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기업의 임원 A씨는 최근 잠을 자다가 갑자기 심장이 쿵쾅거리는 느낌을 받았다. 심장박동이 갑자기 빨라지고, 가슴을 조이는 듯한 압박감에 ‘협심증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A씨는 곧바로 응급실로 향했지만 뜻밖에 ‘위산과다증’을 진단받았다.
A씨처럼 심장에 통증을 느껴서 병원을 찾았다가 위·식도 질환을 진단받는 경우가 있다. 서구화된 식습관과 운동 부족으로 생기는 위산과다는 역류성 식도염까지 동반해 속쓰림과 이물감을 유발한다. 때로는 가슴 중앙에 통증을 느끼기도 한다. 큰 병이 아니라고 방치했다간 십이지장·위 궤양으로 악화되기 십상이다. 위산과다증은 왜 생기는지, 증상은 어떤지, 어떻게 치료하고 관리해야 하는지 살펴봤다.
가슴에 작열감·이물감 느껴져
위액 속에 들어 있는 ‘위산’은 평소엔 음식물이 잘 소화되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몸 안에 들어오는 세균을 산 성분을 통해 제거하는 살균 효과도 낸다. 그야말로 우리 몸에 ‘필수 성분’이다. 하지만 위산이 필요한 양보다 지나치게 많이 분비되면 이상증상이 나타난다. 위액의 산도(유리 염산도)는 위액 100mL에 들어 있는 산을 중화하는 데 필요한 가성소다 양(mL)으로 측정한다. 유리 염산도가 20~40이면 정상이지만, 40을 넘어가면 위산과다증으로 진단한다.
위산과다증은 보통 역류성 식도염과 함께 나타난다. 위와 식도가 만나는 부분에 있는 하부식도괄약근은 음식을 먹을 땐 열리고 먹지 않을 땐 닫혀 있다. 그런데 괄약근이 약해져서 완전히 닫히지 않으면 위 안에 있어야 할 음식물이 식도로 거꾸로 흘러들어간다. 이 과정에서 위산도 음식물과 함께 식도로 역류한다. 강한 산 성분이 식도의 점막을 자극하면서 염증을 일으키는 것이 바로 역류성 식도염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역류성 식도염 환자는 2016년 416만5789명에서 지난해 465만302명으로 늘어나는 등 매년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이 병에 걸리면 식사 후에 가슴 통증이 느껴진다. 가슴 위쪽과 목 아래쪽이 쓰라리고, 타는 듯한 작열감이 나타난다. 목 부분에 무언가 걸린 듯한 이물감이 계속해서 느껴지고, 속이 자주 메스껍다. 심하면 이유 없이 목소리가 쉬고, 천식에 걸린 것처럼 마른기침을 끊임없이 하기도 한다.
식사 후 통증 생기고 수일 지속돼
협심증처럼 가슴이 두근거리고 조이는 느낌이 들 때도 있다. 역류성 식도염이 발병하면 흉골(가슴뼈) 부분에 통증이 생기는데, 그곳이 심장과 인접해 있기 때문이다. 환자들이 위·식도 질환과 심장질환을 종종 혼동하는 이유다.협심증과 역류성 식도염은 ‘언제 통증이 나타나는지’로 구분할 수 있다. 역류성 식도염은 보통 식사 후에 통증이 나타난다. 이에 비해 협심증은 달리기나 등산 등 움직임이 큰 활동을 할 때 발생한다. 격한 운동을 하면 평소보다 많은 산소가 필요한데, 혈관이 좁아지면서 제대로 산소 공급이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다.
통증의 지속시간도 다르다. 협심증으로 인한 통증은 대개 30분 이상을 넘기지 않는다. 조성우 일산백병원 순환기내과 교수는 “‘불안정형 협심증’은 20~30분 증상이 지속되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 협심증으로 인한 통증은 5분 이내 사라진다”고 말했다. 반면 역류성 식도염으로 인한 통증은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수시간 또는 수일까지 지속되기도 한다.
