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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마을] 7만년간 7번 세계화…인류는 '협력 DNA'로 위기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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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서 보면 큰 그림이 보인다. 인간 문명의 큰 그림을 파악하려면 얼마나 멀리 떨어져 봐야 할까. 제프리 삭스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의 《지리 기술 제도》는 기원전 7만 년 전부터 현재까지를 시야에 넣는다. 이를 통해 그가 발견한 큰 흐름은 ‘세계화’다.

저자는 인류가 일곱 번의 세계화를 겪었다고 말한다. 첫 번째 세계화는 호모 사피엔스가 아프리카를 떠나 세계 곳곳으로 흩어졌을 때다. 두 번째는 정착 생활을 하며 농업 기술이 확산했을 때, 세 번째는 말과 같은 동물을 길들이기 시작했을 때다. 아메리카 대륙에서 문명의 발전이 더뎠던 것은 말이 없어서였다고 저자는 해석한다. “아메리카는 말과 당나귀가 있으면 가능한 장거리 육상 수송, 통신, 농업 생산성, 대규모 행정의 편의성 등 여러 가지 가능성을 누릴 수 없었다.”

페르시아 제국, 로마 제국, 한나라 등 거대 국가의 탄생과 함께 정치의 세계화가 이어진다. 문화와 지식이 이 시기 꽃을 피웠다. 실크로드 등을 통한 지역 간 교류도 활발했다. 그 뒤 우리에게도 익숙한 세계화가 이어진다.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으로 대표되는 대항해시대, 그리고 산업혁명 이후 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하는 시대다. 저자는 이를 각각 ‘제국주의의 세계화’ ‘기술과 전쟁의 세계화’로 규정했다.

저자에 따르면 결국 인간 문명의 역사는 세계화의 역사나 마찬가지다. 물론 그 과정에서 갈등과 마찰이 빚어졌고, 전쟁과 비인간적인 착취도 발생했다. 하지만 저자는 세계화를 긍정적으로 본다. 세계화 덕분에 인류가 이만큼 발전했다는 것이다. 세계화는 지식과 문화를 곳곳에 전파했다. 규모의 경제를 달성해 번영을 가져왔다. 코로나19가 단 석 달 사이에 중국 우한에서 세계 140여 개국으로 퍼져나간 것은 세계화 탓이지만, 백신을 빠르게 개발하고 대처 방안을 마련할 수 있었던 것 역시 세계화 덕분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가 7만 년에 걸친 인류 역사를 조망한 것은 앞으로의 시대를 대비하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현재 인류는 일곱 번째 세계화를 맞이하고 있다. 디지털 혁명으로 지구촌 소식이 몇 초 만에 세계로 퍼져나가는 시대다. 하지만 인공지능(AI)의 등장, 강대국 중국의 부상, 불평등의 심화, 지구 온난화 등과 같은 문제는 우려를 낳는다.

큰 그림에서 보면 시대가 바뀔 때마다 새로운 긴장과 갈등이 발생했다. 아프리카를 떠난 호모 사피엔스는 네안데르탈인과 데니소바인 같은 다른 종을 멸망시켰다. 정착 생활을 하면서는 희소 자원을 두고 폭력을 휘둘렀고, 기마 시대에는 빠른 기동성을 바탕으로 침략과 약탈을 벌였다. 먼바다까지 나갈 수 있게 되자 식민지 쟁탈전이 펼쳐졌다. 지금이 그때와 다른 점은 인류가 전 지구에 미치는 영향력이 훨씬 크다는 것이다. 지금의 위기를 슬기롭게 넘기지 못하면 인류 문명이 살아남을 수 없을지 모른다는 경각심이 책에 녹아 있다.

저자가 제시하는 해법은 ‘제도’다. 이 책의 제목처럼 문명은 지리, 기술, 제도가 상호 작용하며 발전했다. 규범과 윤리, 법, 공동체, 국가, 국제기구 등은 인류가 경쟁으로만 치달아 자멸하지 않도록 제어했다. 책에선 국제기구의 역할이 특히 강조된다. “로컬 정부에 여러 나라를 흐르는 강의 관리나 국제적 오염의 통제 등 지역의 범위를 벗어나는 훨씬 큰 규모의 문제들을 해결하라고 하거나 관련 서비스를 제공하라고 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이러한 문제에는 국제적 권위의 기구가 필요하다.”

유엔의 개혁도 요구한다. 유엔 회원국은 현재 193개다. 세계 인구를 대표한다. 하지만 실상은 주요 5개국의 손안에 있다. 안전보장이사회의 5개 상임이사국이 주요 권한을 독점하고 있다. 저자는 안보리 이사국을 현재 15개에서 21개로, 상임이사국은 5개에서 11개로 늘릴 것을 제안한다.

이 책은 인류 문명사를 쉽고 간결하고 명쾌하게 설명한다. 비슷한 책이 몇 있다.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 이언 모리스의 《왜 서양이 지배하는가》,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 등이다. 다른 책들이 600~1000쪽의 대작인 데 비해 이 책은 400쪽(번역서 기준, 원서는 280쪽)으로 간결하다. 그러면서도 흥미로운 이야기를 충실히 담고 있다. 몽골이 막강한 군사력을 갖추게 된 것은 당시 날씨가 좋아 몽골 목초지의 생산성이 대폭 증가한 덕분이라는 이야기가 그중 하나다.

멀리서 숲을 보여줬던 책은 현대로 오면서 다소 힘을 잃는다. 국제기구에 더 많은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주장도 뜻은 좋지만 다소 이상적으로 들린다.

그래도 저자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구석기 때부터 인류는 협력을 체화하며 진화해왔기 때문이다. 네안데르탈인이 아니라 호모 사피엔스가 살아남은 것도 협력하는 능력 덕분이었다. “때때로 우리는 서로 잘 돕거나 화합하지 못하지만 여전히 10만 년 전 아프리카 사바나 지역에서 형성된 추론과 협력의 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로 책은 끝을 맺는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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