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를 이어가던 케빈 김씨(51)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한국 최초 무선인터넷 서비스 개발, 무선인터넷 업체 '와이더댄' 공동창업, 나스닥 상장 등을 거쳐 2011년께 몸 담았던 스타트업 이야기를 할 때였다.
당시 케빈 김은 다른 사람보다 일찍 인터넷 기반 무료 메시지 서비스, 대화방 플랫폼 등을 기획했다. 와이더댄에서 번 돈을 밑천으로 3년 간 그는 스타트업에 집중했다. 상용화까지 가는 길은 험했다. 자금이 떨어지고 외부 투자금을 받지 못했다. 결국 그는 서비스를 출시하지 못했고 프로젝트를 중단해야했다.
최근 실리콘밸리에서 인터뷰한 케빈 김은 뜻하지 않게 다양한 인생경험을 한 사람이다. SK텔레콤에선 그룹 회장실에 초대 받아 칭찬을 들을 정도로 잘 나갔다. 원년멤버로 참여한 와이더댄은 스타트업이라면 누구나 꿈에 그리는 '나스닥 상장'을 이뤄냈다. 당시 한국 언론에도 와이더댄의 나스닥 상장은 대서특필됐다.
시련은 그의 의지와 무관하게 찾아왔다. 와이더댄이 갑자기 외부에 팔렸고, 경제위기가 오면서 회사에서 나와 스타트업을 세웠다. 자금 부족으로 서비스를 출시하지 못한 그는 삼성전자 미국 법인을 거쳐 지금은 다시 교육 관련 창업을 준비하고 있다.
그는 스타트업을 하며 힘들었던 시기에 대해 "시련이었지만 실패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계획대로 스타트업을 키우지 못했던 경험에서 '사람'의 중요성을 깨달았고 함께할 사람을 찾기 위해 실리콘밸리로 왔다. 실제 그는 '맏형' 소리를 들으며 실리콘밸리의 다양한 스터디 모임에 나와 후배들과의 교류를 즐긴다.
50대에 접어들어 '지키는 것'이 중요한 시기에 창업에 나선 이유가 뭘까. 그는 "지키려면 도전해야한다"고 말했다. "과거에도 사업을 접은 게 아니라 보류한 것"이라는 그의 말이 변명 같이 들리지 않았다.
SK그룹 회장에게 받은 칭찬은 삶의 원동력
▶첫 직장이 SK텔레콤이라고요."저는 한양대 전자공학을 전공했습니다. 교수가 되는 게 꿈이었기 때문에 유학 자금이 필요했죠. SK텔레콤에 공채1기로 입사하게됐습니다. 2년 간 열심히 모으자고 생각했습니다."
▶목표대로 2년 만에 퇴사하셨나요.
"아니요. 민영화 직후였기 때문에 새로운 인프라 구축 및 서비스 고도화 관련 일이 많았어요. 신입이었지만 일정 규모의 프로젝트를 맡게 됐습니다. 회사에서 중요한 일을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스텝부서 동료들과 교류하면서 회사에 대해서도 잘 알게됐죠. 그리고 회사 최초의 인터넷 기반 사내교육 시스템도 타 부서 동료들과 함께 개발했어요. 재미와 보람을 함께 느꼈습니다."
▶SKT에서 이룬 가장 큰 성과는 무엇입니까.
"인터넷 붐이 일고 있던 1998년이었어요. 회사 내부적으론 '경쟁에서 이기려면 무선인터넷을 적극 도입해야한다'는 분위기가 강했던 것 같습니다. 무선인터넷 TF에 속하게 됐습니다. 사내 인트라넷 구축 경험이 있다는 이유로 뽑힌 것 같습니다."
▶무선인터넷 TF가 가장 먼저 어떤 걸 시도했나요.
"사람들이 노트북이나 PDA로 무선인터넷망에 연결해 인터넷 검색을 할 수 있도록 해보자는 얘기가 나왔죠. 그래서 PC를 무선인터넷망에 연결해주는 접속프로그램 '접속(jubsok)'과 이를 중계해주는 웹 프록시 서버를 개발했습니다."
▶한국 최초의 무선인터넷 서비스네요.
"그렇게 볼 수 있습니다. 시장이 초기단계였습니다. 당시 대법원장님 사무실에 가서 직접 프로그램을 설치해드린 기억도 있습니다."
▶서비스는 인기를 끌었나요.
