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조9000억원 규모의 올해 2차 추가경정예산안이 그제 새벽 국회를 통과하면서 기형적인 ‘소득하위 88%’가 탄생했다. 소득상위 12%를 제외한 약 4500만 명이 1인당 25만원씩 재난지원금을 받게 된 것이다. 지급 대상이 늘면서 추경은 정부안보다 1조9000억원 증액됐다. 소득하위 88%는 누가 보더라도 선별 시늉만 내면서 무차별 지급에 더 가깝다. ‘88 대 12’로 갈라치기 하는 나쁜 정치의 또 다른 전형을 보는 것 같다.
소득하위 88% 지급으로 여야와 정부가 합의한 과정을 보면 ‘정치 추경’의 민낯과 다름없다. 정부의 70%, 여당의 전 국민 지급 주장이 맞서다가 당정 협의에서 80%로 결정됐다. 그러나 여당은 이를 뒤집고 전 국민 지급, ‘90%+알파(α)’ 카드까지 꺼내면서 옥신각신하다 88%로 어정쩡하게 타협됐다. 이러려고 한 달 넘게 이 난리를 쳤나 싶다. 그러면서 누구도 왜 88%인지 납득할 만한 설명을 하지 않는다. 정치공학에 의한 흥정의 산물로 기준이 정해졌을 뿐이다. 그러다 보니 맞벌이·외벌이 여부, 가구 규모 등 선정 기준도 복잡하기 이를 데 없다.
88% 지급은 코로나19 4차 대유행 속에서 거리두기를 강화하는 것과도 맞지 않다. 피해 계층에 지원을 집중하고, 재정을 엄격하게 관리하는 게 당연하다. 이미 지난해 1차 전 국민 재난지원금 지급 당시 피해업종 지원 효과가 크지 않았음이 입증된 마당이다. 미국의 테이퍼링(자산 매입 축소), 한국은행의 금리 인상이 임박한 판에 무차별 현금 살포는 모순이 아닐 수 없다.
국민의힘도 비판받아 마땅하다. 피해 계층 집중 지원을 내세웠다가 당 대표는 전 국민 지급을 주장하는 등 원칙 없이 오락가락하다 국회 법제사법위원장 자리 하나 얻고 정부·여당에 맥없이 따라갔다. 정권 견제 역할을 해야 할 제1야당의 모습이 맞나 싶다. 코로나19 사태가 지속되면 재정 소요는 더 늘어날 수밖에 없지만, 나라 곳간은 비어 가고 있다. 그런데도 여야 모두 나라살림은 뒷전인 채 내년 대선과 지방선거를 겨냥해 돈풀기에 한 몸이 되고 있으니 나라 미래가 암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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