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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1위 日 반도체의 몰락…"삼성, 반면교사 삼아야" [박신영의 일렉트로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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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반도체 시장은 지난 한 주 미국의 낸드플래시 업체 웨스턴디지털이 일본 키옥시아와 합병을 논의하고 있다는 소식에 뜨겁게 달아올랐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지난 25일 웨스턴디지털이 키옥시아을 200억 달러 수준에 인수하는 협상을 진행 중이라고 보도했다. 보도 이후 웨스턴디지털은 이날 장중 최대 15% 급등하기도 했다. 27일 종가는 발표 직전인 24일 60.76달러에 비해 2.48달러 오른 63.24달러를 기록했다.

시장 투자자들은 웨스턴디지털의 키옥시아 인수로 인해 생길 시장의 지각변동에 특히 주목했다. 각각 2, 3위인 키옥시아와 웨스턴디지털은 합병 시 합계 점유율 32.6%로 삼성전자(33.4%)를 바짝 추격하게 된다.

하지만 반도체 업계 오래 몸담았던 이들은 웨스턴디지털의 키옥시아 인수 추진을 두고 "일본 반도체의 마지막 자존심이 무너졌다"는 반응을 내놓고 있다. 일본 반도체산업은 1980년대 전세계 부동의 1위였지만 현재는 매출 기준 세계 10대 반도체 기업 중 일본 기업은 9위의 키옥시아가 유일하다. 키옥시아가 웨스턴디지털에 넘어가면 10대 반도체 기업 가운데 일본 업체는 단 한곳도 남지 않게 된다.
1980년대에서 끝난 일본 반도체 전성기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의 김규판 선임연구위원은 지난 7월 낸 '일본의 반도체전략 특징과 시사점'이라는 보고서에서 "일본정부는 1990년대 이후 일본기업의 반도체 세계시장 점유율 하락에 대해 ‘일본의 조락(凋落)’이라고 표현했다"고 전했다. 그는 "일본의 반도체 세계시장 점유율은 1988년 50.3%(미국 36.8%)를 정점으로 1990년대 들어서부터 쇠퇴하기 시작해 2019년에는 10.0%"까지 추락했다"고 설명했다.



실제 히타치·도시바·NEC·후지쯔·미쓰비시 등 일본 반도체 업체들은 1980년대 세계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80%를 차지했다. 비메모리 반도체까지 포함한 전체 반도체 시장에서는 절반 이상의 점유율을 기록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반도체 1위 국가는 미국이었다. 인텔이 전세계 처음으로 1971년 D램을 발명하면서 시장 주도권은 미국의 손 안에 있었다. 일본이 반도체 세계 1위에 올라설 수 있게 한 일등 공신은 대형 컴퓨터였다. 일본 기업들이 서버용 대형 컴퓨터가 요구하는 고성능 D램을 생산하면서 세계 시장을 재패했다.
삼성전자 불가능할 것 같았던 메모리 1위 달성
하지만 일본 기업들의 전성기도 오래가지 못했다. 1990년대 들어 개인용 컴퓨터(PC)가 보급되면서 D램의 주된 소비처가 대형 컴퓨터에서 PC로 급격히 이동하기 시작했다. PC 업체들은 저비용과 소형화 두가지를 반도체 업체들에 요구했다. 기업이 아닌 개인 소비자가 구입해야하기 때문에 가격을 떨어뜨리는 게 무엇보다 중요했다. 가정 혹은 사무실에서 사용해야하기 때문에 컴퓨터의 크기도 이전보다 대폭 줄여야 했다.

삼성전자가 이 틈을 파고들었다. D램을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대량생산함으로써 일본 기업들을 순식간에 제쳤다. 일본 히타치 제작소 연구원 출신인 유노가미 다카시는 자신이 쓴 '일본반도체 패전'이라는 책에서 "일본 기업은 ‘과잉기술·과잉품질’이란 병에 걸려 세계 시장의 빠른 흐름에 대처하지 못하고 D램 생산시장을 한국 등에 내주고 몰락했다”고 지적했다. 고품질 D램 생산에만 몰두하다 가격과 생산량 등에서 한국에 밀렸다는 해석이다.

실제 삼성전자는 가격을 낮추기 위해 일본에 비해 경쟁력이 약하다는 평가를 들었던 유럽업체들의 반도체 장비를 과감하게 도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는 빠른 시일 내에 일본을 따라잡기 위해 국제 분업체계를 잘 활용했다"며 "일본은 모든 장비와 부품의 자국 내 생산을 고집했던 반면 삼성전자는 비교적 가격이 낮고 고품질을 낼 수 있는 장비와 부품을 적절하게 공수해왔다"고 설명했다.
세계 반도체 시장 지각변동…잠자던 삼성, 추격 시작
하지만 최근 삼성전자의 입지도 불안하다는 평가를 듣는다. 경쟁업체들의 공세가 거세기 때문이다. 대만 TSMC는 최근 세계최초로 3나노미터(㎚, 1㎚=10억분의 1m) 공정 설비를 깔고 내년 양산 준비에 들어가면서 삼성을 긴장시키고 있다. 인텔은 2024년 2나노 공정 돌입을 예고했다. 낸드플래시 분야에선 미국 마이크론이 세계 최초로 176단 낸드플래시 양산을 시작했다.

물론 삼성 또한 잠자코 있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최근 경영에 사실상 복귀한 뒤엔 다시 투자에 시동을 걸기 시작했다. 삼성그룹은 2023년까지 반도체와 바이오 분야 등에 240조원을 신규 투자하겠다고 최근 발표했다. 삼성은 글로벌 1위인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선 14나노 이하 D램과 200단 이상 낸드플래시 등 ‘초격차’를 유지할 수 있는 기술 투자를 단행할 예정이다.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등 시스템 반도체 사업 부문에선 GAA(게이트올어라운드) 등 3나노 이하 제품을 제조할 수 있는 신기술을 이른 시일 안에 상용화해 대만 TSMC와의 격차를 좁힌다는 전략이다.
반도체 치킨게임 후폭풍은 조심해야


다만 반도체 기업들의 경쟁적인 설비투자가 과거의 반도체 업계 치킨게임의 재현이 아닌지를 우려하는 이들도 있다. 실제 지난 2008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당시 하이닉스), 일본 엘피다와 미국 마이크론, 독일 인피니온 등은 경쟁적으로 설비투자를 벌이다 공급 과잉을 맞았다. D램 가격이 떨어지자 수익성이 악화됐고 결국 2009년 독일 반도체기업 키몬다, 일본 최대 메모리 기업 엘피다 등이 파산했다. 생존한 기업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 도시바 등 5~6개의 대형 기업 뿐이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투자 경쟁에서 뒤쳐지지 않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국 기업 또한 언제든지 반도체 치킨게임의 희생양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며 "과거 일본 기업들의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각 국 정부에서 반도체 산업을 국가 안보에 직결시켜 생각하는 만큼 삼성과 한국 정부의 협력관계도 반도체 경쟁력 유지를 위한 필수 요건으로 보고 있다. 반도체 굴기를 선언했던 중국 뿐 아니라 일본과 대만 유럽연합(EU) 등도 세제혜택 인재양성 등 반도체 산업 육성을 위한 다양한 방안을 내놓고 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웨스턴디지털이 키옥시아 인수를 추진하는 것도 결국 미국 정부의 입김이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며 "반면 우리나라는 특정 기업과 업종에 대한 특혜 시비를 우려해 집중적인 세제지원도 제대로 못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박신영 기자 nyuso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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