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번 칼럼에서는 코인이 화폐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를 통해 화폐의 기능과 본질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그렇다면 화폐가 시작되는 곳, 즉 화폐 발행을 결정하는 곳은 어디일까요. 바로 중앙은행입니다. 한국의 중앙은행은 한국은행이죠. 중앙은행은 기준금리를 결정하기도 합니다. 지난 8월26일 기준금리를 0.5%에서 0.75%로 0.25% 인상하기로 결정한 곳이 바로 한국은행입니다.
'현대 경제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새뮤얼슨(Paul Samuelson) 교수는 자신의 경제학원론 교과서에 인류 3대 발명품 중 하나로 화폐(중앙은행제도)를 선택했죠. 미국의 유명한 배우이자 컬럼니스트인 윌 로저스(Will Rogers)는 인류의 3대 발명품으로 불, 바퀴, 중앙은행을 꼽았습니다. 윌 로저스는 중앙은행의 존재가 불과 바퀴의 가치만큼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중앙은행은 화폐 발행 및 통화량 조절을 위해 운영되는 은행으로 일반적으로 한 국가는 하나의 중앙은행을 가지고 자국의 화폐를 관리합니다. 세계 최초의 중앙은행은 스웨덴 왕립 재정은행(Riksens Standers Bank)으로 1668년에 설립되었습니다. 스웨덴 왕립재정은행은 1656년 요한 팔름스트루흐가 설립한 스톡홀름 은행의 업무를 이어받았고 스톡홀름 은행은 유럽에서 최초로 지폐를 발행했죠. 흥미로운 사실은 유럽에서 최초로 전자화폐 발행을 선언한 중앙은행 또한 스웨덴의 중앙은행이라는 점입니다.
1866년 스웨덴 국립은행(Sveriges Riksbank)으로 명칭을 변경한 뒤, 1897년에는 중앙은행으로의 역할을 맡게 됩니다. 스웨덴 국립은행의 본점은 스톡홀름에 있으며 유럽 중앙은행 체제의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스웨덴 국립은행은 창립 300주년을 맞아 알프레드 노벨을 기념하는 경제학상을 신설해 노벨의 사망일인 12월 10일 수여하는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우리나라의 중앙은행인 한국은행의 본점은 중구 남대문로 39에 위치해 있고 전국 각 지역에 16개의 지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중앙은행은 화폐 발행, 통화량 조절, 금융 안정의 세 가지 주요 업무를 가지고 있습니다.
먼저 화폐 발행 업무부터 살펴보죠. 모든 국가는 주권을 가진다는 의미에는 국가가 돈을 찍어내는 권한인 통화주권도 포함됩니다. 국가는 화폐를 발행하고 그 총량을 관리하는 권한을 가진 기관을 필요로 합니다. 형편에 따라 이를 상업은행에 위임하기도 하지만 대체로 하나의 중앙은행을 두고 여기에 그 권한을 위임하죠.
상업은행에 화폐 발행을 위임하는 경우는 매우 희귀한 경우입니다. 20세기 초의 미국 또는 현재의 홍콩이나 마카오 등이 여기 해당하죠. 홍콩의 HSBC, 중국은행(Bank Of China), 스탠다드차타드 은행(Standard Chartered Bank) 등 3개 상업은행은 지폐를 발행하는 특이한 케이스입니다. 그 이유는 정부의 무분별한 발권으로 인한 통화량 팽창을 막기 위한 것입니다. 홍콩은 전통적으로 상업은행의 규모가 컸기 때문에 발권 권한을 상업은행에 위탁한 것이죠.
물론 이 경우도 중앙은행의 역할을 하는 기관은 존재했습니다. 이들 시중은행이 홍콩달러를 발행하려면, 발행할 액수를 1 US달러당 7.8 홍콩달러의 고정 비율입니다. 홍콩 금융관리국(HKMA, 홍콩 통화청)에 미리 지불해야 하기 때문에 시중은행들은 발권력은 가지나 마음대로 돈을 찍어낼 수는 없습니다. 홍콩에서는 홍콩 금융관리국이 실질적인 중앙은행의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홍콩 금융관리국이 화폐 총량을 관리하고 은행 규모를 감안해 발행 금액을 조정하기 때문이죠.
중앙은행은 화폐 발행 외에도 통화량 조절 업무를 맡습니다. 이를 위해 기준금리 결정과 지급준비율을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집니다. 일반적으로 중앙은행의 책무는 법으로 규정되며, 법 조항에는 중앙은행의 최우선 목표가 '물가 관리' 또는 '인플레이션 방지'라고 명시됩니다. 경제 상황에 따라 적절히 통화량을 조절하는 것이 중앙은행의 주요 책무 중 하나라는 게 분명히 적시된 셈입니다.
그다음으로 중앙은행이 갖는 핵심 업무가 바로 금융 안정입니다. 금융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일반적으로 금융 시스템에 대한 대규모의 자금공급을 가능하게 하는 권한이 필요합니다. 중앙은행은 독점적인 발권력을 바탕으로 유동성을 즉각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자연스럽게 금융 안정 기능을 수행했습니다. 금융 안정의 업무는 중앙은행의 영국 중앙은행(영란은행)의 초기 역할과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탄생 배경과 일치하죠.
이러한 중앙은행의 금융안정 기능을 최후의 대부자 역할이라고 부릅니다. 금융위기가 오거나 거시경제적인 상황이 악화돼 시장에 존재하는 금융기관들이 위기에 빠졌을 때, 중앙은행은 발권력을 바탕으로 국가 내 모든 금융기관의 유동성과 건전성을 지원하는 화폐 금융 정책의 집행자 역할을 하는 겁니다.
<한경닷컴 The Moneyist> 홍기훈 CFA한국협회 금융지성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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