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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엔 한 달 200만원도 못 벌었다"…뿔난 공인중개사들 [김하나의 R까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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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정부 전에는 거래가 안돼 한달에 200(만원)도 집에 못 가져갔습니다. 그 때 나라에서 도와줬나요? 알아서 대리운전하면서 먹고 살았어요", "10억짜리 집 한 번 중개하면 많이 벌겠지요. 그런데 그런 기회가 자주 오는게 아닙니다", "서울, 수도권이나 그렇지 지방은 택도 없는 소리예요. 덩달아 욕먹고 있어서 아쉬운 마음 뿐입니다", "집값 올라서 중개료 올랐는데, 그 욕받이를 왜 우리가 합니까?"….(일선 공인중개사들)

정부가 공인중개사들의 중개보수 인하를 본격 시행할 움직임을 보이면서 중개업계에서는 반발하고 있다. 그도 그럴것이 공인중개사들은 월급이라는 게 없다. 모든 수입이 '수당'이나 '성과급'과 같다. 거래가 성사되어야 돈을 받는, 어찌보면 '복불복'인 직업이다. 거래가 많을 때에는 '잭팟'이 터질 수 있겠지만, 반대의 경우에는 대리운전이나 각종 아르바이트를 전전해야 하는 게 현실이다.

그렇기에 과거에는 '은퇴후 제 2의 직업'으로 취급받았다. '은퇴고시'로 불리며 돋보기를 쓰고 공부하는 중장년층이나, 남편의 퇴직을 앞두고 아내가 공인중개사를 따겠다며 공부하는 풍경은 흔했다. 수입이 일정치 않다보니 젊은 날을 태우기엔 위험성이 높은 직업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자녀들을 결혼시키고 교육비나 집, 차 등 목돈이 들어갈 일이 없어야 '소일거리로 동네에서 부동산하면서 여생을 보내야겠다' 정도에서 선택하는 직업이었다.

모든 일이 그렇듯이 중개업무도 쉬운 게 아니다. 손님이 많다고 다 돈이 되는 게 아니라는 얘기다. 결국 거래가 성사되어야 한다. 집값이 떨어지면 매수자가 안 나서고, 집값이 오르면 매도자가 없다. (최근에는 분위기가 바뀌긴 했지만) 일주일 내내 발이 부을 정도로 손님을 모셔도 허당일 경우도 있지만, 희한하게도 매수-매도자간 조건이 딱 맞아 바로 성사되는 계약이 나오기도 한다. 그냥 와본 사람, 지나가다 들른 사람, 우리집 시세 물어보러 온 동네 사람, 아파트 부녀회장에 동대표는 예삿일이고 물 마시러 온 동네 아이들까지 드나든다. 대학가나 원룸촌의 경우 계단청소, 쓰레기 버리기, 임차인의 전등갈기까지 해준다. 동네 부동산의 문은 언제나 활짝 열려 있었고, 자리를 지키고 있는 공인중개사들은 누가 오건 열심히 동네 상황을 얘기해줬다. 전화로도 마찬가지다. 상대방의 신원을 몰라도 '혹시나 고객이 되지 않을까'하는 기대감에 전화통을 붙들고 응축된 정보를 쏟아내곤 했다.


기자 또한 이러한 응축된 정보로 현장을 파악하고 기사에 참고될 취재를 해왔다. 각인각색(各人各色)이듯이 공인중개사들도 다양하다. 개업공인중개사 10만명, 전체 공인중개사 40만명이라는 숫자가 말해주듯이 말이다. (마땅히 편이랄 건 없지만 기자가 느끼기에) 무주택 매수자들을 위해 진정어린 조언을 해주는 이도, 집주인의 변호사가 아닐까 하는 정도인 이도, 동네 중개료만으로는 돈이 안된다며 새로운 사업을 구상하는 이 등이 있었다. 개업을 하지 않더라도 취직에 도움이 될까, 현재의 일에 도움이 될까 등을 생각하면서 시험을 준비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러다가 '설마' 하면서 공인중개사라는 직업에 대해 다시금 생각할 시기는 2018년이었다. 공인중개사 입시를 전담하는 교수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이제는 수강생으로 고등학생들이 들어오기 시작한다는 얘기였다. 자발적으로 자격증을 따고 싶어한다는 점도 충격이었지만, 집에서도 딱히 반대가 없다는 것이었다. 인문계 고등학교의 중상위권 학생까지 있다고 했다. 학생들은 대입 보다는 빨리 공인중개사가 돼 졸업하면 '돈을 벌겠다'는 의지가 있었고, 집안 어른들도 애매한 대학을 가거나 입시스트레스를 받느니 '네가 원한다면 해라'라고 밀어준다고 했다. 이런 고등학생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연말에 합격소식까지 들릴 정도였다. 이미 대학생들 사이에서는 '주식 동아리'만큼 '부동산 동아리'가 각광을 받고 있다고 했다.

