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스포츠 구단에 소속된 트레이너도 근로자이므로 퇴직금을 받을 수 있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스포츠 구단 트레이너를 근로자로 인정한 첫 대법원 판결이며, 근로자 여부를 판단할 때 계약서보다 실제 근무 형태가 중요하다고 본 판례로 의미가 크다는 평가다.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제3부(주심 안철상)는 지난 15일 국내 유명 프로축구단 대표에 대한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위반' 공판 사건에서 이 같이 판단하고 상고를 기각했다.
A는 2004년부터 유명 B프로축구단에서 부상 방지·재활 보조 업무를 맡은 트레이너로 활동해 왔다. 그런데 A와 축구단이 2013년에 변경한 계약서에 따르면 "A에겐 퇴직금을 지급하지 않고 4대보험도 가입시키지 않으며, 업무 시간·장소의 관리를 제외한다"는 등의 내용이 규정돼 있었다. A가 근로자가 아닌 용역·도급계약에 따른 프리랜서라는 취지다. 이전까지 계약서에는 그런 내용은 담겨 있지 않았다.
A가 2014년 퇴직을 하면서 구단에 퇴직금을 청구했지만 B구단은 계약서를 근거로 들며 퇴직금을 지급하지 않았다. 이에 A가 구단을 고소했고 검찰이 구단 대표를 기소한 것이다.
1심은 “A는 근로자라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해 대표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A가 상당한 전문성이 있어서 구단이 지휘·감독을 할 수 없었고, 선수들과 같이 승리수당을 받아온 점, 사업자 종합소득세를 납부한 사실을 이유로 들었다.
하지만 2심 고등법원과 대법원은 “계약의 형식 보다는 실질이 중요하다”고 판단해 유죄를 선고했다. 계약 형식이 도급 계약이거나 하더라도 실제로는 임금을 목적으로 종속적인 관계에서 근로를 제공했다면 근로계약이라고 봐야 한다는 판단이다.
재판부는 △A가 9시에 출근해 오후 7시까지 근무하면서 근무일지를 작성했고 △경기가 있는 날엔 선수단과 동행해야 하는 등 사실상 근로시간과 장소가 정해져 있다는 점 △B구단 감독이 A에 대한 휴가나 출퇴근을 결정했다는 점에 주목했다. 재판부는 "부상자 관리나 부상방지 프로그램의 내용도 구단에 보고한 점에 비춰보면, A는 B구단의 지휘감독을 받은 근로자로 봄이 상당하다"고 판단했다.
한 노동전문 변호사는 "트레이너가 예전부터 구단과 종속적인 관계에서 근무를 해 오던 관행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구단이 계약서를 변경해 근로자성을 부인한 사건"이라며 "계약서의 형식보다는 실제적인 근로 형태가 중요하다는 판결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곽용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