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움직였으니까 한 대 맞자.”
8살 아들을 키우는 박모씨는 최근 아이가 놀이터에서 친구들과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놀이를 하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친구들이 드라마 속 장면처럼 움직인 사람에게 폭력을 휘두른 것이다. 박씨는 “청소년관람불가이기에 일부러 얘기도 꺼내지 않았는데 이미 아이들은 어디서 봤는지 내용을 다 알고 있더라”고 말했다.
넷플릭스의 한국 드라마 ‘오징어게임’이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자 미국과 영국 등에서 “자녀들의 오징어 게임 시청을 제한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국내 학부모들 사이에서도 “아이들이 잔인한 게임을 따라할 수 있다”며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13일 교육계에 따르면 맘카페 등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아이가 밖에서 ‘오징어 게임’을 배워 물어보는데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는 고민글이 넘쳐나고 있다. 영상의 내용이 대부분 잔인하고 선정적인데, 자녀들이 영상의 대사·행동을 따라하거나 영상을 시청하고 있어서다.
서울에서 초등학교 1학년 담임 교사를 하고 있는 김모씨는 “정서적인 문제가 우려되어 아이들에게 주의를 주고 있다”며 “학부모들에게도 가정에서 지도를 따로 부탁드린다고 전하고 있다”고 밝혔다.
부모들의 걱정은 전세계적이다. 외신 등에 따르면 미국 부모들로 구성된 미디어 감시단체인 부모 텔레비전·미디어 위원회(PTC)는 ‘오징어 게임’을 따라 한 콘텐츠가 다양한 소셜미디어에 올라오고 있다는 점을 부모들이 경계하고 조처를 하기를 바란다고 강조한 바 있다.
벨기에의 한 학교에서는 학부모들에게 아이들이 ‘오징어 게임’에서 등장하는 폭력적인 장면을 따라 하고 있다고 알렸다.
오징어 게임을 아이들이 보는 경로는 주로 틱톡, 유튜브 같은 영상 플랫폼이다. 특히 청소년들이 많이 쓰는 틱톡에는 ‘오징어 게임’의 조각 영상뿐만 아니라 특정 장면을 따라하는 청소년들의 영상들도 수없이 게시된 상황이다.
이에 틱톡 운영사 바이트댄스 관계자는 “‘제한 모드’를 제공해 이 기능을 활성화하는 사용자에게는 일부 연령대에 부적합한 콘텐츠가 노출되지 않도록 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이같은 서비스들은 가입하지 않고도 ‘오징어 게임’의 잔인한 영상을 볼 수 있어 한계로 지적되고 있다.
넷플릭스는 “필요한 조치는 하고 있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내놓고 있다. 넷플릭스 관계자는 “부모님들께 자녀가 ‘오징어 게임’을 비롯한 국내에서 방영되고 있는 청소년관람불가 콘텐츠를 시청하지 않도록 관심 가져주시기를 당부드리고 있다”고 전했다.
유홍식 중앙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오징어 게임’뿐만 아니라 유사한 문제가 계속 나오고 있지만 마땅히 제재할 방법이 없어 ‘불법이 상시화’되고 있다”며 “특히 국내사업자와 달리 해외사업자는 규제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이렇게 되면 부모나 교사와 같은 미성년자 보호자들의 몫으로 남게 되는데, 항상 감시할 수는 없기에 실효성은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다”며 “아이들의 폭력성을 줄이기 위해 인권교육을 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덧붙였다.
김남영 기자 ny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