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는 전세계에서 가장 넓은 영토를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온라인 쇼핑 침투율은 주요국 꼴찌 수준이다. 이제 개화기에 접어든 러시아 전자상거래 시장이 주목되는 배경이다. 마침 주요 기업들이 미국에 상장돼 있어 투자도 어렵지 않다.
18일 컨설팅업체 데이터인사이트에 따르면 러시아 국민 1인당 연간 온라인 소비액은 작년 19달러를 기록했다. 비교 대상으로 조사한 주요 10개국 가운데 꼴찌다. 인도(32달러·9위)보다 낮고 8위인 중국(683달러)의 36분의 1 수준이다.
이러한 통계는 러시아 온라인 쇼핑의 성장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러시아는 국민의 78%가 인터넷을 사용하고 있지만 e커머스 침투율은 8%에 불과하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도 1만1585달러(2019년 기준)로 낮은 편이 아니다.
성장 속도는 이미 주요국 가운데 가장 높다. 작년 러시아 e커머스 시장 규모는 370억달러(약 43조원)로 전년 대비 58% 확대됐다. 2위를 기록한 인도(성장률 29%)를 두 배 웃돌았다. 3위인 한국(19%)과 독일(16%)도 크게 앞질렀다.
러시아 e커머스 시장은 선진국과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확고한 1위 플레이어가 있는 한국이나 미국과 달리, 다수의 사업자가 무한경쟁을 펼치고 있다. 미국의 아마존, 중국의 알리바바, 한국의 쿠팡 같은 기업이 아직 없다는 얘기다.
데이터인사이트에 따르면 러시아 1위 전자상거래 업체는 와일드베리스다. 작년 판매액이 4132억루블(약 6조7000억원)이다. 2위는 1970억루블을 기록한 오존, 3~4위는 차례대로 알리익스프레스와 얀덱스마켓이다.
이 가운데 오존과 얀덱스가 미국 나스닥에 상장돼 있다. 와일드베리스는 비상장, 알리익스프레스는 중국 알리바바 계열 회사다. 이들 업체는 러시아 전체 e커머스 시장에서 총 점유율이 30~40%로 높지 않다.
오존은 작년 11월 나스닥에 상장했다. 16일(현지시간) 종가가 52.58달러로 공모가 대비 75% 상승했다. 올해 상승률도 21%에 달한다. 러시아 주요 전자상거래 업체로서 잠재력이 외국인에게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는 분석이다.
러시아 이커머스 시장의 화두는 방대한 영토에서 물류와 배송 네트워크 구축하는 것이다. 이 부분에서 오존은 선두를 달리고 있다. 오존은 극동지역인 하바롭스크와 시베리아 핵심 도시인 노보시비르스크에 물류센터를 가지고 있다.
8개 도시에 물류센터를 갖추면서 인구 밀집 지역을 대부분 커버할 수 있게 됐다. 총알배송 서비스를 통하면 2만개의 상품을 주문 90분 내에 받아 볼 수 있다. 오프라인 픽업센터도 2분기말 기준 1만5000개로 1분기 말 대비 3000개가 늘었다.
오존의 2분기 총거래액(GMV)은 889억5700만 루블(1조4000억원)을 기록했다. 작년 동기 대비 94% 증가한 수치다. 최근에는 은행(오네이 뱅크)을 인수해 금융사업자 자격을 취득했다. 자사 쇼핑몰의 결제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서다.
얀덱스는 4위 업체이지만 성장률이 가장 빠르다. 기존 캐시카우 사업을 바탕으로 e커머스에 막대한 투자금을 넣고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구글’로 불리는 얀덱스는 한국의 네이버와 같은 위치를 점하고 있다. 러시아 검색엔진 점유율 1위(63.3%)이면서 차량호출, 음식배달 등 국내 플랫폼 기업들이 하는 사업을 독점하다시피 하고 있다.
얀덱스는 올해 e커머스에 총 7600억원의 투자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 때문에 향후 1~2위 업체들을 제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2분기 얀덱스 e커머스의 GMV는 267억루블(4300억원)로 작년 동기 대비 145% 급증했다.
얀덱스의 투자포인트는 미래 성장동력이 독보적으로 많다는 것이다. 차량호출 서비스는 점유율 70%로 1위다. 음식배달과 식료품 배달도 하고 있으며,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자율주행, 클라우드 등의 신사업도 펼치고 있다.
최근 우버가 러시아 시장에서 철수하면서 얀덱스 주가는 급등세다. 나스닥에서 주당 80달러를 넘어서며 최근 사상 최고가를 경신했다. 반독점 규제로 전세계 빅테크주가 하락세인데 얀덱스는 최근 한 달 18% 가까이 올랐다.
박의명 기자 uimy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