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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찐 무명 여자 농구 선수들의 유쾌한 반란"…KB국민은행스타즈, 박신자컵 품에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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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강자가 언더독의 도전에 무너지는 장면은 스포츠 팬들에게 짜릿한 쾌감을 선사한다. 팀 스포츠에서 개인의 전력차를 팀워크로 극복해 다윗이 골리앗을 꺾을 때면 감동의 크기는 배가되기 마련이다.

지난 11일부터 16일까지 경남 통영체육관에서 열린 2021 삼성생명 박신자컵 서머리그 대회에선 언더독의 유쾌한 반란이 일어났다. 약한 전력으로 평가받던 KB국민은행의 농구단 KB스타즈가 대회 4연패 사냥에 나섰던 하나원큐를 71-66으로 누르고 5년만에 우승컵을 들어올린 것.

한국 여자 농구 레전드인 박신자 선생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열리는 이 대회는 유망주 발굴이 목적인 대회다. 여자프로농구(WKBL) 6개 팀외에도 대학선발팀, U-19 대표팀 등이 참가하는 이유다. 코치진의 육성을 꾀하기 위해 각 팀의 지휘봉도 감독이 아닌 수석코치가 잡는다.

사실 대회를 앞두고 KB스타즈를 우승후보로 꼽는 전문가는 거의 없었다. 아직은 경험이 더 필요한 어린 무명 선수들이 주축이 되어 대회에 나섰기 때문. 1군 주전 선수들을 대거 출전시켜 타이틀 사냥에 나섰던 다른 팀과 다른행보를 보인 것은 대회 취지에 충실해야 한다는 판단에서였다는 후문. KB스타즈 관계자는 노력하는 유망주들에게 맘껏 뛸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었다"며 "당장의 결과보다는 경험과 자신감을 심어주는 게 목표였다"고 귀띔했다.

KB스타즈는 올 초 대대적인 체질 개선에 나섰다. 간판이나 명성보다는 실력을 용인술에 가장 중점에 둔 것. 안덕수 전 감독 후임으로 김완수 감독이 임명됐을 때 농구계는 술렁였다. 유명 스타 감독들의 화려한 이력에 비하면 하나원큐에서 코치로 활약한 김 감독은 무명에 가까웠다. 전통의 명문구단 KB스타즈가 모험수를 뒀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우려가 기우에 불과했다는 걸 증명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김 감독은 취임 직후 실력만 있으면 누구에게든 기회를 준다는 원칙부터 천명했다. 그동안 기회를 받지 못했던 선수들은 대회 내내 관중석에서 선수들의 기량을 체크했던 김 감독에게 최고의 기량을 보이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활짝 열린 기회의 창은 유망주들을 자극하기 충분했다. 비인기 종목 유망주들에게 키다리 아저씨로 통하는 윤종규 KB금융그룹회장의 스포츠 마케팅 운영 원칙이 농구팀에도 녹아들었다.

우승의 숨은 공신인 엄서이가 대표적이다. 2020년 BNK에서 프로생활을 시작한 엄서이는 프로 데뷔 경기를 치루지 못했다. 발목 부상이 문제였다. BNK에서 이렇다 할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엄서이는 강아정의 FA 보상선수로 지명되며 BNK를 떠나 KB에 새둥지를 틀었다. 이번 대회에서 프로 데뷔 첫 경기를 치룬 엄서이는 파이팅 넘치는 모습을 보여주며 팀에 활기를 불러일으켰다. KB의 유니폼을 입은 후 첫 공식전을 치른 엄서이는 첫 경기에서 팀 내 최다인 21점과 더불어 15개의 리바운드를 걷어내며 팀의 대역전승을 이끌었다. 대회 평균 득점은 16.6점, 입단 동기인 허예은(17.7점)과 합을 맞춘 2001년생 유망주 듀오는 KB스타즈의 노란 유니폼하면 떠오르던 박지수의 모습이 희미해질 정도의 활약을 보였다. 선가희(11.2점), 이윤미(11.0점) 등 어린 선수들이 맹활약하며 정규시즌에 대한 전망도 밝혔다.

어린 선수들이 거둔 성과는 좋은 팀분위기로 이어지고 있다. 이적생에 대한 텃세 같은 스포츠계의 고질병들은 갓 스물을 넘긴 MZ세대 선수들에겐 느껴지지 않는다. 허예은은 “서이는 우리 팀의 마지막 퍼즐 같다. 힘도, 센스도 있어서 받아들이는 게 또 좋다. 서이와 뛸 때도 잘 맞았기에 너무 기분이 좋았다. 서이는 우리 팀의 인싸”라고 덧붙였다. 벤치에서 우승을 일군 진경석 코치는 “허예은 뿐 아니라 엄서이 이윤미와 선가희 모두 경쟁력을 보여줬다. 선수들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가 된 것은 사실”이라며 영건들의 성장세를 설명했다.

기본에서 시작하자는 원칙을 지켜 작지만 큰 걸음을 시작한 KB스타즈 주축 선수들의 성장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이번 겨울 정규시즌에도 이들이 펼칠 유쾌한 반란이 정체되어 있는 한국 여자 농구의 '어린 메기' 역할을 톡톡히 해줄 것을 믿는다.

김순신 기자 soonsin2@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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