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 기자] 타이거 JK는 무엇이 되든 간에 자기 자신만은 잃지 않기로 했다. 그러기 위해선 지금 이 순간을 직면해야 했으며, 성취해야 했고, 사랑해야만 했다. JK의 행보를 되짚어 보며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그가 사랑하는 것에 대해 놀랄 만큼이나 일관적이라는 것이다. 1999년 처음 마주했던 ‘너희가 힙합을 아느냐?’부터 이번에 발매한 신곡 ‘호심술(Love Peace)’까지, 형식도 한계도 없이 자유롭게 써 내려간 결과물은 이토록 무구하며 선명한 모습이었다.
촬영장에서 다시 만난 그는 곧은 내면과 부드러운 외면을 함께 겸비하고 있었다. 이번 화보 촬영 콘셉트는 1963년 마틴 루터 킹(Martin Luther King) 목사의 워싱턴 연설에서 따온 ‘Life, Liberty, and Happiness(인생, 자유, 행복)’라는 키워드를 바탕으로 진행됐다. JK는 세 가지 콘셉트를 통해 극적인 면모를 드러냈으며, 촬영장 속에서 유연한 얼굴로 금세 녹아들었다.
최근 선보인 신곡 ‘호심술(Love Peace)’을 만든 배경에 대해 그는 “아시안 혐오 범죄가 굉장히 많이 늘고 있는데, ‘아시안 스피릿(Asian Spirit)’을 3분 안에 다 표현할 수는 없었지만 힙합을 통해서 그것을 부각해보고자 했다”라며 “사회적인 소신 발언을 하는 것에 있어서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그저 음악 하는 사람으로서 느끼는 감정을 표출해보고 싶었다”라고 답했다.
이후 유명 음악 평론가의 아들, 미국 생활, 베벌리힐스 고등학교 학력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배고팠던 적이 없을 거라는 색안경도 존재한다는 의견에 타이거 JK는 “아버님께서 날 돌봐주실 여력이 없었기 때문에 미국에서 학교생활을 시작했고, 그때부터 인종차별 등 힘든 상황을 겪어나가야 했다”라며 “겉으로 보기에만 달콤한 모습이지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라고 설명했다.
이후 ‘한국 힙합의 선구자’라는 수식어에 대해서는 “그런 것들에 대한 자의식은 전혀 없다”라며 “아무것도 없던 미개척지에 힙합을 심었다고 해서 대가를 받아야 한다는 생각은 전혀 없고, 우리가 정말 사랑했던 음악과 장르에 대한 열망만 있었을 뿐이다”라고 답했다. 이어 “그런 수식어를 보면 정말 감사한 마음이지만 민망함이 더욱 크다. 그렇게 생각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으니까”라고 덧붙였다.
당시에는 힙합이 대중문화 음악으로 자리 잡을 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고. 그는 “앨범을 낼 때마다 망할 거라는 생각으로 냈고, 비주류 문화의 아티스트로서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여 왔다”라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자신의 음악이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태도나 신념에 변화가 일어나진 않았을까. 이 질문에 JK는 “‘이 곡 때문에 죽고 싶은 마음을 멈췄다’라는 쪽지를 받게 될 때 그 순간 무한한 책임감을 느끼게 된다”라며 “이 사람들을 위해서 노래를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내 음악이 누군가의 인생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에 큰 책임감을 안게 되는 것”이라고 답했다.
‘드렁큰 타이거’로만 10개의 정규 앨범을 발매한 그. 1인이 되어서라도 끌고 간 이유는 무엇일까. 타이거 JK는 “다양한 아티스트 친구들과 함께 활동하는 클랜 명이었다”라며 “옛 멤버들, 팬들과의 약속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뒤이어 힙합 아티스트로서의 책임감을 묻는 말에 그는 “물질적이지 않은 생활을 이루었지만 어느 순간 이런 행동 자체가 쿨해 보이지 않는 시대가 찾아왔다”라며 “좋은 차와 좋은 집, 화려한 라이프 스타일이 아니면 히피 같은 모습이 되는 게 안타까웠다”라고 당시 소감을 전했다. 이후 지금까지 철저하게 지키는 가치에 대해선 ‘사랑’을 꼽았다. 그는 “나와 미래, 동료들은 언제나 순수한 음악을 보여주고자 노력한다”라고 덧붙였다.
Mnet ‘SHOW ME THE MONEY 6’ 당시 아무런 커리어가 없던 일반인 우원재를 찾아낸 그. 타이거 JK는 “이렇게 잘하는 친구의 시초, 목격자로서 그 현장에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정말 고마운 마음이다”라고 웃으며 답했다.
이후 전 소속사와의 분쟁에 대해 묻자 그는 “충격이 무척 컸던 만큼 평소에 안 하던 술을 입에 갖다 대고, 스스로 목숨을 끊을 생각까지 다다를 정도였다”라며 당시 심각함을 설명했다. 설상가상으로 척수염이 재발하고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몸과 마음 둘 다 힘들었던 상태였다고. 이에 JK는 사랑의 가치로 극복했다는 비결을 전했다.
다음으로 비비에 대해 묻자 “음악을 처음 듣자마자 충격적이었다. 무엇보다도 가사 속 단어의 표현이 예사롭지 않았다”라고 놀라움을 표현했다. 이어 아내 윤미래에 대해서는 “너무나도 고마운 사람이다. 내가 여러 위기를 겪을 때도 옆에서 묵묵히 있어 준 그런 친구”라며 애틋하게 말했다.
마지막으로 그에게 47살이라는 나이는 어떤 의미인지 묻자 “아무 의미 없다”라며 “나이에 연연하지 않는 것이 내가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이유”라고 웃으며 답했다.
에디터: 박찬
포토그래퍼: 두윤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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