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이 금융회사에 대한 검사 착수 후 절차를 마무리하지 못한 채 남아 있는 건수가 130건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검사 뒤 1년 넘게 처리 절차가 지연된 건도 20건을 웃돈다. 징계·제재 절차가 길어지면서 금융사 경영에 지장을 주는 사례도 속출하고 있다. 좀 더 신속하고 절제된 방식의 감독이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년 넘게 처리 못 하기도
25일 금감원이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에게 제출한 ‘검사 종료 이후 절차가 진행 중인 목록’ 자료에 따르면 지난 4월 말 기준 ‘절차 진행’으로 분류된 사건은 128건으로 집계됐다. 이 중 검사 착수 이후 1년이 넘은 건은 22건이었다. 7건은 2년이 지나도록 최종 결과가 확정되지 않은 상태다. 예를 들어 2019년 3월 한 달간 검사를 진행한 A은행의 한 지점에 대한 검사 건은 검사 착수 시점 기준 760일째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같은해 7월 검사를 마친 한 자산운용사 관련 건은 652일이 지났지만 여전히 부서 자체 심의 단계가 진행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C대부업체는 2019년 10월 검사를 받았지만 556일째 추가 검토가 진행 중이다.검사 종료 이후 절차 진행 기간이 길어지는 것은 대부분 유권 해석, 법률 검토, 추가 사실관계 확인 등이 필요하기 때문이라는 게 금감원 입장이다. 검사 건과 관련해 소송이 진행되면서 소송 결과가 나올 때까지 결론을 내지 않는 경우도 있다. 한 금감원 관계자는 “검사 착수 후 검사서 작성, 부서 자체 심의, 제재심의위원회 부의, 제재국 심사, 증권선물위원회 부의, 금융위원회 부의 등 여러 절차를 거쳐야 한다”며 “단계마다 여러 가지 검토할 사안이 늘어나다 보니 길어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새 개별 검사의 소요 기간이 더 지연되고 있다는 게 업계 설명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특히 윤석헌 전 원장 취임 후 ‘최고경영자(CEO) 때리기’식의 제재를 위한 검사가 많아지면서 원하는 결과가 나올 때까지 물고 늘어지는 경우가 늘어났다”며 “법적 소송으로 가는 경우도 증가하다 보니 전체적인 평균 검사 기간이 증가한 것 같다”고 말했다.
“신속·절제된 검사 필요”
피감기관인 금융사들은 보다 신속하고 예측 가능한 방향의 검사 관행이 정착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검사를 받고 나서도 길게는 몇 년씩 결론이 나지 않다 보니 현장 부서의 피로감이 상당하다는 게 업계 얘기다. 또 CEO 징계가 연계된 경우 지배구조에 불확실성이 커지고, 상장사는 주가에 영향을 받는 사례도 적지 않다.한 은행의 검사역은 “사건 처리 절차가 길어지다 보니 담당자가 바뀌면 기존 절차를 반복할 때도 많다”며 “불확실한 상황이 오랫동안 이어지는 것은 확실한 경영 리스크”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금융사의 검사실 직원은 “라임펀드 사태 등 중대한 사안은 워낙 걸려 있는 회사가 많아 검토할 부분이 많다는 점은 이해한다”면서도 “개인정보 보호나 보안 관련 사안 등 비교적 경미한 건들은 보다 빠르게 처리해줄 수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관행처럼 이뤄져온 검사 방식에 변화를 줘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금감원의 현장 검사 이후 진행 절차 지연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의견 수렴, 법률 검토 등도 정해진 시일 내에 효율적으로 처리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윤 의원은 “글로벌 기업에 대한 국세청 세무조사도 조사 후 수개월 내에 최종 고지서가 발급되는데, 금융사 검사 기간이 그 이상으로 길어질 이유가 없다”며 “금감원 검사와 조치는 ‘금융 부실’에 초점을 맞춰 신속하고 엄정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소람/김대훈 기자 r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