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전염병 대유행) 발생 후 작년 말까지 두 배 가까이 올랐던 미국 증시가 올해도 거침없는 상승세다. 델타 변이 바이러스 확산과 미 중앙은행(Fed)의 테이퍼링(자산 매입 축소) 우려로 중국 일본 유럽 등 글로벌 증시가 조정 분위기인 것과는 딴판이다. 미국 증시의 나홀로 강세는 자산 시장에 넘쳐 흐르는 유동성과 경제 재개에 따른 기업 실적 호조가 맞물리고 있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월가에선 테이퍼링 등 악재가 불거질 때마다 일시적 등락이 있을 수 있지만, 적어도 연말까지는 상승 추세가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사흘마다 최고 기록 쓴 미 증시
24일(현지시간) 뉴욕증시의 주요 지수는 일제히 강세로 마감했다. 나스닥지수는 1971년 출범 후 50년 만에 15,000 고지를 밟았다. 지난해 6월 사상 최초로 10,000을 넘기며 ‘만스닥’ 시대를 연 지 1년2개월 만이다. 미 500대 기업을 모아놓은 S&P500지수는 최고가를 또 기록하며 올 들어 50번이나 최고치를 경신했다. 3거래일마다 한 번꼴로 새 역사를 쓴 것이다.
이날 미 증시의 새 역사를 쓰게 한 원동력은 델타 변이 확산이 정점을 지날 것이란 기대였다. 전날 제약회사 화이자가 식품의약국(FDA)에서 백신 정식 승인을 받은 게 호재로 작용했다. 중국 당국의 규제 리스크로 약세를 보여온 중국 기술주에도 저가 매수세가 몰리며 투자 심리가 개선됐다. 텐센트가 대규모 자사주 매입을 발표한 데다 징둥닷컴은 2분기 최고 실적을 내놔서다.
미 지수의 장기 추세는 더욱 돋보인다. 팬데믹 선언 직후 6800선까지 밀렸던 나스닥지수는 이후 큰 폭의 조정을 한 번도 겪지 않은 채 2.2배 급등했다. 올해 상승률만 16.54%에 달한다. 같은 기간 코스닥 상승률(4.62%)과 비교하면 네 배가량 높은 수치다. S&P500지수의 올해 상승률은 19.44%, 다우지수 상승률은 15.55%에 달했다.
특히 대형주가 주도한다는 점이 요즘 미 증시의 특징이다. 세계 최대 기업인 애플 주가는 올 들어 이날까지 약13% 상승하며 한때 주당 150달러를 돌파했다. 마이크로소프트 페이스북 알파벳 등도 마찬가지다.
양적완화가 기업 실적 개선으로
미 정부와 Fed의 ‘무제한 돈 풀기’가 뉴욕증시 강세의 첫 번째 배경으로 꼽힌다. 미 정부는 팬데믹 직후부터 세 차례에 걸쳐 5조~6조달러 규모의 부양책을 내놨다. Fed 역시 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많은 돈을 쏟아붓고 있다. 작년 3월 두 차례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를 열어 기준금리를 제로 수준으로 낮춘 데 이어 같은해 6월부터 매달 1200억달러씩 국채 및 주택저당증권(MBS)을 매입하고 있다. Fed가 작년부터 시장에 공급한 유동성은 총 2조달러 규모다.벤치마크로 쓰이는 10년 만기 국채 금리가 연 1.2%대로 낮게 유지되는 것도 주요 배경 중 하나다. 안전 자산으로 꼽히는 채권의 수익률이 떨어지면 대체재인 주식에 대한 관심이 커지기 때문이다.
백신 공급으로 경제 재개에 대한 자신감이 커진 점 역시 미 증시의 기대를 키운 요인이다. 델타 변이가 급증세지만 치명률이 낮은 데다 조만간 정점을 지날 것이란 전망이 많다. 경기 회복세는 각종 지표에서 분명히 나타나고 있다. 대표적인 게 성장률이다. 올해 미국의 1분기 성장률은 6.3%(전 분기 대비 연율 기준), 2분기는 6.5%로 집계됐다. 잠재 성장률보다 서너 배 높은 수치다.
그 덕분에 기업 실적이 호조를 보이고 있다. 금융정보 업체인 리피니티브에 따르면 지금까지 2분기 성적표를 공개한 S&P500 기업의 87%가 ‘깜짝 실적’을 내놨다. 역대 최고 비중이다.
월가에선 “연말까지 더 오를 것”
뉴욕 금융가에선 미 증시 전망에 대해 대체로 긍정적이다. 무엇보다 기업 매출이 계속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웰스파고증권이 이날 S&P500의 연말 목표가를 지금보다 8% 높은 4825로 상향 조정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크리스토퍼 하비 선임 애널리스트는 “S&P500 기업들의 주당순이익이 21% 늘었는데 이런 추세가 꺾일 조짐이 없다”고 말했다.다만 Fed가 테이퍼링을 준비하고 있는 건 향후 주가 상승을 제한할 요인이란 지적이다. Fed는 다음달 FOMC에서 테이퍼링을 공식화하고 이르면 11월부터 자산 매입액을 실제로 줄일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내년 하반기 테이퍼링을 완료하면 기준금리 인상 채비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뉴욕=조재길 특파원/박상용 기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