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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에세이] '먼 나라 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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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먼 나라 소녀에게 마음이 쓰일까요?”

2012년 빌앤드멀린다게이츠재단으로부터 한국의 국제보건협력 사업에 대한 연구를 제안받았다. 오랜 시간 해외 원조를 받아왔던 대한민국이 이제 공여국으로서 어떻게 하면 조금 더 의미 있는 원조를 할 수 있을지를 연구하며 개발도상국 교육 사업도 하고 있었기에, 너무나 반가운 제안이었다.

2013년 본격적으로 연구를 시작하면서 소명을 가진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 예방의학과 등 여러 분야의 의사 선생님이 이대목동병원을 찾아 의료봉사를 했다. 또 신촌의 국제개발협력학, 여성학 등 여러 선생님은 국제개발협력 사업으로 개도국에서 일하고 있거나 이에 대한 소명을 가진 이들과 의기투합해 연구팀을 꾸려 연구를 시작했다.

2015년까지 유엔의 새천년개발목표보고서가 가장 큰 보건 문제라고 밝힌 사안은 유아 사망률과 모성 건강이었다. 21세기에도 개도국에서는 산모가 아기를 낳다가 죽고, 설사와 이질같이 쉽게 치료가 가능한 병으로 수많은 생명이 첫돌이 되기 전에 죽어가고 있다. 그런데 여러 모자 보건 사업을 살펴보니, 글로벌 보건 사업은 주로 ‘성인 여성’에게 집중돼 있었다. 공여국 지침에 따른 지원 대상이 18세 이상 성인이라 바로 옆에서 어린 소녀가 임신해도 도와주지 못하는 안타까운 상황이 빈번했다.

그래서 우리 연구팀은 ‘소녀 건강’을 주제를 잡고, 모자 보건 사업을 개선하기 위한 첫 단계로 수혜 대상 연령을 낮추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그러나 겨우 9~10세의 어린아이가 아기를 낳다가 사망하는 끔찍한 사례를 생각보다 많이 접하면서, 우리 목표는 단순히 ‘건강’만의 문제가 아니라 소녀가 소녀답게, 어린이답게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이 이야기는 올해 135주년을 맞이한 이화가 소녀와 여성의 교육을 위해 세워진 것과 134주년을 맞은 ‘보구녀관(普救女館)’의 정신에 맞닿아 있다. 조선 말기, 여성은 ‘남녀칠세부동석’이라는 유교 관념 때문에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죽어갔다. 1886년 한국 최초의 여성 교육기관 ‘이화학당’을 세운 미국인 선교사 스크랜튼 부인은 이듬해 여의사를 미국에서 모셔와 이화의료원의 효시가 되는 보구녀관을 세워 이 땅의 여성을 널리 구했다. 먼 나라 소녀에 대한 연민이 없었다면, 과연 이화가 탄생해서 오늘날 여기까지 올 수 있었을까?

나는 오늘도 여전히 먼 나라 소녀에게 마음이 쓰인다. 이름조차 주어지지 않은 채 그저 누구의 딸, 아내, 엄마로만 여성이 존재하던 조선에,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나라에 와서 한국의 소녀와 여성의 교육, 건강을 위해 한평생 헌신했던 이들을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가까운 곳과 또 보지 못한 먼 나라 소녀를 위해 기도하고, 그들도 교육받고 건강할 권리를 갖고 행복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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