"무선데이터망 속도가 9.8kbps(킬로바이트퍼세컨) 밖에 안됐어요. 그래서 이미지압축을 통해 전송량을 줄여주는 알고리즘을 광운대 연구팀과 함께 개발했죠. 3배 정도 빠른 속도를 확보해 통신사의 데이터망 구축 경쟁에서 SKT가 우위를 갖게 됐어요. 거의 모든 언론에 나왔고요. 사장실에선 5000억원짜리 일을 해냈다고 칭찬을 했습니다. SK그룹 회장실에 초대돼 '그대들이 보배'라는 칭찬까지 들었죠."
▶유학은 미뤘겠네요.
"네. 당시 굉장히 뿌듯했고 시장에서 제가 한 걸 인정해주니까요. 다음엔 더 잘 하고 싶다는 생각 밖에 없었어요. 또 '주니어매니지먼트포럼'이라고 미래의 경영자를 키우는 프로그램에도 참여해서 회사 미래에 대해서도 많이 배우던 때였습니다."
▶이후 더 큰 프로젝트를 맡게됐다고요.
"네. 그때까지는 무선인터넷에 접속만 했는데 무선 인터넷 서비스 프로젝트를 시작했어요. 표준단체인 3GPP에서 추진하던 WAP(Wireless Application Protocol)이란 무선인터넷 기술을 상용화하는 프로젝트였죠."
▶순탄하게 진행됐나요.
"아니요. 세계적으로 무선 인터넷 서비스를 상용화한 케이스가 거의 없었어요. 관련 솔루션 업체들이 최소 몇 백만불의 솔루션 가격을 제시했죠. 회사에서 배정받은 예산이 많지 않았습니다. 저와 팀 선후배들은 '우리가 직접 개발해보자'고 생각했어요."
▶혼자 힘으론 못했을텐데요.
"적은 예산으로 무선 인터넷 서비스 관리 시스템을 함께 개발할 IT 업체를 찾아야했죠. 가장 적절한 업체에 가서 '비용은 많이 지원해주지 못하지만, 무선인터넷이라는 앞으로 크게 성장할 시장에서의 경험을 함께할 기회를 가져보지 않겠냐'고 제안했어요. 결국 그 업체와 함께 WAP 기반의 새로운 무선인터넷 서비스 플랫폼을 구축할 수 있었습니다."
▶이 플랫폼으로 무엇을 했나요.
"모바일에 특화된 벨소리, 배경화면, 게임, 영화, 증권 같은 서비스뿐만 아니라 인터넷 검색 서비스도 가능하게 됐습니다. SK텔레콤은 당시 'n. TOP'이라는 유무선 서비스를 출시하게 됩니다. 아마 통신사가 유무선 인터넷 서비스를 제공한 것은 세계 최초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글로벌 시장 가고 싶어 벤처 공동창업…나스닥 상장 주역
▶SKT에서 성공가도를 달렸는데, 변화가 있었다고요."새로운 서비스를 스스로 개발해서 출시하다 보니, 마음 속에 글로벌로 한 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어요. 당시 서진우 상무(현 SK그룹 부회장)님이 "무선인터넷을 갖고 해외로 가보자", "20년 후엔 소프트웨어 업계의 삼성전자가 돼보자"고 하셨습니다. 해외 솔루션업체들을 볼 때마다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SK텔레콤을 그만두고 스타트업 '와이더댄'의 창업 멤버 중 한명으로 들어가게됐습니다. 당시가 2000년 제가 31살때입니다."
▶와이더댄의 초창기 사업은 어땠나요.
"국내 프로젝트를 주로 하다가 2년차 때 부턴 무선인터넷 해외사업에 집중했습니다. 벨소리, 배경화면, 게임 등 무선 인터넷 솔루션 사업을 하는 협력사들과 함께 협업했고요. 첫 고객은 이스라엘의 '오렌지'였어요. 첫 고객과 성공적으로 사업을 개발해보니 자신감도 생겼습니다. 그리고 대만의 APBW 같은 통신사도 고객으로 확보했죠. 열심히하다보니 노키아벤처스, 일본 소프트뱅크 등으로부터 투자도 유치할 수 있었습니다."
▶와이더댄은 주로 어떤 서비스를 제공했나요.
"초기엔 한국의 검증된 솔루션을 가져가서 해외에 소개하고 판매했죠. 이후 한국에서 '컬러링'이 떴을 때 이걸 해외 시장에 판매할 자체 솔루션을 확보하고 싶었는데, 미국이나 유럽은 GSM 방식이라 한국의 CMDA와는 차이가 있었죠. 열심히 GSM에 대해 공부를 하고 에릭슨, 지멘스, 알카텔 같은 GSM 네트워크 제조사들과 협력해 세계 최초의 GSM 기반의 '링백톤'(한국의 컬러링) 솔루션을 확보했습니다."
