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대란이라고 밖에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서울의 경우 전세 물량이 거의 사라졌습니다. 1000가구 이상의 아파트 대단지에도 전세 매물은 1~2개 정도 있을 따름입니다. 대부분은 이미 반전세나 보증부월세로 돌아섰습니다. 대기하고 줄을 서서 전세 계약을 하는 실정입니다.
그나마 집을 보고 전세 계약을 했으면 다행입니다. 전세 매물이 나오자마자 집을 보지도 않고 계약금을 보내는 형편입니다. 입주 물량이 급격히 줄어들고 집주인의 거주요건을 강화하면서 신규 임대차 물량은 거의 없습니다. 규제에서 벗어나 있는 신규계약의 경우 집주인은 전세 가격을 최대한도로 높이거나 상승분 만큼을 월세로 돌리는 중입니다. 재산세와 종합부동산세가 너무 높아져 이를 보전하기 위해서입니다.
더 큰 문제는 전세대란이 서울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겁니다. 임대차법은 전국에 공평하게 적용되기 때문입니다. KB국민은행에 의하면 2021년 9월 현재 서울의 전세수급지수는 167.7인데 6개 광역시(176.0)는 오히려 더 높습니다. 임대차3법의 도입으로 인해 선한 집주인들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됐습니다. 충분히 시장의 자율기능에 맡겨도 되는 임대차시장을 규제하면서 문제가 발생한 겁니다.
전세가격 상승률은 현 정부 들어 안정적이었습니다. 임대차2법이 도입된 작년 7월까지(2017년 5월~2020년 7월) 전세가격 상승률은 전국이 0.96%, 서울은 7.18%에 그쳤습니다. 임대차법 도입 이후부터 상황은 달라집니다. 단 1년(2020년 8월~2021년 9월) 만에 전국은 15.08%, 서울은 19.09% 상승합니다.
임대차 3법이 도입될 때 이미 예견됐던 문제였습니다. 전세 매물이 사라질 것이라는 우려가 현실화된 것입니다. 규제는 거래 가능한 아파트를 줄이는데 이건 매매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전세 등 임대차 거래에 있어서도 거래 가능한 아파트가 줄어들게 됩니다. 선후가 잘못된 것입니다. 임대차3법을 도입할 때 먼저 등록제를 해서 임대차시장을 정확히 파악한 후 상한제와 계약갱신청구권제를 도입했어야 합니다.
국토교통부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시도별 주택임대차 정보 현황)에 의하면 당시 정부가 파악하고 있는 임대차시장은 28.3%에 불과했습니다. 70%가 넘는 임대주택에 대해서는 아예 정보 자체가 없습니다. 문재인 정부는 각종 임대사업자 정책과 세제개편을 추진하면서 기초적인 임대정보에 대한 자료도 없이 진행했던 것입니다. 어떻게 국민들의 삶에 가장 중요한 문제를 이렇게 처리하는지 화가 날 뿐입니다. 졸속 입법의 역습이 드디어 시작된 것입니다.
전세 대란은 당연히 매매시장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최근 매매가격이 가파르게 오르면서 전세가율이 많이 낮아졌습니다. KB국민은행에 의하면 2021년 9월 서울 아파트의 전세가율(매매가격 대비 전세가격 비율)은 54.9%로 떨어졌습니다. 문재인 정부 출범이후 비율적으로 가장 많이 전세가율이 떨어진 서울의 구는 노원구(-47.2%)와 성동구(-46.1%)입니다. 문재인정부가 출범할 당시(2017년 5월) 이 비율은 무려 73%였으니 거의 20%포인트가 하락한 것입니다. 그동안 매매가격은 많이 올랐으나 전세가격은 상대적으로 많이 오르지 않았기 때문에 벌어진 격차입니다. 이렇게 격차가 벌어지면 다시 좁히려는 움직임이 나타납니다. 전세 가격은 오르면서 매매가격은 상대적으로 적게 오르게 됩니다. 이런 변화를 겪으면서 시장은 안정을 찾아가는 것이지요.
문제는 방향이 아니라 속도입니다. 참여정부 때도 같은 기간 매매가격이 오르면서 전세가율이 떨어졌는데 62.0(2002년 2월)에서 47.7(2005년 6월)로 조정되었습니다. 특히나 금융위기가 닥치면서 전세가율은 38.2(2009년 1월) 수준으로 더욱 떨어져 전세를 끼고 집을 사는 것은 더욱 어려워졌습니다. 이후 오랫동안 집값이 하향 안정세를 보였습니다.
하지만 전세 가격이 오르는 속도가 지금과 같이 빠르고 폭이 크다면 그동안 벌어졌던 격차는 빠르게 좁혀질 겁니다. 다시 예전의 70%로 되는데 걸리는 시간은 시장의 자정작용에 의한 것보다 빠를 수 밖에 없습니다. 이로 인해 매매가격의 상승폭이 커지는 것 또한 빨라질 가능성이 큽니다. 실제로 현장에서는 이 금액으로 전세를 사느니 집을 사는 것이 좋겠다는 푸념이 심심치 않게 들립니다. 계약갱신청구권을 사용한 물량이 쏟아지는 내년 중반 이후가 더 큰 걱정입니다. 3기 신도시의 입주가 늦어진다면 줄어든 입주 물량과 함께 전세대란은 계속될 가능성이 큽니다.
국토교통부는 뒤늦게 임대차시장 안정 방안 마련에 나선다고 합니다. 임대차법으로 인한 전세시장 과열이 심각한 수준에 도달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의 일환으로 지난 14일 '임차가구의 주거안정성 제고방안 마련' 연구용역을 긴급 공고한 모양입니다. 이전에 전세대란이 왜 발생했는지에 대한 성찰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현재의 상황에서 다시 규제가 더해지면 정말 돌이킬 수 없는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규제로 인한 폐해를 막기 위해 다시 규제가 도입되는 상황이 반복된다면 임대차 거래가 가능한 아파트는 더욱 사라질 것입니다.
1989년 5월 노태우 정부는 전세난으로 인해 주택임대차기간을 1년에서 2년으로 늘리는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고 같은 해 12월30일 개정안이 통과됐습니다. 이후의 상황은 지금과 비슷합니다. 전세가격이 폭등하고 집을 구하지 못한 서민들은 임대료와 생활고를 견디지 못해 생을 마감하는 경우까지 있었다고 합니다. 국민 생활과 직결되는 법을 바꿀 때는 과거의 사례를 살펴보는 지혜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한경닷컴 The Moneyist> 심형석 우대빵연구소 소장·美IAU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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