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27일 국무회의를 열고 2030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와 2050년 탄소중립 시나리오를 의결할 예정이다. 지난 18일 탄소중립위원회가 마련한 내용으로 2030년에는 연간 탄소배출량을 2018년 대비 40% 줄이고, 2050년엔 탄소 순배출량을 제로(0)로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한국도 글로벌 온실가스 감축 대열에 동참해야 하지만 제조업 비중이 높은 산업 구조를 봤을 때 속도가 지나치게 빠르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독일과 일본 등 제조업 강국은 일찍 산업 구조조정을 시작해 탄소중립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출혈이 상대적으로 적다. 중국과 인도 등 개발도상국은 탄소중립 계획 자체에 상대적으로 미온적이다. 제철과 석유화학 등 고탄소 업종의 비중이 여전히 큰 한국 산업에서 선진국과 동일한 ‘2050년 탄소중립’이라는 목표는 고통을 가중시킬 수밖에 없다.
주요 선진국보다 큰 순감축폭
한국은 독일, 일본과 마찬가지로 2050년 ‘탄소 순배출량 제로(넷제로)’를 선언했다. 하지만 중간 목표는 다르다. 독일은 1990년을 기준으로 2030년 55.0% 줄이는 것이 목표이며 일본은 2013년 대비 2030년 46.0% 줄인다는 계획이다. 탄소배출이 최정점을 찍은 시점이 국가마다 다르기 때문으로, 탄소배출 감축폭의 절대치만 놓고 보면 40.0%라는 한국의 목표가 낮아 보인다.하지만 기존 감축폭까지 감안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스타티스타에 따르면 2019년 독일의 연간 탄소배출량은 7억195만t으로 1990년 10억5234만t 대비 33.3% 줄어들었다. 2030년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추가 탄소 감축폭은 32.5%다. 일본 역시 탄소배출이 2013년 13억1470만t에서 2019년 11억666만t으로 15.8% 줄었다. 2019년 발표치 대비 35.8%의 탄소를 줄이면 2030년 목표를 달성하게 된다. 반면 한국은 40.0%의 탄소저감 목표를 앞으로 10년 안에 달성해야 한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독일과 일본은 구조적으로 석유화학 등의 산업 비중이 줄며 탄소감축이 자연스럽게 이뤄지고 있지만 한국은 증가세의 탄소배출을 반전시켜야 한다는 것이 가장 큰 어려움”이라며 “2019년 반도체 불황, 2020년 코로나19 유행 등으로 탄소배출이 소폭 줄긴 했지만 일시적인 효과일 뿐”이라고 우려했다.
개도국 대비로도 불이익
한국 제조업의 경쟁자로 등장하고 있는 신흥국들은 탄소배출 감축과 관련해 상대적으로 느슨한 목표치를 제시하고 있다. “경제 성장을 끝낸 선진국의 기준과 한창 개발이 진행 중인 개발도상국을 같은 선상에 둬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에 따른 것이다. 중국은 선진국보다 10년 늦은 2060년 넷제로를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내놨지만 2030년까지 탄소배출 감축폭은 제시하지 않았다. “2030년 이전에 연간 탄소배출량이 정점을 찍고 떨어지도록 하겠다”는 모호한 기준만 제시했을 뿐이다. 한국보다 더 많은 철강을 생산하는 인도는 탄소배출 감축 움직임 자체에 반대하고 있다.개도국은 선진국이 매년 100억달러씩 조성을 목표로 한 녹색기후기금의 지원을 받을 수도 있다. 기금 조성 규모는 이달 31일부터 열리는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에서 대폭 상향될 가능성이 높다. 한국도 문 대통령이 3억달러 공여를 약속한 가운데 부담이 늘어날 전망이다.
미국과 유럽은 탄소저감 기술에 앞서 있기에 향후 30년간의 전환기에 제조업 경쟁력을 회복할 가능성이 있다. 독일 함부르크에 본사를 둔 다국적 철강기업 아르셀로미탈이 스페인에 수소환원 기술을 일부 적용한 최신 제철소를 짓기로 한 것이 대표적이다. 신기술이 적용되는 만큼 생산비가 높지만 탄소세 부과 등을 통해 철강 수입 비용이 커지면서 가격 경쟁력을 갖게 됐다. 산업계 관계자는 “주요 선진국이 탄소감축을 환경 문제가 아닌 산업 전략 관점에서 다루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이재윤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한국은 산업이 주요 선진국처럼 특수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재편되지 않은 가운데 환경 관련 의무는 선진국과 동일하게 부과되고 있다”며 “일본만 해도 전성기 대비 철강 생산이 20% 줄어든 가운데 한국은 현재 기술 수준에서는 탄소저감 기술을 최대한 적용해 추가 감축 가능 폭이 크지 않은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노경목/김소현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