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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자 칼럼] "문무대왕이 벌떡 일어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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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함은 육·해·공을 통틀어 가장 거대한 병기(兵器)다. 그래서 고유 명칭이 따로 있다. 1000t급 초계함은 서울함이나 순천함, 4000t급 이상 구축함은 충무공이순신함이나 문무대왕함 등으로 불린다. 국제법상으로는 어느 해역에서든지 소속국가의 영토로 간주된다.

그러나 ‘바다 위의 3밀(밀집·밀접·밀폐) 공간’이라는 특성 때문에 집단감염에 취약하다. 올 4월 고준봉함에서 코로나19 확진자 38명이 쏟아졌을 때, 서욱 국방부 장관은 ‘한정된 공간에서 다수가 밀집근무하는 특성’을 언급하며 철저한 방역을 지시했다. 그런데 석 달 만에 해외파병 청해부대의 문무대왕함에서 247명이 감염되는 일이 벌어졌다.

창군 이래 최초의 군함 집단감염과 부대원 전원 철수 사태는 방역과 사후 대응의 총체적 부실 탓이다. 무엇보다 파병 4개월이 되도록 백신 없이 감염병에 노출돼 있었다. 국내에서 백신 접종이 시작되기 한 달 전인 2월에 출항했더라도 기항지에서 백신을 맞아야 했다.

아랍에미리트의 아부다비에 있는 우리 군 아크부대는 유엔 협조로 현지에서 백신을 맞았다. 남수단 한빛부대는 주둔국 백신으로 접종을 마쳤다. 백신의 해외 반출이 제한돼 있었다는 말도 앞뒤가 안 맞는다. 군함은 우리 영토다.

진단키트 또한 무용지물이었다. 청해부대가 구비한 800개의 신속항체검사 키트로는 이미 감염돼 항체가 형성됐는지만 확인할 수 있고 초기 감염 여부는 알 수 없다. 결국 이달 2일 감기 증상을 보인 승조원 등이 11일 뒤에야 인접 국가에서 유전자증폭(PCR) 검사를 받고 모두 확진자로 판정됐다.

그 결과 전원 철수와 작전공백이라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군 안팎에서 “긴급 철수에 투입되는 장비와 인력의 10% 정도 노력만으로도 백신 전달과 접종이 가능했다”, “북한에 줄 백신은 있으면서 청해부대에 줄 백신은 없었단 말이냐” 등의 비판이 나올 만하다.

장병 가족들도 “해적은 차치하고 감염병 공포와 싸워야 하는 지경이 됐다”며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문무대왕함은 2003년 진수된 국내 첫 스텔스 구축함이다. 그런데도 바이러스라는 ‘보이지 않는 적’에 치명타를 입고 허망하게 무너졌다. “죽어서도 용이 돼 바다를 지키겠다”던 문무대왕의 유언이 민망할 정도다. 오죽하면 “문무대왕이 바다에서 벌떡 일어날 일”이라는 비아냥까지 나올까.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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