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도 예산이 사상 처음으로 600조원을 넘어선다. 예산 규모가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2017년 407조원에서 5년 만에 604조원으로 급증한다. 국가채무도 1000조원을 돌파해 국가채무비율이 50%를 넘어설 전망이다. 한국 경제가 심각한 재정 중독에 빠졌다.
연이은 팽창 예산 편성으로 국가채무 증가 속도가 지나치게 가파르다. 5년간 400조원 이상 증가하고 있다. 국가채무비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보다 낮지만 미국, 일본, 유럽연합(EU)과 달리 기축통화국이 아닌 현실을 감안해야 한다. 국제통화기금(IMF)은 국가채무비율이 2026년 69.7%까지 상승할 것으로 예측했다. 한국 같은 중규모 개방경제는 대외 경제 충격에 취약하다. 금융·외환시장 안정이 중요한 까닭이다. 국민 세금으로 상환해야 하는 적자성 채무가 빠르게 늘고 있다. 국가채무 중 적자성 채무 비중이 2017년 56.8%에서 2020년 60.6%로 증가했다. 내년도 적자국채 규모는 77조원대로 비중은 65%로 커진다.
공공기관의 방만 경영이 도를 넘어섰다. 자산 2조원 이상인 40개 주요 공공기관의 부채가 연말 550조원에 달한다. 이와 대조적으로 당기순이익은 올해 7000억원에 불과하다. 경쟁제한과 진입규제, 낙하산 인사로 공공기관의 효율성과 책임성은 바닥 수준으로 추락했다. 외화내빈 경영과 도덕적 해이가 심각하다. 부채 억제를 위한 고강도 대책이 시급하다.
지속적인 공무원 증원으로 올해 인건비가 처음으로 40조원을 돌파한다. 현 정부 출범 이후 작년 말까지 10만4000명 증원됐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증원 규모보다 월등히 크다.
지난해 공공기관을 포함한 공공부문의 전체 인건비는 90조원에 육박한다. 그러나 정부의 경제 성적표는 초라하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 국가경쟁력 평가에서 정부효율성 34위, 조세정책 25위, 제도여건 30위를 기록했다. 전년보다 순위가 하락했다. 그리스, 아르헨티나 등 재정위기에 빠진 나라는 한결같이 과도한 공무원 증원과 공공부문 비대화 현상을 경험했다. 청년층이 대거 공무원 시험으로 몰리는 사회는 결코 정상사회라 할 수 없다.
고용보험, 건강보험 등 4대 사회보험의 재정 상황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고용보험료가 2019년에 이어 또다시 오를 예정이다. 임기 중 두 번 인상은 전례가 없다. 최저임금 과속 인상으로 고용절벽이 심화되면서 재정 투입이 크게 늘어났다. 실업급여가 최저임금보다 많은 비정상적 운용이 상황을 악화시켰다. 직접 관련성이 적은 청년 고용 장려금을 편입해 적자를 더욱 키웠다.
방만한 재정운용의 또 다른 사례는 매년 눈덩이처럼 커지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이다. 올해 53조2000억원에서 내년 64조3000억원으로 약 11조원 증가한다. 내국세의 20.79%를 의무적으로 배정하게 돼 있어 신축적 재정 운용에 커다란 장애요인이 되고 있다. 학령인구는 2017~2022년 12.1% 감소한다. 향후 5년간 고등학교에 진학하는 중학생이 18만 명 줄어든다. 교육청의 공무원 수가 38% 늘어났다. 지방 교육청에 쌓아둔 기금이 2조9000억원에 달한다.
가파르게 늘어나는 재정을 통제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가 본연의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 지출 증가가 세수 증가를 압도하면서 ‘악어의 입’이 점점 벌어지는 양상이다. 예산 낭비를 줄이기 위한 예비타당성(예타) 제도가 유명무실해졌다. 예타 면제 사업이 지속적으로 늘어났다. 공공자원 사용의 검증 장치가 실종됐다. 예타가 고도의 정치가 됐다. 재정준칙의 실효성도 의문시된다. 국가채무와 재정적자 비율을 국내총생산(GDP)의 60%와 3% 이내로 관리하겠다는 정부 방침이 발표됐지만 각종 예외규정 등으로 효과가 반감될 소지가 크다.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은 “경제가 작동하면 세금을 매겨라. 계속 작동하면 규제하라. 그러다 작동하지 않으면 보조금을 줘라”는 명언을 남겼다. 올해 태어날 신생아가 고교를 졸업할 때 1인당 1억원 넘는 나랏빚을 떠안게 된다고 한다. 나랏빚을 통제하지 못하면 빚의 노예가 된다. 재정 건전성은 양보할 수 없는 원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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