▶링백톤(한국의 컬러링) 때문에 와이더댄이 일어선거네요.
"링백톤 사업은 와이더댄을 글로벌 시장에서 모바일 음악 서비스 주요 플레이어로 고객사들과 경쟁사들에게 각인시키는 계기가 됐죠. 여기에 만족하지 않았어요. 모바일 음악 서비스 리더가 되기 위해 모바일 음악에 대한 주요 음반사의 기대와 우려 그리고 애로사항을 해결할 솔루션을 찾게됐죠."
▶음반사의 요구를 반영해 어떤 서비스를 개발했죠.
"당시 애플이 아이튠즈(iTunes) 서비스를 하면서 음반제작사들에 공격적인 요구를 했어요. 업계는 아이튠즈의 대안을 찾았고 그들의 요구사항을 중심으로 저는 'Full Track Music Service Platform'을 기획하게 됐어요. 사용자가 단말기에서 음악 전곡을 다운로드 받을 수 있고, 스트리밍으로도 들을 수 있는 서비스였죠. 통신사업자는 다양한 음악 상품을 구성할 수 있고, 음반사는 음원 매출을 바로 정산받을 수 있게했습니다."
▶나스닥 상장의 공이 컸겠네요.
"마침 시장의 니즈와 맞물려 한국에서는 '멜론'이라는 국내 최초의 음악 전곡 스트리밍 서비스에 저희가 솔루션 파트너가 됐습니다. 미국에서는 최대 사업자인 버라이존의 음악 서비스 플랫폼으로 채택됐어요. 세계적인 리서치 회사인 'Frost & Sullivan'에서 선정한 2006년 차세대 음악 서비스 플랫폼으로 선정되기도 했죠. 그리고 국내 시장에서의 안정적인 서비스와 더불어 이러한 해외 사업에서의 성과와 글로벌 상품의 지속적인 개발을 통해 2005년 12월에 미국 나스닥에 상장하게 됐습니다. 저 뿐만 아니라 구성원들이 함께 노력한 결과였습니다."
와이더댄 매각 후 스타트업 창업…투자유치에 실패하며 사업 보류
▶상장 이후엔 계속 잘 나갔겠네요."성장을 꽤하던 시기에 저도 미국 팀으로 합류도 했으니, 기대도 컸죠. 회사가 글로벌 사업자들과의 서비스 협력도 강화하고, 저도 새로운 음악 서비스 전략도 짜고, 신규 상품도 고민하던 와중에 예기치 않은 사정으로 회사가 미국의 리얼 네트웍스 라는 회사에 인수 합병되게 됐어요."
▶리얼네트웍스에선 어떤 업무를 하셨나요.
"링백톤 뮤직 상품이랑 관련 파트너십을 계속 챙겼죠. 유럽 시장 공략도 했고요. 그러다가 2008년 경제위기가 오고 회사가 몸집줄이기에 들어가더라고요. 2009년 2월에 결국 나왔습니다."
▶와이더댄에서 나온 심경이 어떠셨어요.
"한국으로 돌아갈까했는데, '여기서 돌아갈 순 없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미국에 있기로했습니다. 창업을 결심했습니다."
▶어떤 사업을 하고 싶으셨어요.
"스마트폰 시장이 보이더라고요. 믿으실 지 모르겠지만 인터넷을 통한 '무료 문자 메시지' 사업을 생각했어요. 2009년에 왓츠앱이 연 1달러만 받고 메시지를 공짜로 보내는 사업을 했는데, 저는 완전한 무료를 고민했죠.
▶지금의 카카오톡과 비슷한 것이네요.
"네.예전 무선 인터넷 서비스 경험으로 볼 때, 새로운 서비스의 시작은 커뮤니케이션으로 봤죠. 그래서 창업하고 무료 인터넷 서비스를 준비하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사람 구하는 게 어렵더라고요. 안드로이드 초기라서 엔지니어들이 거의 없었고요. 그렇게 1년이란 시간을 보냈고 2010년 3월 카카오톡이 나왔습니다."
▶실망이 컸겠습니다. 그 다음엔 어떤 것을 기획하셨어요.
"그룹 메시징을 고민했어요. 메시징을 고민하다 보면, 개인 메시징, 그룹 메시징 그리고 오픈 메시징으로 서비스 진화가 일어날 것 같았어요. 스마트폰에서 그룹을 만들고 메시지를 주고 받고 공유하는 그룹 메시징 앱을 생각했어요."
▶네이버 밴드 같은 서비스네요.