꾹 참았다간 소화기궤양으로 악화
위산이 과다 분비되는 원인은 다양하다. 먼저 호르몬에 이상이 생긴 경우다. 위의 밑 부분에서 분비되는 호르몬 ‘가스트린’이 정상보다 많이 분비되면 위산 분비량도 증가한다. 식습관이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기름지고 짠 음식이 위산 분비를 유도한다. 역류성 식도염이 ‘선진국 병’으로 불리는 이유다. 커피, 녹차, 초콜릿 등에 들어 있는 카페인도 위산 분비를 촉진한다.위산과다는 생명을 위협하는 심각한 병은 아니지만, 방치했다간 소화기 궤양으로 악화할 수 있다. 십이지장 궤양이 대표적이다. 십이지장은 위와 소장을 이어주는 말발굽 모양의 장기다. 위장에 도착한 음식물이 위산에 의해 잘게 부서지고 십이지장을 거쳐 소장으로 가는데, 위산 분비가 많아지면 음식물에 남아 있는 위산이 십이지장에 궤양을 만든다. 십이지장 궤양이 생기면 장 출혈이 나타나 변 색깔이 흑색으로 변하고, 빈혈이 동반된다. 심해지면 장이 서로 달라붙어 막히는 ‘장폐색’으로 이어져 자주 체하고 구토를 한다.
위산과다가 위궤양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 강산성의 위산은 위장 점막을 손상시킨다. 이렇게 되면 위의 방어 체계가 무너지면서 궤양이 생기기 쉬운 환경이 조성된다. 위궤양이 생기면 역류성 식도염과 비슷하게 배 위쪽에 타는 듯한 통증이 느껴질 뿐만 아니라 명치 끝에 통증이 나타난다. 이 같은 통증은 주로 식후 30분 뒤에 느껴진다.
위 건강 회복하려면 ‘비타민U’ 필수
속쓰림, 가슴통증 등 위산과다로 인한 증상을 완화하려면 약물을 사용해볼 수 있다. 알루미늄, 마그네슘, 칼슘 등으로 이뤄진 제산제는 위산을 중화시켜 통증을 완화해준다. 제산제는 일반적으로 식후와 취침 전 하루 3~4번 먹으면 된다. 한 번 약을 먹으면 다음 약을 먹기까지 4시간 정도 간격을 두는 것이 좋다. 위산 분비 자체를 억제하기 위해선 히스타민-2 수용체 길항제를 복용하면 된다. 위산 분비를 촉진하는 히스타민이 위점막의 수용체에 달라붙는 것을 억제하는 방식이다.식습관 개선도 필수다. 위산과다증·역류성 식도염을 앓고 있다면 위산이 많이 나오게 하는 귤, 오렌지 등 산도가 높은 과일을 피하는 게 좋다. 가슴 쓰림을 악화시키는 매운 음식, 탄산음료도 멀리해야 한다. 손상된 위벽을 보호하려면 ‘비타민U’ 성분이 들어 있는 음식이 좋다. 양배추, 브로콜리, 케일에 있는 비타민U는 단백질과 결합해 위점막을 보호하고 속쓰림을 완화해준다. 포만감이 큰 양배추는 과식을 예방해주는 효과도 있다.
역류성 식도염을 앓고 있다면 머리 부분을 15~20㎝ 높여서 자는 게 좋다. 음식물이 역류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꽉 죄는 옷이나 벨트도 복압을 높여 통증을 악화할 수 있다. 같은 이유로 복압을 증가시키는 윗몸 일으키기, 무거운 것 들기 등의 운동도 피하는 게 좋다. 식사 직후 3시간 동안은 눕지 않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김범진 중앙대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자극적인 인스턴트 음식을 먹고 바로 눕는 생활습관은 위식도 역류질환을 유발하는 주요 원인”이라고 말했다.
이선아 기자 sun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