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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례복·가구·그림으로…궁궐에서 만나는 '꽃의 왕' 모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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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 안에 들어서면 은은한 꽃향기가 코끝을 스친다. 지난봄 창덕궁 낙선재에 모란이 만개했을 때 그 향을 포집해 제작한 향수 냄새다. 어딘가에서 정원에 떨어지는 빗소리, 새 지저귀는 소리도 들려온다. 이 ‘가상 정원’을 거닐며 조선 후기 남종화의 대가였던 소치 허련(1808~1832)의 모란 그림 8점을 모은 ‘소치묵묘첩’ 등 모란을 소재로 한 작품을 감상하노라면 조선시대의 어느 봄날 궁궐을 산책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서울 청운동 국립고궁박물관에서 모란꽃을 통해 조선 왕실 문화를 살펴보는 특별전 ‘안녕(安寧), 모란’ 전시가 열리고 있다. 모란도 병풍을 비롯해 모란꽃 무늬가 그려진 궁궐의 각종 생활용품과 의례용품, 심사정과 강세황 등 18~19세기 문인 화가들의 모란 그림 등 유물 120여 점을 선보이는 전시다.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사전 예약을 해야 볼 수 있지만 관람 열기가 뜨겁다. 주말에는 하루 관람 허용 인원 630명을 꽉 채우고, 평일에도 매일 400~500명의 관람객이 들 정도다.

조선 왕실은 부귀의 상징인 모란을 각종 생활용품과 의례용품에 무늬로 사용해 풍요와 영화를 기원했다. 대표적인 게 혼례복이다. 전시장에 나온 조선 순조의 둘째 딸 복온공주(1818~1832)의 혼례복은 남아 있는 활옷 중 제작 시기와 착용자가 명확히 알려진 유일한 유물이다. 이 옷 속에서는 1880년 과거시험 답안지를 재활용한 종이가 발견돼 눈길을 끈다. 옷의 형태를 잘 유지하도록 옷의 겉감과 안감 사이에 넣는 종이심으로 일종의 이면지를 활용한 것. 창덕궁에서 전해 내려오는 전통 혼례복도 전시에 나왔다. 이번에 최초로 일반에 공개된 유물이다.

모란이 그려진 나전 가구, 화각함, 청화백자, 자수 물품 등을 보고 나면 전시실 벽면을 가득 채운 대형 모란도 병풍을 만날 수 있다. 조선 왕실은 흉례(凶禮)를 치를 때도 모란 무늬를 썼다. 망자의 관과 신주 주위에 모란 병풍을 둘러쳐 ‘꽃의 왕’인 모란 특유의 경건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일상의 공간을 신성한 상장례의 장으로 바꿨다.

김동영 문화재청 국립고궁박물관장은 “전시의 제목인 ‘안녕, 모란’은 조선 왕실의 안녕을 빌었던 모란 무늬처럼 우리 모두의 안녕을 비는 주문”이라며 “이번 전시를 통해 국민 모두가 코로나19를 극복해 평안하고 아름다운 일상을 되찾길 기원한다”고 전했다. 전시는 10월 31일까지.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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