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은 사유재산이지 공유지 아니다”
공유지의 비극은 미국 생물학자 개릿 하딘이 1968년 사이언스지에 기고한 논문에서 처음 제시한 개념이다. 정부나 공동체가 소유하고 있는 자원은 소유권이 따로 없어 사람들이 과다하게 사용하거나 조심성 없이 다뤄 빨리 훼손된다는 것이 골자다.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시작될 무렵 목초지에 마을 주민들이 앞다퉈 가축을 방목하면서 풀이 사라져 황무지로 변했다는 사례를 제시했다. 이는 그레고리 맨큐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가 《경제학원론》에서 다루면서 유명해졌다. 맨큐 교수는 여기서 공유지에 대한 개인의 권리와 의무를 분명히 해 자원 낭비를 막을 수 있다고 해결책을 제시했다.
하지만 홍 부총리는 엉뚱한 곳에서 ‘공유지의 비극’을 꺼냈다. 부동산시장 안정을 얘기하면서 ‘공유지’를 언급한 것이다. 특히 공유지의 비극을 해결하는 방법으로 경제학 교과서는 개인의 재산권 확대를 제시하고 있지만, 홍 부총리는 사실상 집을 사지 말라는 방법을 내세웠다.
당장 경제학을 전공한 국민의힘 의원들의 비판이 이어졌다. 미국 코넬대 경제학 박사 출신인 유경준 의원은 29일 “주택은 사유재산이지 공유지가 아니니 애초에 공유지의 비극이라는 말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며 “자신의 이익만 고려한 선택이 상대방에게 나쁜 결과를 야기하는 ‘죄수의 딜레마’를 언급하고 싶었던 것 같지만 집값 상승의 책임이 정부에 있는 만큼 이 역시 적당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컬럼비아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은 윤희숙 의원은 전날 “동원할 수 있는 지혜를 모두 동원해 막중한 결정을 하는 개인의 주택 구매는 공짜라는 이유로 쉽게 망치는 공유지에 비교할 바가 아니다”며 “김현미 전 국토교통부 장관의 ‘빵’ 발언을 능가하는 역대급 망언”이라고 규탄했다. 유승민 전 의원(위스콘신대 경제학 박사)은 “사유재산인 주택에 무슨 공유지의 비극이 있나”며 “대한민국 정부가 이렇게 무지한지 기가 막혀서 말이 안 나온다”고 했다.
홍 부총리의 실수? 코드 맞추기?
이에 대해 기재부 관계자는 “초기 개념은 맨큐 경제학원론에서 언급한 것이 맞더라도 최근에는 사적 이익 추구 과정에서 공익이 악화되는 사태를 의미하기도 한다”며 “개인이 사유재산 가치 상승에만 천착해 집값 안정이라는 공동 목표가 훼손되고 있다는 의미에서 공유지의 비극을 들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이는 더불어민주당에서 갈수록 커지고 있는 부동산의 공공재화 주장과 맞닿는다. 지난 22일 기본소득 공약을 제시하며 이재명 경기지사가 재원 마련 대책으로 내놓은 국토보유세가 대표적이다. 앞서 이 지사는 “투기로 이익을 얻고자 하는 사회 풍조는 국가의 영속성을 위협한다”며 “부동산의 조세 부담을 늘려 투기와 가수요를 억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의 지대개혁 주장도 같은 맥락이다. 추 전 장관은 23일 부동산 보유세 및 양도세 강화 공약을 내놓으며 “소수의 개인과 대기업이 토지 및 부동산을 독점해 막대한 불로소득을 챙기는 부동산 공화국으로 전락했다”고 했다.
한정된 공유지와 달리 정부 정책에 따라 얼마든지 공급을 늘릴 수 있는 주택시장의 조건을 무시한 채 개인의 부동산 소유 욕구 자체를 죄악시한다는 점에서 홍 부총리의 주장도 다르지 않다. 이인실 서강대 경제대학원 교수는 “학부에서나마 경제학을 전공하고 만 35년 이상 경제 정책을 담당해온 경제수장이 기초적인 경제학 개념을 몰랐겠느냐”며 “정책 실패를 인정하지 않고, 가진 자와 개인의 욕구를 억압하는 데서 해결책을 찾으려는 문재인 정부의 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 공유지의 비극
tragedy of the commons. 소유권이 정해져 있지 않은 한정된 자원을 개인이 무분별하게 이용하면 해당 자원이 조기에 고갈되거나 훼손된다는 개념. 수자원, 숲, 어류, 석유 등 재생이 불가능하거나 한계가 있는 공공재를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논의할 때 많이 쓰이는 경제학 용어다. 미국의 생물학자 개릿 하딘이 1968년 처음으로 사용했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