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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트리스로 쌓고 옷으로 입고…오감으로 느끼는 한글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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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 한쪽에 놓인 키보드와 스크린 앞에 서면 친숙한 게임 화면이 나온다. 1980년대에 발표된 이후 지금까지 인기를 끄는 블록쌓기 게임 테트리스다. 규칙과 화면 구성 등은 ‘원조’와 동일하지만 게임을 하다 보면 몇몇 블록의 모양이 다르다는 사실을 알아채게 된다. 한글의 자음과 모음을 변형해 만든 블록이라서다. 한글을 낯선 도형과 도상의 형식으로 바꿔 관객들이 그 과학적 원리를 체감할 수 있도록 돕는 김가람의 설치작품 ‘가나다라마바사’다.

서울 진관동 사비나미술관에서 기획전 ‘한글, 공감각을 깨우다-눈, 코, 귀, 입, 몸으로 느끼는 우리말’이 열리고 있다. 13명의 작가가 만든 회화와 조각, 설치와 영상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 41점을 통해 한글의 과학적인 창제 원리를 예술 작품으로 보여주는 전시다. 이명옥 관장은 “한글은 청각인 발음과 시각인 문자의 상관관계를 고려해 만든 공감각적 문자”라며 “다양한 감각을 자극하는 작품들을 통해 한글의 문화적 가치와 의미를 재조명하는 전시”라고 소개했다.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눈에 띄는 작품은 노주환의 5m 높이 설치작품 ‘대대로’다. 노란색의 여러 글자를 서로 결합해 거대한 마천루와 같은 모양을 만든 작품이다. 행복과 사랑 등 좋은 뜻의 단어들을 단순히 무작위로 배치한 것 같지만, 작품 왼편의 첫 글자들을 이어 읽으면 헌법 1조 1항의 문구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가 되는 점이 재미있다.

김승영의 ‘하루’는 한글의 시각적 요소와 청각적 요소를 동시에 경험하게 하는 작품이다. 밤하늘 같은 검은 벽면 중앙에 윤동주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밀란 쿤데라의 《느림》 등 작가가 감명 깊게 읽은 책이 헤드폰과 함께 설치돼 있고, 그 주변 벽에는 희게 빛나는 글자들이 군데군데 적혀 있다. 작가가 책 속에서 발췌한 단어들이다. 맞은편에 놓인 종 같은 도구를 두드리면 나지막하게 이 단어들을 읽는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관객들은 목소리를 들으며 벽면의 단어를 하나씩 읽어 나가게 된다.

초현실주의 예술가 다발킴의 ‘돌기가 돋아나다-내리고’는 한복 위에 금속 오브제와 한글 자수를 배치해 금속의 촉감과 한글의 조형미를 대비시켰다. 팔 위에 뾰족한 가시가 돋은 듯한 독특한 모양새가 이채롭다. 김범수의 ‘시네마’는 하트 모양의 빛을 내는 66개의 라이트 박스를 이용해 만든 작품으로, 각각의 박스가 반복적으로 명멸하며 하트 속 ‘밤’ ‘서시’ 등 다양한 한글 단어를 드러낸다. 전시는 12월 23일까지.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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