"네. 지나고 나서 생각해보니 비슷하더라고요."
▶출시하는데 성공하셨나요.
"개발까지 완료하니 2011년 하반기가 됐습니다. 이제 출시를 해야하는데, 3년 간 제 돈을 다 써버린겁니다. 투자 유치를 해야하는데 미국에서 사업도 처음이다보니 쉽지 않더라고요. 3개월 동안 투자자를 구하려고 했는데, 잘 안됐습니다."
▶선택의 갈림길에 섰겠네요.
"그 때 '사업 보류'를 선언했죠."
▶사업을 해보니 무엇이 가장 힘들던가요.
"사람 찾는 게 제일 어려웠죠. 대기업에서 갖춰진 팀에서 일하거나, 자금력으로 채용할 수 있던 시절에 비해서, 혼자 사업을 하다 보니, 팀 구성에 어려움이 제일 컸죠. 특히, 그 당시 시애틀에는 스타트업 분위기도 거의 없어서, 기존 대기업에 다니는 분들이 거의 전부였거든요."
삼성전자 몸 담으며 앱 서비스 향상에 기여
▶막막하셨을텐데, 어떻게 이겨내셨어요."삼성 미주법인에 아시는 분이 계셨어요. 제가 사업을 할 때도 도와달라는 말씀을 몇 번 하셨는데 제가 거절했었습니다. 사업을 접고 나서 실리콘밸리에 있는 삼성에 들어가게됐습니다. 기회가 되면 실리콘밸리에서 다시 창업해보겠다는 마음도 있었고요."
▶삼성전자 실리콘밸리 법인에선 무슨 일을 하셨어요.
"외부 업체들과의 스마트폰 앱(App) 파트너십 업무를 했습니다. 스마트폰에 들어갈 앱 개발사를 발굴하고 새로운 단말기에서의 협력도 협의하고 마케팅도 같이 하는 일을 했죠. '공동개발 파트너십'도 생각했어요."
▶기존 앱 파트너십과 뭐가 다른거죠.
"일회성 관계로 끝나는 게 아니라 장기적으로 '윈-윈' 하는거에요. 스마트폰 유저들에게 차별화된 가치를 줄 수 있는 앱을 공동으로 개발했어요. 삼성은 앱 개발사에 마케팅과 시장을 제공한 것이고, 앱 개발사는 삼성전자 스마트폰 고객들에게 가치를 준 것이죠. 협력모델 유지를 위해 앱 개발사의 발생 매출 중 일부는 저희와 공유했습니다."
▶성공 사례가 많이 나왔나요.
"2015년부터 익스피디아, CNN, '더 웨더 채널' 등과 협업했어요. 그 결과 중에 하나로 원래 삼성 스마트폰엔 '아큐웨더'가 들어가고 있었는데 2017년 더 웨더 채널로 바뀌었습니다."
50대 나이에도 교육 스타트업 창업 도전
▶창업을 다시 준비하게 된 계기는요."코로나 19 이후에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요즘 세상에 일어나고 있는 기술 트렌드, 위험과 기회, 제가 50이 될 때까지 해온 일들에 대해서 생각하게 됐어요. 그러다 보니 제가 가진 경험들이 이젠 오래된 것들이 너무 많다라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자신에 대한 성찰을 시작했습니다. 일단은 '나를 다시 채우자', '새 기술을 담자'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카네기멜론대 대학원 소프트매니지먼트 석사과정을 시작했고요. '공부 마치고 뭐하지'를 고민해보니 스타트업이 떠오르더라고요. '그래 해보자'란 생각을 다시 했습니다."
▶10년 전과 달리 준비가 잘 되고 있나요.
"작년말엔 AI 관련된 것을 해보려고 했는데요. 디자이너, 기획자는 구했는데 엔지니어를 못구하겠더라고요. 요즘 AI 엔지니어 구하는 게 어렵습니다. 그래서 다시 고민을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생각하신게 교육쪽인거죠.
"네. AI기술이 아니더라도 서비스로 고객의 마음을 얻을 수 있는 걸 고민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뭘 잘 할 수 있을까' 고민했더니 '교육'이 떠올랐어요. 삼성에서 꾸준하게 했고 마지막에 담당했던 것도 '러닝(learning)' 이었습니다.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고민했던 것도 아이들 교육이고요. '양질의 교육'은 UN이 발표한 17개의 지속가능발전목표에도 들어가있을 정도로 중요하죠."
▶교육은 국가별로 특성이 다 달라 글로벌 사업이 어렵지 않을까요.
