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이 된 1989년 겨울, 동독과 서독을 가로막고 있던 장벽이 무너졌다. 이듬해 10월 3일, 서독이 동독을 흡수 통일했다. 전공이 독문학인지라 앞날에 햇볕이 든 거라는 덕담을 적잖이 들었다. 착한 바보들이었다. 현재 독문과가 존속된 대학은 몇 안 되고 그것들도 폐지될 형편이다. 독일 유학 인문사회계열 박사들은 대부분 지나치게 유식한 실업자들이다. 통일독일은 통일 후유증으로 7, 8년 전만 해도 답이 안 나온다는 견해가 대세였다. 인간 따위가 미래를 예측한다는 건 그만큼 어려운 일이다.
1991년 12월 25일 고르바초프가 대통령을 사임하며 핵무기 통제권을 러시아연방공화국 대통령 옐친에게 인계하고 소련이 사라졌을 때 나는 통일독일의 한 도시에 있었다. ‘공산주의가 성탄절에 멸망하다니. 예수님은 장난꾸러기.’ 뭐 그런 생각을 맥주 마시며 했다. 역사적인 사건들은 내게 중요치 않았다. 전위시인이었던 나는, 아직 소설가가 되기 전인 데다가, 그 어떤 현실도 내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는 초현실보다 쓸데없는 현실로 취급하는 그런 부류였다.
대학 졸업학기 비평론 강사님이 책 하나를 권해줬다.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역사의 종말》이었다. ‘자유민주주의’가 다른 모든 적대 이데올로기들에 승리함으로써 역사의 체제적 변화는 사실상 긍정적으로 종료됐다는 요점. 세계가 놀란 통찰이라고들 했지만, 1989년 내셔널 인터레스트에 기고한 논문을 보강해 단행본으로 출간된 게 1992년이니, 논문으로는 경량급 예언 정도는 되고 단행본으로는 꽤 가치 있는 분석을 한 거쯤이라고 나는 여겼다. 관심이 없으니, 야박하고 시니컬했던 거다.
그리고 2001년 9월 11일 밤, 나는 TV 앞에서 어항 속 금붕어처럼 입을 벌리고 있었다. 1996년 출간된 새뮤얼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은 ‘9·11테러’ 이후 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됐다. 헌팅턴은 2008년 81세로 타계했으니 인생의 끝 무렵이 최전성기였던 셈이다. 《역사의 종말》은 낙관적으로 경솔했고, 이데올로기의 전쟁이 끝난 그 자리를 서구 문명과 이슬람 문명의 충돌이 대신할 거라는 《문명의 충돌》이 정론이 됐다. 나는 또 그런가 보다 했다. 솔직히 그러거나 말거나였다. 나는 여전히 경도되고 편협했다.
그리고 세월이 많이 흘렀다. 얼마 전 탈레반이 미군이 철수한 카불을 점령했다. 바다가 없는 아프가니스탄이니 보트피플이 있을 리 없고, 대신 탈출비행기 날개에 매달렸다가 하늘에서 떨어지는 사람을 보았다. 감히 나는 《역사의 종말》도 《문명의 충돌》도 틀렸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역사는 끝난 게 아니라 엉망진창 혼돈이 됐고, 문명 간의 충돌이 아니라 문명과 반문명 간의 충돌이 진실인 거라고 나는 믿는다.
이 반문명의 섹트에는 중화문명의 가면을 쓴 중공전체주의도 포함된다. 공산주의는 무신론이 아니라 기독교의 사교(邪敎)다. 여성을 가축 취급하고 강간하고 죽이는 탈레반을 옹호하는 반미주의자는 야만의 노예다. 저들은 민족주의자나 무슬림이 아니라 압제자이자 학살자이고 크메르루즈이며 지옥에서 온 짐승들일 뿐이다. 인간, 특히 현대인이 맞다면, 미국이 싫다고 탈레반이 괜찮다는 그런 ‘사악한 인지부조화’가 얼마나 천벌 받을 짓인지는 알아야 한다.
(시효가 지난) 제국주의와 (언제나 있는) 국제정세를 구별해야 하고, 문명파괴와 문화상대주의를 뒤섞지 말아야 한다. 세계인으로서 보편주의자가 돼야 한다. 자유와 인권을 짓밟는 세력에 대한 내재적 접근은 사기다. 내가 이렇게 변하게 된 까닭은, 아프가니스탄이라는 청동거울에 비치는 이 나라 이 사회의 풍경 때문이다.
사람에게는 죽고 싶어 하는 욕망인 ‘타나토스’가 있다고 프로이트는 말했다. 인간에게는 역사를 죽이고 싶어 하는 욕망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종교를 내세운 군대가 가장 강하다고 한다. 그런데 ‘자유주의’는 종교가 아니며 종교의 탈을 쓸 수 있는 재주도 없다. 그래서 지키기가 어려운 것이다. 혁명가나 성직자 행세를 하는 짐승들에게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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