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이맘때면 납량특집 공포 영화가 나오지만 다른 영화 두 편을 소개한다. 첫 번째 추천 영화는 ‘터미네이터’ 시리즈다. 사람을 멸종시키려는 인공지능(AI)과 인간이 시공을 넘나들며 벌이는 투쟁이 스토리다. 내가 이 영화를 좋아하는 것은 ‘터미네이터’ 1편이 나온 해가 1984년이기 때문이다. 빅브러더가 세상을 지배한다는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와 동일한 해에 개봉된 것이 이유는 아니다. 진짜 이유는 시간적 상황이다. 당시에는 초보적 수준의 PC가 막 개발되던 시점이었다. 인터넷, 엑셀도 없는 상황에서 통제할 수 없는 인공지능의 출현을 예고했다. 그리고 30여 년이 지나자 인공지능 위기론이 스티븐 호킹 박사 등 세계의 석학들로부터 나오기 시작했다.
2005년 개봉한 ‘아일랜드’는 유전자를 복제한 배양 인간을 격리 수용하다가 본인의 장기가 기능을 상실했을 때, 격리된 복제 인간의 장기를 이식하는 사회를 그렸다. 누가 진짜 사람인지 모르는 장자(莊子)의 ‘나비의 꿈’과 같은 이야기다. 사람이 나비 꿈을 꾸고 있는 건지? 나비가 사람이 된 꿈을 꾸고 있는 건지? 본질을 헷갈리게 한다. 나는 이 두 편의 영화에 늘 감탄하고 때로는 소름이 돋기도 한다. 어떻게 수십 년 후 나타날 것을 생각해 냈을까?
4차 산업혁명이 확산되면서 앞으로 과학기술의 발전은 인공지능이 담당할 듯하다. 문제는 사람이 배제된 채 과학기술이 발전한다면 우리가 생각하는 미래가 아닌 다른 미래가 다가올 수 있다는 점이다. 먼 미래를 바라보기 더욱 어려워진 것이다.
향후 미래를 가장 잘 예측하는 사람은 공학도나 혹은 경영자가 아닐 것이다. 기존의 학문과 직업 분류로 구분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공통된 특성이 있다. 큰 그림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적극적으로 실천한다는 점이다. 사소한 변화라도 시간의 흐름과 전체적 맥락 속에서 바라보는 넓은 시각이 있고, 이에 맞춰 즉시 행동에 옮기는 사람이다.
예를 들어 최초의 무선통신 기기인 ‘삐삐’를 보면서 지금의 스마트폰을 생각한 사람, 배양육의 출현을 보고 축산업을 접은 농민, 고령자가 많아지자 자극이 강한 매운 치킨이나 떡볶이에서 소화가 잘되는 부드러운 간식으로 사업을 전환한 자영업자, 인공지능의 발전을 보고 어학 계열 진학을 포기한 수험생 등의 공통점은 먼 미래를 보면서 자신의 삶을 바꾸는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이제 먼 미래를 바라보는 사람과 사회만이 발전할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지금 우리는 현재에만 집중해서 치열하게 숙고하고 있다. 고개를 들고 먼 미래를 바라보면 고칠 것도 많고 투자할 대상도 많다. 세계는 누가 더 먼 미래를 바라보고 행동에 옮길 것인지를 놓고 경쟁하는 시대다. 올여름 휴가에 미래를 예측한 영화를 보면서 보내면 무더위도 이기고 미래 준비도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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