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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0만엔 들인 '제철소 비급' 박태준에게 넘겨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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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회장님, 롯데가 한국에 투자할 업종을 제안하겠습니다. 국가적으로 매우 중요한 분야입니다. 바로 제철 사업입니다.”

“제철이라카모 엄청난 자본하고 고도의 기술이 있어야 되는데….”

1966년 여름. 신격호 롯데 창업주는 고향 후배인 이후락 대통령 비서실장에게서 제철 사업을 맡아달라는 제안을 받았다. 내심 기다리던 제안이었다.

1961년 정권을 잡은 박정희 정부는 이듬해인 1962년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시작했다. 제철, 정유 등 국가 기간 산업을 육성하려던 정부는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 전후로 일본에서 사업을 하던 신 창업주와 재일동포 기업인들에게 투자를 제안했다. 신 창업주는 1964년 장기영 경제부총리로부터 방위 사업 제안을 먼저 받았으나 고사했다. ‘가족의 화목과 행복한 삶을 추구한다’는 기업가치에 반한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이후 1966년 초 정유 공장 사업자 공모에서는 ‘락희화학(GS칼텍스의 모태)’에 밀려 탈락한 상황이었다.

정부는 신 창업주에게 ‘제철 전문가’를 연결해줬다. 재일동포인 김철우 도쿄대 산업기술연구소 교수(전 포스코 기술연구소장)였다. 신 창업주는 김 교수의 연결로 일본 후지제철(현 일본제철)의 나가노 시게오 사장을 만나 포섭했다. 후지제철 기술자 22명과 도쿄대 연구진 12명 등 30명 이상의 태스크포스팀(TFT)을 구성했다. 신 창업주는 이 조사에만 당시 거금인 3000만엔을 투입할 정도로 열정을 보였다.

그러나 1년이 채 지나지 않은 1967년 봄. 정부로부터 황망한 통보가 날아왔다. 도쿄로 찾아온 박태준 당시 대한중석 사장(포스코 명예회장)이 “제철을 정부 주도로 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한동안 말문이 열리지 않아 멍하니 앉아 있었다’고 신 창업주는 회고록 《열정은 잠들지 않는다》에서 당시를 회상했다.

신 창업주는 8개월간 조사하고 연구해 만든 프로젝트 보고서를 아무 조건 없이 박태준 사장에게 넘겼다. “큰돈과 정성이 담긴 결과물이지만, 이렇게라도 조국의 제철소 건립에 도움이 된다면 만족하자”는 마음이었다.

노유정 기자 yjro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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