공인중개사는 젊은층 사이에서 '제 2'가 아니라 '제 1의 직업'으로 자리잡고 있었다. 젊은층들은 자본이 모자르다보니 각자 개업을 하기 보다는 무리지어서 팀을 짜면서 움직이기도 했다. 온라인 상에서 블로그를 통한 마케팅을 하면서 신도시의 분양권을 찾아, 지방에 호재가 있을 곳을 찾아 직접 투자에 뛰어들기도 했다. 맹지를 사서 개발하거나 경매에도 뛰어드는 등 적극적인 모습에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문재인 정부들어 오른 집값과 젊은 층들의 '패닉바잉'은 공인중개사들에게 뜻하지 않은 부를 안겨줬다. 전체 중 5%도 안됐던 아파트 고가거래가 서울에서 일상처럼 이뤄졌으니 말이다. 그것도 매수자들이 제발로 찾아와서 말이다.

돈이 되는 시장이니 사람들이 몰려드는 건 당연했다. 장롱 속에 잠자고 있던 공인중개사 자격증들이 다시 나오기 시작했다. 공인중개사 시험 응시생은 지난해 34만명에서 올해 40만명으로 2년 연속 최대치를 경신했다. 중개수수료를 깎다못해 반값 중개수수료나 정액제를 내세우는 중개법인이 등장했다. 프롭테크라고 불리는 애플리케이션 업체들도 직접 중개를 모색하고 있다.


기존 시장을 지키기 위한 반격도 동시에 시작됐다. 공인중개사 시험은 어려워지기 시작했고, 이제는 숫자를 제한해 뽑겠다고 한다. 심지어 일각에서는 '더이상 뽑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응시생들 사이에서는 바로 개업하기도 어려운 상황(자본금이 여유롭지 않음을 표현)인데, 기득권층이 젊은이들의 또하나의 기회를 없애고 있다고도 주장하고 있다.

중개수수료를 놓고 '밥벌이 전쟁'은 이미 시작됐다. 파이가 커지면 경쟁자가 늘어난다. 시장경제에서 당연한 과정이다. 정부는 언제나 그렇듯 개입을 시작했다. 다만 정부의 움직임을 보자면 다른 업계와는 다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기존에는 '자영업자·영세업자 보호', '골목상권 지키기' 등의 명분으로 시대 변화나 소비자들의 요구 보다는 기득권이나 기존 업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타다사태나 인터넷 자동차 판매 등)

그러나 이번만은 양상이 다르다. 국민들의 의견을 반영해 수수료 인하를 확정할 것으로 보인다. 당연히 기존 공인중개사들은 반발한다.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를 중개사에게 전가하는 행위라고 보고 있다. 수천만원씩 챙겨가는 공인중개사들은 일부에 불과하고 경쟁자들이 시장에 진입해 물건 확보는 어려워졌다고 보고 있다. 정부의 집값 상승 덕분(?)에 몇년 반짝 성장했지만 현재 경쟁이 치열해지는 와중이다보니 미래를 장담하기는 어려워졌다고도 한다.

정부의 회의에 성실히 참여했던 공인중개사협회는 허탈한 심정을 밝혔다. 협회는 "집값 폭등, 세금 폭탄 등 정부의 잘못된 부동산정책으로 기인한 국민의 중개보수 개편 요구에 부응코자 지난 7개월여에 걸친 국토부 TF회의에 성실히 임해왔다"며 "부단한 노력에도 매번 후퇴하는 개편안을 제시하는 등 일방적이고 무성의한 자세만을 보여왔다"고 주장했다.

중개수수료 개편은 임박했다. 국토교통부와 국토연구원은 전날 '중개보수 및 중개서비스 개선방안' 온라인 토론회를 열고 3가지 중개보수 개편안을 제시했다. 이중 가장 유력한 안은 2안이다. 고가주택 기준을 현행 9억원에서 15억원으로 높이고, 최고 요율은 0.9%에서 0.7%로 낮추는 방안이다. 2억원 미만은 현행을 유지하면서 △2억~9억원 0.4% 이내 협의 △9억~12억원 0.5% 이내 협의 △12억~15억원 0.6% 이내에서 협의 등의 방향이 될 전망이다. 임대차 중개보수도 개선할 계획이다. 임대차 계약은 3억원 이상 6억원 미만의 가격 구간에 보수 요율을 기존보다 0.1%포인트 낮게 적용할 것으로 보인다.

과거 물값, 주차값이 가장 이해가 안됐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기술이 발전하고 플랫폼들이 늘어나면서 주식거래, 부동산거래 등 거래에서 발생하는 중개수수료를 아까워하는 이들이 많아졌다. 시대가 변하면 아까운 돈도 변하기 마련이다.

최근 몇년간 집에서 숨쉬고 사는 것만으로도 나가는 돈이 많아졌다. 각종 세금과 건강보험료, 마스크 비용, 인터넷쇼핑, 배달음식 등 셀수 없을 정도다. 금리는 낮다지만 빌리는 돈이 늘어나니 이자는 크게 줄지 않았다. 중개수수료가 과하다는 건 국민도 알고 업계도 알고 있다. 그리고 그게 누구 때문인지도 알고 있다. 상상치 못했던 10억원 거래가 일상이되면서 생긴 일이다. 말로는 사과했다지만 책임은 지지 않는다. 또다시 남겨진 판은 국민들과 업계의 싸움판 뿐이다.

김하나 한경닷컴 기자 han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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