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서울 강남 등 인기 지역에서는 “오늘의 호가가 내일의 신고가”라는 말이 유행이다. 호가는 말 그대로 안 팔려도 그만이라는 생각에 높게 부르는 가격이다. 하지만 요즘에는 이 호가대로 계약이 체결되고 있다. 매물 잠김이 워낙 심해 호가대로 주지 않으면 살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살려면 신고가에 잡아야”
11일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시스템에 따르면 아파트 거래가 드문 단지에서도 신고가 매매가 잇따르고 있다. 마포구 아현동 ‘공덕자이’(2015년 준공)가 대표적이다. 이 단지 전용면적 114.99㎡는 지난달 19억5000만원에 거래되면서 신고가를 기록했다. 공덕자이는 전체 1164가구 규모인데, 올 들어 매매는 이 건이 처음이다. 이전 거래는 2019년 7월 전용 114.99㎡가 당시 신고가인 15억원에 손바뀜한 것이다. 마포구 P공인 대표는 “지금 주택 시장은 한 번 팔면 다시 사기 힘든 구조”라며 “매물 자체가 귀하기 때문에 거래되면 최고가인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설명했다.서초구 서초동 ‘래미안서초에스티지S’(2018년 준공·593가구) 상황도 비슷하다. 지난달 전용 84㎡가 신고가인 27억5000만원에 매매됐는데, 올 들어 이 단지의 다섯 번째 거래다. 직전 거래는 같은 주택형이 지난 5월 25억4000만원에 팔린 것이다.
이외에도 거래절벽 속에 신고가가 나오는 곳은 많다. 강남구 압구정동 ‘한양8차’(전용 210㎡)는 지난달 72억원에 신고가를 갈아치웠다. 직전 최고가인 7월 66억원보다 6억원이 뛰었다. 송파구 잠실동 ‘잠실엘스’도 최근 전용 84㎡가 25억8000만원에 매매됐다. 전달(24억3000만원)보다 1억5000만원 오른 가격이다.
정부가 대출 제한, 세금 중과 등 각종 규제를 쏟아내면서 매물 잠김이 심화돼 가격 상승을 부추기는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 국민은행에 따르면 서울의 3.3㎡당 평균 아파트값은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2017년 5월 2326만원에서 지난달 4652만원으로 2배가 뛰었다. 지역별로는 성동구의 3.3㎡당 아파트값이 2306만원에서 5180만원으로 올라 상승률(124.7%)이 가장 높았다. 이어 노원구(124.0%), 도봉구(118.0%), 동대문구(115.0%), 동작구(114.2%), 광진구(108.5%), 마포구(106.6%) 등의 순이었다.
“기존 주택 시장 거래 활성화 필요”
정부는 작년 ‘7·10 부동산 대책’을 내놓으면서 다주택자에 대한 양도세 중과 방안을 발표했다. 주택을 보유한 지 1년도 안 돼 거래하면 양도세를 기존 40%에서 70%로 높였다. 2주택자는 기존 세율에 20%포인트, 3주택자는 30%포인트를 더해 양도세 최고세율을 75%까지 높였다.지난 5월 말 시행 유예기간이 끝난 뒤 다주택자들은 매물을 내놓는 대신 ‘증여’와 ‘버티기’를 선택했다. 반포동 S공인 대표는 “집값이 가파르게 오르고 있기 때문에 유예 기간에도 매도를 선택한 다주택자가 많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1주택자들도 비슷한 상황이다. 세금 부담 등으로 기존 집을 팔고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기가 힘들다. 실수요자들도 대출 제한에 걸려 매매를 포기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최근 이사를 포기한 직장인 김모씨는 “이사를 하려면 추가자금이 필요한데 대출 자체가 안되는 상황”이라며 “기존 주택 시장에서는 매물을 구하기도 너무 힘들다”고 하소연했다.
전문가들은 거래 활성화 방법으로 우선 양도세 등 세금 부담을 덜어줘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3기 신도시 등 외곽 공급만으로는 당장 시장의 거래 활성화를 유도하기 힘들다”며 “한시적으로라도 양도세 부담을 덜어줘 매물이 나오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상미/하헌형 기자 sara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