만원대에 구매할 수 있던 제품이다.공식 가격 인상은 프리미엄 형성으로 이어졌다. 기존에 샤넬백을 구매한 사람이 인상 이후 프리미엄을 붙여 판매하는 식이다. 샤넬은 지난 3일에도 물가 상승 등을 이유로 가격을 올렸다. 가격 인상 전에는 리셀 시장에서 샤넬 백은 100만원가량의 프리미엄이 붙었다. 프리미엄이 붙는 기본적인 이유는 수요가 공급을 압도하기 때문이다. 샤넬은 해외에서도 원하는 제품을 사려면 예약을 걸어놓고 기다려야 할 정도로 수요가 넘친다. 샤넬은 지난달부터 국내에서 인기 핸드백에 대한 1인당 구매 수량을 1년에 한 점으로 제한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명품 리셀 시장에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서울 청담동의 한 명품 리셀숍 대표는 “명품이라고 해서 모두 프리미엄이 붙는 것은 아니다”며 “오히려 리셀 가격이 떨어지는 제품이 많아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명품은 부동산과 비슷해 거품이 빠질 땐 인기가 덜한 제품부터 가격이 하락할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박상용/배정철 기자 yourpenc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