"아니요. 교육시장은 로컬이 아닙니다. 보편가능한 교육서비스가 가능해요. 저희 아이들을 보면서 '공부 습관 들이기'가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학생들이 스스로 하루의 시간을 컨트롤 하면서 친구들과 함께 공부를 하고 싶게 하는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어요."
▶기존 교육 서비스와는 뭐가 다른거죠.
"철저하게 '학생' 입장에서 고민하고 있어요. '공부를 시킨다'는 부모나 콘텐츠 제공자 마인드가 아니라 공부를 해야하는 학생들이 스스로 하게끔 하는 '데일리 러닝' 솔루션이죠. 이미 기본컨셉은 나왔고요. 프리베타 서비스를 출시하고 시장 반응을 볼겁니다. 목표는 내년 2~3월 출시하는 것이고요."
▶50대에 계속 새로운 도전을 이어가는 원동력이 있다면요.
"전 새로 만드는 것에 관심이 많았어요. 1년 간 고생해서 만든 상품이 회사나 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을 때 두렵지만 소신을 갖고 하면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게됐어요. 두려움이 없어지고 더 열심히하게됐죠. 나이는 무관한 것같습니다."
실패에 대해 격려하고 새로운 시장에 도전해야
▶기술이 시시각각 변하는 데 적응이 어렵지 않나요."전 운이 좋은 사람입니다. 20대 때 인터넷, 30대 땐 무선인터넷, 40대엔 스마트폰 시대를 겪었죠. 50대인 지금은 AI 시대입니다. 저는 지금 AI 시대의 초창기에 있기 때문에 '기회'라고 생각해요. 뭔가 기회가 있다면 한 번 더 도전해보고 싶어요. 특히, 실리콘밸리는 새로운 기술이 넘치는 곳이라, 매일 배우기도 하고 결과를 확인하기도 하니까 기술의 변화에는 자연스럽게 적응하는 것 같습니다."
▶보통 50대는 '지키는 시기'인데요.
"50대의 고민은 은퇴입니다. 무리하지 말고 가진 것을 지키라고하죠. 저는 지키기위해선 적극적으로 나서야한다고 봅니다. 50대는 어찌보면 새로운 시작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새로운 걸 할 수 있을 때, 버릴 수 없는 기회가 오면 행동을 하는 게 50대 이후를 지키는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다만 젊을 때보다는 리스크 관리가 필요해요. 저는 그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스스로 리스크를 고려하면서 사업을 추진하고 있어요. 그리고 잘 준비해서 좋은 서비스를 세상에 소개하고 싶어요."
▶요즘 관심을 갖고 있는 기술은 뭔가요.
"AI와 빅데이터는 기본이고요. '제3의 인터넷' 메타버스에 관심이 많아요. 사람들이 모이면 새로운 수요, 공급체계가 작동하고 AI도 더 활성화될 것 같아요. 그래서 메타(舊 페이스북)가 메타버스로 가려는 이유가 분명해보입니다."
▶빅테크들이 우주에도 관심이 많습니다.
"메타버스로 가는 것과 비슷해요. 기존의 선진국 경제는 성장의 한계에 도달하고 있는데, 우주에서의 경제적 가치를 새로 창출하면 새로운 시장이 열립니다. 예를 들어, 우주 밖으로의 여행은 새로운 시장이기도 하고, 기존 국가간 여행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여줄 수도 있습니다."
▶얼마전 한국도 누리호를 발사했죠.
"저는 우주 로켓 분야는 잘 모르지만, 정말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이번 발사는 한국 우주 계획 중 첫 단계라던데, '미완의 성공' 이런 평가가 있는 것 같아 개인적으로는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누리호를 준비하신 분들은 '아무도 해보지 않은 것'을 하면서 얼마나 많은 고민과큰 고생이 있었을까요. 격려하고 칭찬해줘야합니다. 우리가 선진국에서나 하던 우주 로켓을 발사했듯이, 제 생각에는 우리도 ‘지금 보고 있는 곳’보다는 다른 관점으로 세상을 보면 생각보다 새로운 기회가 많을 것 같아요. 나이에 관계없이 새로운 시장에서, 전 세계에서 도전하는 우리가 많았으면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생각도 조금은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좀 더 글로벌한 마인드와 역량도 필요할 거구요. 특히 ‘빨리빨리’ 완료하는 것도 좋지만 애자일 프로젝트처럼 자주하면서 개선하는 노력이 앞으로 더 중요할 것 같아요. 없는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보다 기존의 것을 개선하다 보면 이노베이션이 일어나고 크리에이션도 생기지 않을까요.”
실리콘밸리=황정수 특파원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